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속도로 불안하여 배움의 즐거움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by 청블리쌤


상대평가 시스템에서는 늘 남들과의 속도를 인식하고 바라볼 것을 강요당한다. 나만의 속도를 고집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누군가의 속도에 불안함과 조급함까지 강요당한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고 싶기도 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런 확신이나 자신감이 확인할 수 있어야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몰라서 학원을 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집에서 공부 못하는 모습을 참기가 어려워 학원을 보내는 부모님들도 많다. 더구나 남들도 다 그러고 있으니 자신만 그 대열에서 이탈하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억지로라도 대열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아이들은 뭔가를 배워가며 성장한다는 기쁨보다 더 큰 불안함으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어렵고 힘들어도 대열에서 이탈하면 영영 따라잡을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불안함으로 힘겨운 버팀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극단적인 반응은 두 가지이다. 학원 탓을 하고 학원을 바꾸는 경우와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주저앉는 경우다. 두 가지 다 치명적이다. 남 탓을 하면 자신의 부족함을 결국 알아낼 기회가 없다. 자신의 부족함만 바라보면 일어설 힘을 얻지 못한다.

보통 문제는 모두에게 그 출발점과 역량과 속도를 존중하지 않는 시스템에 있다. 학교나 학원이나 대개는 결론을 정해놓고 그 결과와 성취에 맞출 것을 자연스럽게 강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통 뭔가를 새로 배우는 일은 설레는 일이며 그 소소한 성취감으로도 배움에 대한 지속적인 의지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보통은 그 결론에 자신의 초라한 자리를 비춰보며 성장보다는 결핍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래서 상처를 받으며 힘들어하며 포기하거나, 상처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그 결과에 무감각해지면서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자리를 지킨다.



딸이 몬스타 엑스 덕질을 한심하게 보던 난, 요즘 대놓고 덕질을 한다. 딸이 그런다. 이젠 더 이상 자신에게 덕질에 대해 비판할 수 없을 거라고... 딸이 좋아하는 일이니 인정해 준 거지, 덕질 자체를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이젠 이해까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 학생들에게 좋은 글 읽고 댓글 달기 글을 검색하다가 그냥 내가 여러 자료를 조사해서 글을 쓰면서 브레이브 걸스를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응원하는 이들이 잘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흐뭇한지 난 새삼 느끼고 있다.



유튜브 덕질을 하다가 단발좌 유나가 커버한 쏠(Sole)의 Slow라는 노래를 들었다. 울컥했다. 가사 전체를 보면 사랑하는 관계에서의 아픈 과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몇 부분에서는 힘들어하는 유나 자신의 이야기였다. 3년 반의 공백기 중에 찍은 영상이었다. 그녀는 누워있으면 바닥으로 꺼질 것 같다는 심경을 언니 멤버들에게 토로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 유나는 이 노래로 울고 있었던 것 같다.

https://youtu.be/h4_DcQylJ_c



I don't wanna go back

난 오늘 하루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해

사람들은 말해 서둘러야만 해 매번 같은 말에 많이 지쳤어 난 이제

그래 그땐 그랬지 참 좋았지 힘들어도 난 마냥 좋았어 난

어디서부터 어떻게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 가지 않아도 돼 잠깐 멈춰도 돼

그래도 돼

Take it slow, Slow, Go Slow, Slow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 가지 않아도 돼 잠깐 멈춰도 돼 그래도 돼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우리 학생들에게 제자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브레이브 걸스에 입덕하라는 의도보다는... 그 가사에 위로를 받으라고...


목표를 정해 놓았어도 단계별로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발걸음이 아니면 늘 위태롭기만 하고, 대개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더 큰 좌절을 가져온다.

지금 이 순간의 목표는 남들과 속도를 같도록, 그 이상의 속도가 되도록 억지로 애쓰는 것이 아닌 거다.

어차피 자기만의 속도로 가야만 오래갈 수 있고 제대로 갈 수 있다.


쇼트트랙에서 우리나라는 단거리가 아닌 경우 처음부터 질주하지 않는다. 능력은 되지만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능력이 되니까 때를 기다리는 거 아니냐고? 아직 준비가 안 되었으면 더 때를 기다려야 하는 거다. 더 준비가 될 때까지 어설프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자폭하면 안 되는 거다.



지금 이 순간 너무 버거워서 배움의 즐거움을 잃어 가고 있다면 돌아볼 때다. 결국은 도달하게 될 그 지점 어딘가에서 얼쩡거릴 이유는 없다. 어차피 가게 되어 있다.

단계별로 능력껏 꾸준히 그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자신의 단계를 넘어선 어딘가의 지점에서 들일 노력과 시간의 아주 작은 부분만으로도 이뤄낼 수 있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거라고...

어쩌다 보니 도달하는 것이 진짜 도달인 것이다. 그 과정도 분명 행복할 것이고...


학생들은 매 순간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래도 된다. 느려도 된다.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면... 눈에 보이는 선행의 정도나 자신을 괴롭히듯 공부량으로 승부를 거는 그런 외적인 증명에서 자유로워야 진정한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주어진다.



둘째 딸도 늘 주변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좌절한다. 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너만의 생생한 너 자신의 주도적인 걸음으로 인한 배움과 성장만이 진짜라고... 연출된 효과도 억지스러운 결말도 원하지 않는다고... 최종 도달점이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라도 우리는 우리가 준비되고 갖춘 것만큼만 감당해야 하는 거라고... 지금 이 순간의 우리의 위치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판단을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며 그렇다면 기회는 계속 있는 것이라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성장하며 나아지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그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고... 그러나 성적이나 거창한 성취에서 눈을 돌려 사소하게 알아가는 즐거움에 시선을 맞춘다면 매 순간의 성장을 확인하며 기뻐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늘 흐트러짐 없이 만족스러운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때가 있음도 인정하라고... 그 부족함으로 우리는 휴식을 얻고 충전이 되어 또 다른 기회에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니... 우리는 당장의 성적보다 더 큰 그림의 성장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더불어 살며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책을 읽으면서 찾아가라고... 책을 읽는 것은 사치가 아니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배려하는 즐거운 삶도 꿈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아니라고... 그냥 매 순간 사소한 의미라도 찾아가며 진심을 다하면 된다고... 그 당시의 진심 어린 노력이면 되고, 다른 때보다 집중력과 노력이 부족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하다고 느껴도 그 순간의 최선이기만 하면 된다고... 힘들어서 쉬는 그 과정도 소중한 과정으로 존중해 주라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미래의 행복의 요건이니... 부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듯 살지 말라고...


즐거워하고 행복할 자격이 있으니 마음껏 젊음과 삶을 누리라고.. 왜? 그게 지금 이 순간 너에게 주어진 축복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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