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8, 4번째 에피소드.
수술할 때 실수했던 레지던트의 좌절하는 모습을 보며 다가간 닥터 베일리
You’re playing the surgery over and over in your head, right?
오늘 수술을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 중이지?
- How did you know?
- 어떻게 아셨어요?
You don’t think I ever made a mistake in the OR before?
Or watched Meredith Grey make a mistake?
나라고 수술실에서 실수를 안 했겠니? 아님 메레디스 그레이가 실수하는 걸 지켜본 적이 없었을 것 같아?
- I feel awful.
- 끔찍한 심정이에요.
You should. If you don’t, you’d be in the wrong line of work. It’s that feeling, that – that awfulness – it sticks with us, so we don’t ever make that same mistake again. It’s how we become great.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잘못된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 느낌, 그 끔찍함은 계속 떠나지 않아. 그래서 우리가 다시 실수를 안 할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우리는 훌륭하게 성장하게 되는 거고.
의학 미드에서 레지던트들이 병원실습하는 것을 보면서 난 학교에서 교생실습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열의 있는 레지던트들이 서로 수술실에 들어가려 하고, 실제로 수술하는 것을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한 시간이라도 수업을 더 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던 나의 교생실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난 동기들의 추천으로 을종 대표수업까지 했다. 교수님들도 총출동하시는 행사여서 부담은 되었지만 기분좋은 설렘이었다. 수업 후 문학과 어학이 만난 이상적인 수업이라는 교수님의 극찬도 이후 나의 수업설계에 끊임없는 격려가 되었다.
수업시수를 짤 때, 지금은 처남인 과 선배 형이 여학생반 수업이 부담스럽다고 자신의 여학생반 수업을 나의 남학생반 수업과 바꿨던 기억도 난다. 교생실습 기간에 난 20시간의 수업을 했고, 그중 절반이 여학생반 수업이었다. 그때도 여학생반과 케미가 더 잘 맞았다. 어학 특유의 감성적인 접근과 세밀한 부분까지도 느낌이 통했고, 교감도 더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지도 선생님은 실력이 뛰어나고 학생들에대한 카리스마와 열정이 넘치면서도 무섭고 냉철하기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난 그분께 많은 빚을 졌다. 교사로서 갖춰야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냥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교생 기간의 수업은 이후 현직에 나와서의 수업 방향에 엄청난 영향, 아니 출발점과 초기 모형을 확정 짓는 기회였으므로 초기의 나의 수업모형을 확정하는데 너무도 크고 좋은 영향을 주셨다.
지도선생님은 교생 수업 참관하시다가 오류가 있으면 수업 중 바로 학생들 앞에서 지적해서 수정하시기도 한다는 이야기에 겁도 났지만, 지금은 이해가 된다. 교생 한 명이 체면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잘못 전달되는 지식의 오류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셨던 거니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도 현실지만, 실수를 했을 때 주변의 반응과 스스로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이후의 실수재발을 막고 더 성장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 짓는다는 것도 명확한 사실이다.
질책이 아닌, 성장의 눈으로 실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 실수를 통해 성장의 과정을 거쳤던 선배나 교사나 어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드라마의 닥터 베일리의 모습은 그런 어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막연하게 괜찮다는 무책임한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 감당해야 할 부분을 명확하게 해주면서도 성장의 관점에서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모습에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와는 반대로 실수를 일반화해서 비난하듯 판단하듯 상처를 주면, 실수한 본인은 실수 교정에 대한 의지보다 스스로의 자존감이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실수와 실패를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회복의 과정까지 나아갈 수 있고, 이후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노력을 이어갈 수 있지만 실수에 대한 공격적인 비난은 당사자가 가면을 쓰며 회피하는 반응을 이끌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당장 잘 하지 못해도 점점 더 좋아질거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적어도 실수한 당사자에게 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본인 스스로도 충분히 가슴이 아플 것이기 때문에, 보통은 타인의 질책보다 공감의 마음이 더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당사자가 그 실패와 실수를 빨리 잊어서는 안 된다. 실수를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벤트로 생각하지 않고 가슴에 품어야 역설적이게도 현실에서는 일회성의 이벤트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아픔과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 대신 감당할 수 있는 아픔이 되도록 선배나 어른들이 위로와 공감을 듬뿍 전해주어 스스로 잘 이겨내도록 도와야 한다.
난 학교에서 실패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을 늘 만난다. 아이들이 그저 회피하거나 가면을 쓰거나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패와 아픔에 직면하도록 돕는 역할이 절실함을 느낀다. 그리고 솔직하고 겸허하게 반응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게 본인 스스로 아파하도록 말을 아끼며 공감의 깊이를 더해주어야 할 사명도 느낀다. 그래야 그 아픔이 성장통이 될 수 있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