사교육 없이 공부하는 고2 딸과의 상담

by 청블리쌤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도 첫째와 마찬가지로 사교육 없이 자기주도학습을 한다. 영어는 중학교 때부터 얼마든지 내가 가르쳐줄 수 있고 도와줄 수 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말이 되어서야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서 내가 수업을 좀 해주었다. 옆에 앉아서 대면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거리유지를 원해서 굳이 Zoom 실시간 강의로 진행하긴 했지만.

그리고 수학은 인강을 활용하고 있다.

인강을 듣고 있으니 완전히 사교육을 차단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실용댄스 학원 외에는 학원을 다닌 적이 없고, 인강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주도성을 잃지 않으며 활용하고 있다.


딸 주변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딸은 성취의지가 높고 욕심이 많다. 그런데 일찍부터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어서, 수능이 13-14개월 남은 지금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생일날 부모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제가 서울로 대학 가면 누구보다 기뻐해 주실 거고 대구에 남아도 효도했다고 해주실 거니까 부담 없이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공부가 생각대로 잘 안되고, 몸이 힘들거나 해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는 막막한 미래의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 번씩 속상해서 울기도 하는데, 감사한 것은 그 힘든 것을 엄마와 아빠에게 그대로 표현해 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적 때문에 운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딸의 눈물은 자신의 의욕과 현실의 괴리 만큼이지만 곧 그 간격을 메울거고 믿고 있다.


어제는 딸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거라고 자신을 믿는 이유가 뭔지를 내게 물었다.

주변 친구들보다 공부를 그동안 많이 한 것도 아니고, 학원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수고한 것도 아니고, 진도와 속도를 봐도 자신이 뒤처져 있고, 당장 성적도 좋지 않은데, 자신이 지금 현재의 자리에서 정말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정말 잘 모르겠다는 거다. 큰 딸은 베이스기타 전공을 고민하고 실제로 위탁교육까지 받고 다시 공부에 전념했는데, 둘째 딸은 실용댄스 전공을 두고 고민했었다. 언니보다 더 현실성 없어 보이는 불확실한 진로에 난 반대를 했고, 타협점은 댄스전공학원을 취미로 다니는 일이었다. 그런데 딸이 보기에는 댄스만 몰입해서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보다 나을 것이 없었고, 그렇다고 공부 분야에서도 자신의 경쟁력을 찾기 어려워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해 낮아진 자존감으로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런 딸은 아빠인 나와 함께 스우파(스트리트 우먼 파이트)라는 댄스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느낌을 공유하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딸의 따져 묻는 질문에 난 순간 망설였다. 딸의 말대로 산술적인 계산값으로는 딸은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 어떤 말도 딸의 의욕을 깨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가 차분하게 대략 이런 정도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첫째로 너에게 가장 큰 경쟁력이지만, 당장은 드러나 보이지 않는 역량은 읽기능력이다. 그 읽기능력 덕분에 넌 물리적인 시간의 양을 초월해서 축지법 같은 효율을 얻게 될 거다. 같은 내용을 공부해도 네가 더 빨리 할 수 있고, 또 속도를 떠나서도 이해를 하면서 공부를 하니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될 거다.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네가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을 때 책 읽는 시간을 줄이라고 하고, 학교 선생님들도 책 읽는 시간은 사치라고 말했지만, 결국 너의 선택이 옳았음이 먼 훗날 증명될 거다. 게다가 이제는 네가 습관적으로 모의고사 독서지문와 영어지문을 매일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고 있잖니. 그건 너의 읽기 능력이 계속 더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면 된다. 그 자신감은 평소에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너의 빠른 이해와 점점 더 빨라지는 공부속도로 드러날 거다.


둘째로 넌 습에 초점을 둔 자기주도학습을 하고 있다. 공부는 학과 습으로 이뤄지는데 학과 습은 분명 다른 거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학원을 많이 다니는 것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진짜 공부는 습에 있다. 스스로 할 수 있어야 그게 진짜 공부고, 그래야 정말 너만의 지식체계가 되는 거다. 그런데 원래 학보다 습이 더 어설프고, 성취감을 느끼기가 힘들다. 학으로 접근하면 선행진도를 더 빨리 뽑을 수도 있고, 뭔가 어려운 것을 배운다는 마음으로도 성취감을 갖기가 쉽기 때문이지. 혼자 공부하면 때로는 헤매기도 하고, 멀리 둘러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게 정말 제대로 배우고 있는 거다.


속도에만 치중하다 보면 빠른 결과를 얻기 위해 그저 결과로 드러나는 것들을 암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수학조차도 학원 숙제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을 내주면서 암기가 자연스럽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지. 그러면 문제를 많이 풀어도 즐거움은 없단다. 내가 알아낸 것이 아니라 늘 스포 당하는 느낌인 거니까.

그런데 혼자서 고민하고 헤매면서 암기보다는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단다. 사실 이해의 역량이 되어도 조급함으로 그냥 암기해버리고 다음으로 넘어가기도 한단다.

너는 속도는 더디지만 단편적 대입이 아닌 결국 무한대 응용이 가능한 길을 선택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대개 습보다 학이 더 쉽단다. 수동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니까. 그래서 학원 다니는 애들이 학원 다녀온 이후의 자습시간에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너는 혼자서 애쓰는 과정을 거치고 있으니 에너지가 더 많이 드니까 더 빨리 지치는 것처럼 보이는 거고.


셋째 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빠가 상담을 해주는 학생들은 대개 상처받거나 좌절을 경험한 학생들이 많단다. 방향은 틀렸지만 잘되고 있다는 생각이나 착각 속에 있을 때는 절대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거든.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는 사람이 망치질 한 번에 100만원을 청구했다고 항의하는 손님에게, 고장난 부분 찾는데 99만원, 망치질 1만원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니?

전문성은 애써서 이것저것을 해보는 외적인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성에 있단다. 이것저것 시간을 많이 들여서 고치려고 애쓰면서 수리비를 청구하는 것보다 우리는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지. 망치질은 얻어걸린 이벤트가 아니라 평소에 축적된 전문성에 의한 정확한 방향성인 거란다.


너 언니가 중학생 때 엄마친구가 너 언니를 저대로 두면 안 된다고, 학원이든 공부방이든 가야 한다고 조언을 했었단다. 그 공부방은 휴일에도 학생들을 불러다가 공부시키고, 밤늦게까지 관리해 주는 곳이었거든. 너 엄마는 흔들렸지만 아빤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도성을 포기하지 않고 보내지 않았었지. 그런데 그 엄마친구의 딸을 고3 초반에 상담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깜짝 놀랐단다. 영어의 기본기가 너무 안 되어 있는데, 다른 고3 애들처럼 EBS 수능특강 단어장을 보면서 공부하고 있었던 거다.

학생들을 오랜 시간 붙잡아두고 관리를 하면 물리적으로나 산술적으로나 마음이 놓이긴 하지. 뭔가 제대로 하는 느낌이 드니까. 그런데 너도 경험해 봤지? 물리적인 시간의 길이보다 중요한 건 집중력이잖니. 2시간 멍 때리며 하는 공부보다 10분 집중해서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 거란다.


그 아이는 외적으로는 너무 열심히 잘 하고 있었지만 방향이 맞지 않았단다. 기본기와 절차와 성장의 속도 등을 무시하고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따라 하고, 수능을 대비하기 위해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학생들에게 수능 기출문제를 강제하는 것은 조급함으로 성과를 흉내 내게 하는 것에 불과했던 거란다.

그래서 내가 그 아이에게 아빠의 기본코스부터 할 것을 권했단다. 그리고 그 아이의 영어성적이 수능에서는 안정적으로 나왔지.


아빠가 고3 할 때도 준비 안 된 아이들에게 바로 EBS를 시키지 않고 기본기부터해서 대박난 적도 있었단다.

네가 그동안 아빠의 뜻을 잘 따라왔던 건 적어도 기본기를 넘어서서 무리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아이들은 10개 중에 한두 개만 제대로 된 것을 건지는데 너는 10개 중에 한두 개만 놓치고 나머지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적어도 아빠가 제시한 방향은 정확하니까 넌 그동안 절대적인 공부시간이 적었어도, 적어도 낭비를 하지는 않은 거고, 앞으로의 과정에서도 낭비 없는 극대 효율을 가지게 될 것이니, 다른 아이들과의 단순비교는 의미가 없단다.


더구나 너에게는 주도성이 살아 있잖니. 아빠의 큰 방향성에 세부적인 것은 네가 알아서 채우고 있으니까... 혼자서 계획하고 혼자서 꾸준히 해내면서 실패를 인정하고 실패에서 배우며 더 크게 성장할 거니까.. 이번에 수학 인강 들으면서도 네가 주도적으로 골라서 듣고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는 지점을 네가 스스로 결정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거란다.


고 3은 본무대란다. 즐겁게 공연을 할 수 있는.. 너도 댄스무대를 많이 서 봐서 알지?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 순간인지. 그런데 그 화려한 공연 이면에는 그 무대를 즐기기 위한 치열한 준비가 있었던 거잖니. 확실한 건 더 많이 준비할수록 더 많이 즐길 수 있다는 거지. 준비가 덜 되었어도 준비한 것만큼만 즐기면 되는 거구.


실은 모든 기본기는 좀 지루하다. 그러나 이후의 즐거움은 지루함을 견딘 시간과 에너지에 비례하니 견딜만한 가치가 있는 거란다. 중학교 때 아빠가 기본기 공부를 강조한 건 고등학교의 행복한 공부를 위한 거였다. 1등을 하라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는 행복한 고3을 위해서 하는 거란다. 그때는 거의 실전문제 위주로 퍼즐 풀 듯이 너에게 설렘의 순간을 누리게 해줄 텐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는 설렘이 악몽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남들보다 공부시간, 진도나 속도, 학원에서 배우는 수준, 당장의 성적에 좌우되지 않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뤄낼 성취를 지금 확인하고 싶은 마음 당연하지만, 나도 모르게 어쩌다 보니 이뤄내는 것이 진짜이며, 그런 성취만이 어디 도망가지 않고 남는 역량이 되니까...


공부시간으로 확인받고 싶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외적인 증명으로 마음에 위로를 얻으려 하지 마라. 공부시간 10시간에 만족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면 9시간 공부도 실패가 되는 거란다. 공부 잘 될 때가 있으면 집중 안 될 때가 있음을 인정해라.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고 집중력을 수능 때까지 가져갈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 잘되는 순간을 누리고 즐기다가, 공부가 잘 안될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자체의 노력에 스스로 칭찬해 주길. 그 끈을 놓지 않아야 공부 잘되는 순간을 곧 맞이할 수 있게 된다. 길게 보면 성장이지만 그 과정에는 롤러코스터 같은 굴곡이 있는 게 당연한 거다.


수학문제가 잘 풀릴 때만 성취의 기준이 된다면, 안 풀리는 모든 순간이 좌절일 것이니... 안 풀릴 경우 결국은 알아낼 답에 대해 설렘을 가지렴. 불안함에 대한 시각을 바꾸면 설렘이 된다. 하루 종일 고민하지는 말고, 시간을 정해 놓고 최선을 다한 후 해설지를 볼 때에도 늘 “왜?”를 따져가면서 보렴. 왜 그런 풀이가 나와야 하는지를 멈춰서 한참 생각해야만, 해설지를 바로 보기로 타협한 과정이 의미가 있게 된다.


국어, 영어, 사회도 마찬가지다. 공부는 “Why?”의 태도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 지적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해가는 짜릿함과 사소한 성취가 모이면 공부를 지속할 힘이 되고, 그렇게 쌓이게 된 근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기본기로 인해 이후의 응용과정과 심화과정을 감당할 힘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 즐겁게 공부할 동력이 된다.


사교육으로 사람들은 “Why?”의 과정을 건너뛰고 당장 눈에 보이는 성취를 얻으려 한다. 그래서 얻게 된 성취에 만족하며 그 방향을 고수하게 되는데, 문제는 변형된 문제나 응용된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사례에 따른 풀이나 해결법을 암기했기 때문인데, 그 암기한 노력과 수고와 시간에 비해 이후에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둘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다. 원리부터 따져가면서 더디게 완성해가는 과정을 무시하고 오래도록 기다려서 꽃이 피는 것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꽃꽂이는 하면서 만족하는 과정이랄까?


공부는 결국 혼자서 해내야 한다. 제일 바보 같은 사람은 수능 직전까지 인강을 듣고 학원수업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다.

너는 서툴러도 이미 그런 과정을 잘 감당하고 있다. 당장은 다른 애들에 비해 뒤처지고, 물리적인 공부시간도 적은 것도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이후의 너의 걸음을 기대하고 믿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리고 결론을 정하고 목적지를 정할 필요 없다. 가는 데까지만 가면 후회를 남기지 않고 그 시점에서 너의 주도성을 잃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도달점에 만족하거나, 또 다른 시도를 선택하거나...

난 너의 모든 선택을 존중한다.


그 도달점이 네가 꿈꾸는 목적지였거나 그렇지 않거나 너는 과정에서 이미 얻었던, 스스로 하면 된다는 확신과 자신감으로 또 다른 출발점에 서서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 거란다. 힘내렴.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딸에게 이런 확신에 찬 위로를 앞으로도 계속 해야할 거라는 것은 잘 안다. 아이들은 심지어 성적으로 확인받는 순간에서도 자주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 때 필요한 것은 비판과 판단을 배제하고 함께 가슴 아파해주면서 그 마음을 헤아리려는 pause다. 그리고 중간 과정에서 얻어내는 성취나 결과에 대한 칭찬보다 그저 그 기쁨을 함께 하는 일이다. 섣부른 칭찬은 이후의 똑같은 성취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아이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성취에서조차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이런 상담 후에 딸은 저녁에 친구랑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내게 전화를 하면서 수학 어려운 파트의 4점짜리 문제를 너무 재미있게 풀었고, 너무 잘 풀려서 신기했고, 채점해보니 다 맞았다는 소식을 내게 전했다. 난 부담이 될만한 칭찬을 아끼며 함께 기뻐해주었다. 그리고 이후에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속상해할 때에도 그저 마음을 함께할 준비를 난 늘 하고 있다. 혹 문제가 다 풀린다는 것은 그저 성취가 아니라 지루함의 연속일뿐일 것이니... 우리는 그 상처와 실패 속에서 더 많이 고민하고 해결에 대한 설렘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진리를 아이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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