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당연해지지 않을 무렵 그리움은 시작된다.
함께 있을 때 그립지 않은 것은 안도감이며 그리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며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때로는 겹치기 때문이다.
(영어로 I miss you라고 하면 그대가 그립다는 말인데 miss라는 단어 자체에 부재와 상실이 들어있다)
그러니 그저 일상 중에 어쩌다 당연한 것들에 한 번씩 감사하면 된다. 그걸로 족하다
그리움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잦아들 것임을 슬픔으로 직감한다. 그리고 그 직감은 곧 현실이 된다. 곧 새로운 그리움으로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움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슬픔의 관문을 통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슬픔의 분량은 정해져 있는 듯 하다. 슬픔 총량제처럼... 많이 슬퍼할수록 많이 아파할수록 덜 아픈날이 더 빨리 찾아오지만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슬픔 중에 아프지 않은 건 없다.
현실적인 그리움이 더 이상 현실을 만나지 않게될 때 그리움은 추억으로 봉인된다.
망각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을 거부한 소수의 그리움만 고통으로 포장되어 가슴에 새겨진다..
아침 출근길에 누군가 자전거 출근하는 걸 보고 19년 동안 매일 자전거를 타던 일상에서 벗어나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나의 모습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끝을 생각할 이유도 없었고, 그 끝도 보이지 않았던 일상이었는데 더 이상은 그게 일상이 아니라는 걸 완전히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4년마다 학교를 옮겨야 하는 공립교사들이 학교를 옮긴 직후에 한 번씩 예전 학교로 운전해 가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어 방향을 돌렸다는 에피소드는 신기하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더 이상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지난 학교의 학생들이 많이 그립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