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난 입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주위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며 무조건적으로 사랑과 관심받을 수 있었을 거니까... 그만큼 나도 모르게 지쳐 있었을 거라는 슬픈 생각도 들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박감에 시달렸던 흔적을 일기장에서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부모님은 사랑이 많은 분들이셨는데도 이럴 수 있다는 건 얼마 전 포스팅했던 <사랑하지 않으면 아프다>에서도 정리한 적이 있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858426879
완벽주의자인 아버지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셨다. 학력고사 시절, 결과적으로는 서울대 진학 가능한 성적이어서 지방대에 진학하는 것 자체가 아쉽기는 하셨겠지만, 지방거점대 사범대 차석(문과 전체 3등)을 했을 때 분노하셨다. 지역뉴스 경북대 수석에 내 이름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단적인 예다. 난 늘 잘해야 본전이었던 건데 늘 본전도 못 찾고 헤매는 느낌과,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나의 성취에 너무 심취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버지 같은 강압은 아니었지만 결국 칭찬과 기대도 부드러운 족쇄로 옭아맬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늘 성취 이상의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시니 난 늘 그 이상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늘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학창 시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잘했다, 장하다”가 아닌, 성적에 관계없이 “애썼다!”는 말이었다. 나의 치열한 노력은 늘 결과에 가려졌기 때문에 난 평상시의 노력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직전 고등학교에서 학생 한 명이 중간고사, 기말고사 끝나고 나면 성적이 채 나오기도 전에 나를 찾았다. 나의 한 마디를 기대하면서... 그 말은 “애썼다!”였다. 그 학생은 그 말을 들을 정도로 실제로 열심히 했고, 사실 결과를 떠나서 그 정도면 다 이룬 것이었다. 결과와 노력을 굳이 결부시켜 노력의 부족함이나 무의미함을 끌어낼 필요는 없는 것이니...
그렇게 사랑받으려면 더 노력하고 더 애써야 한다는 생각이 날 지배했고 성취와 자격만으로 사랑과 인정을 얻는다고 느끼면서 살았던 것 같다. 중소도시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한다는 건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관심과 기대도 감당한다는 의미였다. 고 1 모의고사에서 응시자 중 전국 4등까지 했을 때 그 기대는 절정에 이르렀고 나의 노력과 실력은 그 부담감을 넘어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늘 나 자신의 성장의 기쁨보다, 알아간다는 배움의 즐거움보다, 다른 이들의 기대에 맞추는 공부를 해야 했다. 사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설정하고 그린 그림이었고, 누구도 나의 그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도 믿는다는 기대의 격려만 내 마음에 새겨주실 뿐이었다. 그냥 잘 못해도 괜찮고, 과정 중에 애썼으니 괜찮다는 말을 잘 들어본 적이 없었 던 것 같다.
(그 아픔으로 인해 나ㅣ가 근무하던 각 학교의 전교권 학생들에게 난 큰 공감과 위로의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었다. 진정 아픔은 사명이다.)
고3 때는 이유 모를 복통에 시달렸다. 분명히 많이 아픈데 병원을 여섯 군데 다녔는데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병원에서 대입시험 끝나면 낫는다는 처방을 해주었고, 그 말은 거짓말처럼 들어맞았다.
나의 공부는 절대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 늘 불안한 수치심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분명 순간순간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나 같은 유형을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라고 칭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비관주의자들은 성취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방어적 비관주의는 예외라고 한다. 최악의 가능성까지 미리 생각하여 대비하기 때문이다. 30 정도만 준비하면 충분한 걸 50 이상 준비하고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정말 피곤한 유형이다. 덕분에 성적은 좋았지만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죽을 듯이 소진해야 했다.
그런 작은 실수에도 소심해지는 경향은 인간관계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동료나 선배와의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난 뭔가 늘 애쓰고 노력해야 자격을 얻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고 모든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웠고 눈치만 먼저 보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2년간 30번의 교사 및 학부모 강연을 한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대구 영어과 큰 행사에서 강연할 때 후배들이 정말 모시기 힘든 분을 섭외했다고 놀라워했다.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리 자체를 불편하고 어려워하는 부족함에 대한 인식이었던 거다.
활동중심연구회에서 실질적인 첫 강연을 시작했는데 그때 있는 모습 그대로(물론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만) 인정해 주고 반응해 준 그 상황이 내게 그전의 아픔을 씻어내는 듯한 치유의 순간이 되었다. 3시간 동안 강연하면서 나는 거기 계신 선생님들께 뭔가를 베푼 것이 아니라 치유의 감격적인 시간을 보냈던 거다. 그래서 이번에 3년 차 강연 때 연구회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왜 학생들 앞에서는 괜찮냐고?
아이들은 나의 실수와 연약함을 오히려 유머로 받아 주기 때문이다. 내게 이렇게 말해 주는 것 같다.
"선생님, 실수해도 좌절하셔도 괜찮아요. 우리도 그러고 있는데 선생님도 그러신다니 위로가 되어요. 우리 같이 힘내요."
그리고 객관적인 매력 없는데도 사랑해 준다. 있는 모습 그대로...
누군가는 내게 나의 아픔과 고통을 학생들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승화하고 있다고 칭찬할지 모르지만, 난 이렇게 단언하고 싶다.
오히려 아이들이 상처투성이인 날 살려 주었다고.
교육은 일방적인 것이 아님을 난 삶으로 증명하며 외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