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8.29.)
9월 중순에 있을 “글쓰기와 행복교육”강의를 앞두고 몇 달 동안 준비했던 원고의 틀을 잡아 놓고 계속 수정하는 중이다.
연수 관련 공문이 이미 각 학교에 전달되었다. 제목만 보고 글쓰기 강의를 하냐고 묻는 학교 선생님도 계셨고, 학교 선생님 한 분은 연수 신청하기 전에 강의하고 글쓰기 실습하고 발표시키는 거 아니냐고 하셔서 걱정 마시라고 했다.
연구회 대표선생님이 공문 준비로 연락하다가 신청자가 많지 않으면 제목이 찌질 때문일 거라는 농담을 건네셨다.
그래서 망설이다 제목을 나름 웅장하게(?) 붙였다.
“삶을 관통하는 글쓰기와 행복교육”
삶을 관통한다는 표현 대신 원래 생각했던 건, "인격을 통과하는"이었다.
내가 생각한 인격을 통과한 교육이란... 내가 실제로 삶에서 실천하는 교육이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난 여전히 부족하며, 고상한 인격을 논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이어서는 안 되고 본받을 만한 인격과 삶으로 전하는 교육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다.
훌륭한 교사란 이미 인격을 완성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노력하고 있으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인 것이니까.
혹 학생들 입장에서 본받을 만한 좋은 인격이 드러난다면 아이들에게 감동이 되면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혹 연약함과 부족함이 드러난다면 아이들에게 웃음(비웃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선생님의 모습에서 느끼는 유머의 속성)을 주거나 위로가 될 것이다.
아이들 입장에서 오히려 넘사벽의 인격보다 부족한 모습이 더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역설이다. 아이들은 늘 상대평가를 당하면서 상처받고 있는데, 선생님에게서 부족함이나 상처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자신들만 힘들 거라는 외로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교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진정성 있게 아이들에게 다가갈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최소한의 예의와 지켜야 할 선을 아무런 노력도 없이 함부로 넘어서서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 용납된다는 것은 아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다가가지만, 부족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그걸 인식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꼰대라고 부르는 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실수와 실패도 인정하고 노력하는 모습이면 되지 않을까?
교사의 아픔이 사명인 이유는 공감은 직접 체험에서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교회 목사님 설교도 인격을 통과한 진리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목사님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고상한 인격적 성취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실패와 좌절과 연약함의 모습이 느껴진다면 더 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보통 위인전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훌륭한 모습의 나열이 아니다. 상상하지 못할 죄를 저지른 경우도 많았다. 성경에서 가장 은혜로운 스토리 중 하나는 부족함에 대한 각성과 성장의 스토리다. 부족함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극적인 성장도 은혜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의 자세는?
노력을 멈추지만 않을 뿐, 그 모습 그대로 진정성 있는 모습이면 된다. 다른 선생님들이나 다른 어른들과 비교해서 더 훌륭하니 안 하니 따질 이유도 없다.
교사가 아이들의 연약함을 품고 교육을 시키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아이들이 부족한 교사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품어주는 경우가 더 많다.
서로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행복한 안정감에서 성장이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다.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교사가 먼저 용기를 내야 한다. 아이들의 실제를 마주하는 것은 진심을 다한 말하기.. 그리고 학생들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편하게 용기를 낼 수 있는 글쓰기의 기회를 통해서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난 수없이 체험했다.
3시간이라는 강의 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뻔한 이야기, 지루한 이야기로 머물지 않게 하려면... 재미와 감동을 담으려면...
(그래서 부담이 되긴 한다.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생각은 애초에 옵션에 없던 거니까...)
그러려면 나만의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그동안 강의에서 집중도가 높고 호응이 좋았던 경우는 미완성인 나의 인격을 통과한 이야기가 전달될 때였다.
나의 부족한 모습이 전해질 때 선생님들은 따뜻한 웃음으로 호응해 주셔서 오히려 내가 위로받고 힐링 되는 느낌도 들었다.
나의 삶을 통과하고, 삶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진정성 있게 편안한 웃음으로 다가가길...
그 어떤 강의보다 더 뛰어난 강의라고 감히 주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길...
그리고 이야기에(이왕이면 직접 체험한 삶의 이야기라면 더욱) 사람들이 더 반응하는 과학적 근거도 명확하다.
이야기처럼 전해지는 직간접적인 삶의 체험이 녹아든다면 아래의 효과가 드러날 수 있으니 수업시간에도 이야기를 활용 안 할 이유가 없다.
훌륭한 스토리를 들었을 때 뇌와 몸에 일어나는 현상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1. 스토리텔링이 주의를 사로잡는다. 스토리를 들으면 의식을 낚아채는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분비가 촉발된다. 코르티솔은 정글에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나 밤중에 살며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스토리 역시 코르티솔 분비를 촉진해 여러분의 주의를 끈다.
2. 스토리텔링은 학습에 도움을 준다. 스토리가 코르티솔 분비를 촉발해서 여러분의 주의를 끌면, 도파민dopamine이 개입한다. 보상 및 학습 체계에 속하는 도파민은 여러분이 공부를 마칠 때까지 계속 몰입할 수 있게 해주며 세부사항을 기억하는 데 필요한 정서적 감동을 부여한다.
3. 스토리텔링은 신뢰하도록 돕는다. 마지막으로 ‘신뢰’ 혹은 ‘사랑’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oxytocin이 등장한다. 옥시토신은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여러분이 스토리 속 인물과 동일시하게 하고 그 결과에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게 만든다.
훌륭한 스토리를 들으면 정신이 납치당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스토리가 신경계를 장악해 우리의 뇌를 인질로 잡는 상태다.
<히든 스토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