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좋은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정이현 소설가의 짧은 이야기 후 이어지는 에세이가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중 몇 구절을 뽑아 제 느낌을 더해 봅니다.
‘괜찮다’의 어원은 어쩌면 ‘관여치 않는다’는 말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조선 중기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서, 아무 데도 관여하지 않으면 무사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한 기대가 그 언어를 만들어냈다는 가설이다.
아무 편도 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중립을 지키면 나를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기분이 상해도, 상처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짓는 것이다.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에게서 ‘무슨 말을 듣든 다 괜찮다고 또 다시’ 말할 거라면, 다시 시작하지 말라고. 괜찮을 땐 괜찮다는 말을,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다는 말을, 여하튼 언제나 당신의 진심을 말하라고.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는 ‘좋은 관계’란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작가는 말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끼치는 불편함에 대해 ‘괜찮아’를 발음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고.
내가 과도하게 개입하여 상처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불편을 겪은 만큼 보복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냥 상관없다고 여기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이다.
그러나 정말 가까워지고 싶은 관계라면 괜찮지 않아야 하고 그걸 솔직하게 표현해줘야 한다. 무조건 인내하고 참아 주는 관계는 “좋아 보이는 관계”이지 결단코 작가가 말하는 “좋은 관계”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우연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세상의 어떤 사랑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렇다. 그 우연을 발견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며 그 우연을 또 다른 더 좋은 우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묻어두지 않는 후회 없는 결단이 중요한 것이었다.
늘 새기는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었다면 모두 백 개의 텍스트가 된다는 말. 다들 따로따로 읽는다. 따로따로 느낀다. 개별적으로 살고, 개별적으로 사랑한다.
똑같은 수업을 듣는데도 성과는 다 다르며 똑같은 사건을 겪는데도 입장에 따라 기억도 달라진다. 영화로도 개봉되었던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소설이 이런 상황을 훌륭하게 잘 그려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상황과 현실에도 각기 다른 삶과 사랑과 이별을 한다. 그래서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공감과 이해의 첫걸음일 듯하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은 ‘한 글자 한 글자 쓴다’는 것이다. 농담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소설 쓰기에 관해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그뿐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쓰지 않으면, 한 땀 한 땀 꿰매지 않으면, 어떤 소설도 완성되지 않는다. 이것은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진술이다. 무엇을 써도 백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절망적이고, 모든 작가들이 공평히 이 백지 앞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이미 출간된 지구의 모든 소설들은 최초의 순간, 완벽한 공백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쓰기로 결심한 이상, 지리멸렬하게, 서서히 결여를 메워가는 것 말고는 누구에게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큰 위로가 되는 말이다. 인정받는 소설가조차 이렇게 고뇌 속에 한 글자씩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는 과정을 넘어선 성과에 대한 조급함과 성취 여부만으로 노력의 의미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치열한 과정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 걸음이 목적지가 되도록 해야 우리는 한 글자의 의미와 그로 인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늘 새롭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가장 쉽게 저지르는 오류도 한글자의 가치를 못 보기 때문이다. 기본기를 무시한 성취지향적 고난도 도전의 고단한 삶... 과거의 내용도 다 이해하지 못했는데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의 가치를 잊은 채 선행학습에만 열중하며 일상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삶의 무게... 결국 소설의 완성은 “한 글자”였다.
완전히 녹지 않은 채 도심 길가 한편에 아무렇게나 쌓인 눈의 형상은 ‘한순간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것들’의 운명을 암시한다.
...
눈사람에 대해 : 인간의 생명은 좀 더 길 뿐, 결국 눈으로 만들어진 눈사람의 숙명과 다를 바 없다.
...
사라진 것들은 한때 우리 곁에 있었다.
녹을 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것처럼...
작가는 책의 첫 부분에 이렇게 쓰고 있다. “녹을 것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그 마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