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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감독으로 바라 본 수능시험장의 긴장감

by 청블리쌤


수능시험장으로 사용되는 고등학교 교사의 부캐는 수능감독관이다. 고3 학부모, 고3 담임, 환자 등 소수의 인원만 열외이기 때문에 수능 시즌이 되면 문득 많이 아프고 싶다. 그러나 자신이 빠지면 아침에 시험장에 가서 응원을 해줘야 할 고3 담임교사가 그 자리를 채워야 하므로 보통은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육체적인 고됨은 더 힘든 일을 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부디 법적 책임을 지는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수능 당일 아침 감독관 회의할 때 첩보전을 방불케 할 긴장감 속에 모두가 학교시정의 표준 시간에 시계를 정교하게 맞춘다. 수능장에는 벽시계가 없다. 시간 오차로 인한 법적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시계를 안 가져온 수험생이 감독관에게 물었던 시간에 오차가 있어 소송을 당한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감독관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시간은 1교시다. 혹 자신의 의도하지 않은 사소한 실수 하나가 학생들의 인생에 회복할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염려로 인한 긴장감만 해도 견디기 벅찬데 난생처음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의 긴장감까지 온몸으로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8시 10분에 입실하면 시험이 시작되는 40분까지 수험생 소지품 정리 후 본인 확인과 시험 유의사항 전달을 하고는 긴 시간을 정적 속에서 견뎌내야 한다.


학생들은 모든 소지품을 가방에 담아 교실 앞에 내고 시험이 시작될 때까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하기까지 한 그 영원 같은 시간에 종교에 관계없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절실함이 묻어나는 비장하기까지 한 긴장감을 삼키고 있다.

아닌 척 하지만 역시 긴장하고 있는 감독관들은 그나마 아무 할 일이 없는 수험생들의 시선까지 느끼게 되면 어색함까지 더해진다.


언젠가 1교시 수능감독할 때 학교 옆의 공영방송국에서 영상을 찍어갔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줄 알았고 또 그러기로 다짐하고 비장한 각오로 1교시 감독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역뉴스에 영상이 나온 다음 날 학생들이 내게 이랬다. “카메라 있다고 너무 가식적으로 해맑게 웃은 거 아니에요? 완전 친절한 척 뭐예요, 쌤?”


1교시 시작 직전의 긴 시간을 긴장감과 간절함으로 버텨내고 막상 수능이 시작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긴장감이나 불안을 느낄 겨를 없이 시험에 몰입한다.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빠른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그러나 감독의 시간은 멈춘 것 같다. 수험생들에게 사소한 영향도 끼칠 수 없어 거의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긴장감이 누그러질수록 더 긴 지루함을 이겨내야 한다.


결국 긴장감이 불안함으로 느껴지는 것은 설렘처럼 대개 그 일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만 유효하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시험 직전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종착점에 이르러서 이제는 무대 위에 즐기면서 공연할 준비를 다 끝마친 것 같은 홀가분함과 실력 발휘에 대한 기대감을 벌써 느끼고 있는 듯 보이는 학생들도 있다. 그렇게 시작된 실전에서 이전의 긴장감은 유쾌한 집중과 몰입의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해방감을 만끽하며 막 달려나가는 걸 상상하면 안 된다. 혹 있을지 모르는 답지 인적사항 오류 여부를 확인하는 20-30분 이상의 시간 동안 각 시험실에서 대기해야 한다. 마지막 교시에 교실에 남는 감독관은 본부에서 답지 오류 점검이 완료될 때까지 학생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다가 안내방송에 따라 귀가하도록 돕는다. 학생들은 해방감과 온전한 기쁨은 대기하는 시간 동안 잠시 보류한다. 귀가해도 좋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순간 인질에서 풀려나듯 아이들은 교문밖에서 기다리는 가족의 품에 안기고, 결국에는 그 순간부터 실질적으로 학교 울타리를 넘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진정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2011년 마지막 교시에 샤이니의 키가 응시하는 시험실에서 감독을 했다. 무작위 추첨처럼 당첨된 나를 다른 선생님은 마냥 부러워했다. 감독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진지하게 시험을 응시하고 있는 키를 향하고 있었다. 이래서 연예인을 하는 거라는 감탄을 하면서...


수능이 끝나고 대기하는 시간에 긴장감이 사라진 해방감을 분출하듯 옆 교실의 학생들이 키에게 싸인을 받겠다고 몰려들었다. 학생들을 각자의 시험장으로 돌려보내고, 같은 시험실에 있는 학생들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혔다. 그렇게 감독관의 권한으로 나의 책임을 다한 후, 종이 한 장을 가져다가 키에게 살짝 들이밀면서 쑥스럽게 싸인을 부탁했다. 친절하고 멋있게 한 싸인을 복사해서 다음 날 반 학생에게 돌리니 어떤 아이들은 감격해서 울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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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이 긴장되는 것은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탐구영역은 한 문제 차이가 등급의 차이이기도 하다. 게다가 부정행위의 규정도 엄격하게 적용되며 의도하지 않은 부주의함으로 적발되는 경우도 많다. 매해 부정행위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4교시 탐구영역 시간에 응시하는 두 과목이 응시 순서대로 단 한 과목의 시험지만 책상 위에 올려야 한다는 것을 어긴 경우다. 유의사항에 충분히 주의했으면 막을 수 있는 것이어서 너무 안타깝다.


사용하지 않았어도 휴대폰이나 전자기기 소지만으로도 부정행위자가 된다. 아이가 추울까 봐 아버지가 벗어 준 외투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려서 부정행위로 적발된 사건이 있고 나서는 감독들은 자신도 모르는 전자기기 소지의 우려를 전달하며 가방과 옷 등을 다 꼼꼼히 살피라는 멘트를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 제자 중 한 명은 늘 가방에 넣어다니다가 잊어버린 전자알람이 울려서 1교시 중에 쫓겨나기도 했다. 이후 수능최저가 없는 명문대학에 합격하긴 했지만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소한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것은 감독관도 마찬가지다.

감독 시 늘 듣는 말이 수능 감독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다. 혹 의도하지 않아도 수험생에게 불편을 끼치면 법적 책임까지도 져야 할 수도 있다. 동료 교사가 수능 감독 마친 날 저녁때 남편에게 감독하다가 기침했는데, 변호사 살 돈 있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웃어넘겼지만 모두 정말 그런 일이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감독의 과잉친절도 냉혹한 대처도 다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수능 감독을 많이 한 사람이나 처음 한 사람이나 그 책임의 무게로 인해 긴장하고 힘들어한다.


수능은 실력만이 아니라 멘탈까지 테스트하는 시험이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된다는 부담감을 이겨낸 성취의 기억은 이후 학생들의 삶에서 더 큰 자신감으로 자리한다. 전국규모로 출근시간을 늦추고 영어듣기 시간에 비행기도 뜨지 않으면서까지 온 국민이 숨죽이며 마음의 응원을 보내는 건, 우리도 모두 그 과정을 지나왔고, 우리 자녀들 역시 그 과정을 거쳐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한 번 이상은 겪는 통과의례라는 이유로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어린 나이에 맞이하기에는 너무 큰 인생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껍질을 깨고 나오는 듯한 모든 수험생들의 그 성장통은 철저히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수능감독관이 어렵고 힘들다고 불평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삶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격한 공감과 응원의 마음으로 그 결정적인 성장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특권과 사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능감독관은 공정한 시험의 진행을 관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돕고 그들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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