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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첫 도전(도전과 응전)

by 청블리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나의 교직 첫걸음은 초임교사 시절이지만, 실제 시작은 교생실습이었다. 진짜 학생들을 만나며, 실제 학교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했던... 물론 내게는 학생들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평가권이나 학생지도의 전권은 없었다. 소위 말하자면 임대 학생이었고, 오히려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면 안 되는 애매한 자리였다.

(그래도 교생은 말 그대로 학생이면서 교사인 신분이다. 그래서 학생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며, 애쓰지 않아도 형성되는 학생들과의 교감에서 출발해서, 대놓고 실패나 실수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교생 때 형성된 교직관과 수업방식은 이후 정식교사가 되어서 교사 모습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난 교직에 대한 꿈을 중3 때부터 품었다. 80년대 교사의 꿈은 그다지 응원을 받지 못했다. 너무 스케일이 작고, 수입도 많지 않으며, 늘 반복되는 재미없는 일상을 맞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남자들은 특히 더 야망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을 주는 시대이기도 했다.

(교사가 인기를 얻게 된 건 IMF 이후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부터였다. 지금은 줄어드는 학생수와 더불어 교사의 수요가 줄면서 임용이 너무 어려운 현실이 반영되어 사대, 교대의 인기도 함께 떨어지고 있기는 하다.)


난 당연히 성취지향적인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학교 선생님들조차도 성적이 좋은 나에 대한 기대를 진로에 대한 압박으로 전달하셨다. 사범대 가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첫 대입에서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지원했다. 아버지는 끝까지 사대를 반대하셨지만, 서울대 법대 점수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렇게 내가 원하는대로 결정을 했지만, 결국에는 불합격하면서 사대에 진학하려는 나의 명분까지 잃었다.


두 번째 입시에서는 경기도에 있다가 고3 때 이사를 하게 된 경북권에서 가장 좋은 경북대 문과의 가장 높은 과였던 영어교육과가 법대보다 합격점이 훨씬 높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설득하여 결국 진학할 수 있었다. 실은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지원했어도 합격할 학력고사 성적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평소 성적으로 대학 지원을 먼저 하고 지원한 대학에 가서 학력고사를 치르는 시스템이어서 결과론적으로 지금처럼 수능을 먼저 치렀다면 서울대를 갈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과 여학생들 중에서는 대구지역 전교 1등이었음에도 서울로 대학보내기를 원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강권으로 그냥 남게 된 학생들이 많았어서 나만 특별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 난 영어가 너무 좋았고 중 3 때 선생님의 권유로 후배들 학반에 들어가서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는 경험이 내게 교사 꿈에 확신을 주었다. 난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있었고, 후배들과의 교감과 소통에서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과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후의 교사의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 교직은 내게 그저 직장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 절실함과 설렘으로 교생을 나갔다.

그런데 시작부터 교사를 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고비가 학생들과 첫 만남의 순간부터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여고 1학년 학반에서 첫 소개할 때 어쩌다 보니 남자 교생 6명 중 키 순서로 맨 마지막에 서게 되었다. 아이들은 첫 교생쌤 인사할 때부터 열렬한 환호를 보냈지만 그 환호가 나에게까지 이어질지 불안했다. 이내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아이들이 날 원하지 않으면 나의 교육활동은 그저 억지스러운 들이댐에 불과할 것이니, 교사의 꿈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괴로워했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는 것이 교사라는 자리니까.

그때 나의 절실함이 고개를 들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난 소심함의 화신처럼 거절을 두려워하며 늘 인간관계에서 모험하는 것을 꺼렸는데 그 순간만큼은 나의 절실함이 소심함을 압도했다.


무작정 도시락을 들고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가서 밥을 같이 먹었다. 아이들이 날 반길 리가 없었다. 잘생긴 선생님은 안 오냐고 물었다. 그런데도 매일 점심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했고,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담임 학반에서 을종대표수업을 하기로 해서 아이들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고 반 아이들 이름도 다 외웠다.

분명 아이들은 내 첫인상이 구리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사소한 관심으로 시작해서 먼저 다가가서 아이들 말에 귀를 기울여주니 아이들의 마음이 달라지는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교생 마칠 때 아이들은 눈물로 작별을 고하고 있었지만, 송별회 같은 인사를 할 때 먼저 눈물을 시작한 건 나였던 것 같다.

이후 난 교생이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가슴 깊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누군가를 그리워하듯, 일상을 살면서 아이들 이름을 연습장에 한 명씩 써내려 가면서 기억을 소환했다. 과외하러 버스타고 지나치는 학교 건물을 보면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교생 이후 휴대폰도, 인터넷도 생소한 그 시절 난 아이들에게 우편으로 전해지는 손편지를 150통 넘게 받았다. 물론 나도 정성껏 모든 편지에 다 답장을 하였다.


교생 때 만난 그 아이들은 나의 교사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다. 분명 처음의 위기와 고비가 있었지만, 내가 갖추지 못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그 부족한 모습 그대로 노력하고 애쓰면 아이들 마음이 움직이고 교육이 시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었다.

을종 대표수업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더 열심히 잘 했어야 했다고 나름 최선을 다해주었으면서도 더 해주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내게 전하면서 미안하기까지 했고 어떤 애들은 눈물까지 보였다. 난 그저 진심을 다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아이들을 오히려 위로했다.

교수님들과 지도교사와의 협의회 후 교수님들의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고, 수업 분위기와 아이들의 적극성에 대해서도 칭찬이 끊이지 않았던 그 느낌을 아이들에게 전하니까 아이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모둠일기에 그 생생한 느낌과 행복과 뿌듯한 기쁨을 적어 두었다. 그 내용을 복사해두지 못한 게 아직까지 한으로 남아 있다.

교생할 때부터 난 그렇게 좋은 아이들을 만나는 행운 같은 축복을 계속 누리게 될 것임을 직감했고 이제까지 그 예감은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교사로서 나의 자세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생각할 기회를 주었고, 임용고시 공부에 더 열심을 다할 동기가 되기도 했다. 사대부고는 5년 이상의 경력으로 1급 정교사만 갈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혹시나 합격하면 그 아이들을 진짜 교사로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까지 꾸면서 더 힘을 냈다.

그리고 바로 임용 합격하고 이웃 학교에 발령을 받고... 지도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갔다가, 2학년 3개 반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을 쉬는 시간에 각 반에 들어가서 전체 아이들을 만나 과분한 축하의 환호와 박수를 받던 그 감격의 순간도 잊지 못한다.

난 그 아이들에게 평생 가슴에 간직할 빚을 지면서 살고 있다. 그때 다하지 못한 사랑을 지금의 학생들에게 다 쏟으면서...

나와 나이 차이가 7살 정도 났었으니까... 그 아이들도 중년을 넘어서 어디선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기도 한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Challenge and Response” 즉 도전과 응전이라는 용어로 역사의 흐름을 보았다.

그는 “문명은 운동이지 상태가 아니다. 문명은 또한 항해이지 항구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머물지 않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늘 문명은 도전에 직면하고 그 도전에 응전하지 못한 문명은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항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린 늘 도전을 마주하게 되니까..

도전이란 건,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는 뭔가를 말한다. desperate라는 단어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절실함을 의미하니 도전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교사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그저 받아들이고 머물렀다면 과연 교사가 되었을지, 되었더라도 자신감과 확신으로 교육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거였다.

이후 나의 교직 생활은 글쓰기로 규정되었다. 학생들과 편지로 소통하고, 문자로 소통하고, 이메일로 소통하면서 그들과 함께했다. 표면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준 건 나지만, 나도 아이들과의 소통으로 인해 학생들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며 조금씩 더 나은 교사로 더 성장해 갈 수 있었다.

challenge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physically challenged는 육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며 맞선다는 의미이며 장애인을 존중하면서 하는 말이다.

심지어 이런 말도 있다. vertically challenged 수직적으로 도전받는다는 것은 키가 크는 수직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한 어려운 상황임에도 좌절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키 작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은근히 돌려까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어쨌든 도전이라는 것은 학생들이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어려움을 면제받을 학생은 없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어려움에 맞서서 이겨내는 것이 능력이다.

그런데 교사가 학생들의 도전정신을 의도적으로 억압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학생들은 좌절스러운 상황을 그냥 인정하고 그저 받아들인다.

오래전 교회 고등부 제자가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배구를 하는데 공이 럭비공처럼 자꾸 튀어 나가니 체육 선생님한테 “너 장애인이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장 반발할 수가 없어서 집에서 실컷 울고 어머니께 배구공을 사달라고 해서 밤마다 치열하게 연습하고는 실기 만점을 받고 선생님께 따졌는데 정작 선생님은 기억조차 못 하고 있더라는...


상처는 남았어도 결국 극복을 해낸 이런 학생은 좀 드문 편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단정적인 비판이나 꾸중을 들으면 스스로 그럴 수도 있다는 자기규정효과(self-definition effect)로 자신을 바라볼 수도 있다.

당장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른들의 질책이나 비판이 그럴듯해 보이고 오히려 합리적이기까지 한 데다가 이후의 성장 가능성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대로 믿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잘못하고 실수했을 때 일반화시키는 비판의 말은 아이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실수와 좌절은 그 순간에 교정이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일 뿐인데, 그걸 아이의 정체성과 결부시켜서 너는 그렇게밖에 못하는 존재니, 한심하니 이런 발언 등은 아이들의 그런 좌절의 순간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브레네 브라운 박사는 <마음 가면>이라는 책에서 I made a mistake라는 생각은 guilt(죄책감)로 행동의 교정만 하면 되지만, I am a mistake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shame(수치심)으로 타인과 자신이 규정한 그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학생들과 성적으로 상담할 때 선생님들은 지금 아이의 성적으로 어느 정도까지밖에 못 간다는 말을 현실을 바탕으로 얘기해 주면서 더 자극을 받아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활용하지만, 아이들은 그냥 자신의 한계로 선을 그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당장의 출발점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회복탄력성은 부족함에 대한 자각에서 오히려 시작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후의 가능성과 잠재성에 대한 시각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희망고문으로 그칠 수도 있지만, 아직 출발점에서부터 아이의 성장의 가능성을 막아설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립심과 자기주도성으로 스스로의 성장을 이뤄가지만... 그럼에도 어른이 필요한 것은 어른으로부터 넓고 먼 시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대개 바로 앞의 상황만 볼 수 있다.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아이들의 출발점과 현실의 제약도 함께 이야기해 줄 수 있지만, 결국에 도달할 그곳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아이들에게 가장 크게 와닿는 이야기는 교사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극복한 삶 자체의 스토리다. 교사는 실패와 좌절을 많이 할수록 아이들 앞에 설 때 더 풍요로운 자산을 가진다. 그 아픔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사의 좌절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현재진행형인 부족함 그대로를 드러내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삶으로 전하는 교육이 될 것이다.


교사도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모든 삶의 모습으로 학생들을 만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다가서면 더 큰 교육의 효과가 나타난다.


난 오늘도 도전에 대한 응전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도전은 더 거세진다. 그만큼 아이들에게는 더 큰 위로를 전할 수 있어 난 도전에 기꺼이 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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