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력하는 사람이 불행해지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일본인 작가 오타 하지메의 책이다.
인정받으려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필연적인 과정이자 판단의 기준이 되며, 우리가 행동하고 노력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SNS에 몰입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는 등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은 인정받으려는 동기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관종이라고 분류하는 사람들은 그 인정의 강박적 유형일 수도 있다.
분명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실제로 성취를 거두는 동기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정의 강박증 같은 현상이다.
학교 현장에서 목격하게 되는 아이들의 정신적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 중 하나는 인정받으려 하는 마음이다. 교육 시스템 자체가 판단하기 용이한 표준화된 기준으로 학생들의 현재 위치를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서열화된 대학의 목록에서 자신의 위치를 견줘보며 자신의 성취를 다른 사람의 인정과 동일시하는 학생들도 많다.
우리는 친밀한 사람의 인정을 특히 더 갈구한다. 그래서 때로는 악의 없는 가족들의 기대와 격려가 아이들의 어깨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분명 자기 아이의 능력을 알고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부모라도 자녀를 객관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 아이의 속도를 인정해 주기는 더 어렵다.
그런데 아이들은 인정받으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모와 교사의 기대도, 무관심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예민하고 여린 시절의 아이들을 바라보면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교사와 부모의 경력이 쌓여도 정답을 여전히 헤매야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부모로서 아이들을 믿어주고 기대해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공부나 행동의 출발점이 될 수 없어야 한다. 공부의 주체는 아이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무대에 서고, 어른들은 그저 아이들이 성취하는 순간이나 넘어지는 순간조차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지켜보는 자리에 있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른의 역할이 커질수록 아이들의 자발적 출발은 더뎌진다. 어른의 역할이 클수록 아이들은 인정받고 기대에 부응하려는 외적인 동기로 인해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 인정과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이들 걸음의 동기가 된다면 그 결과나 성취만으로 자신의 모든 과정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혹 기대에 부응하더라도 그 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더 큰 기대와 응원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들이 성취할 때 함께 기뻐해 주고, 넘어질 때도 함께해 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은 어떤 경우에든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실은 넘어질 때 더 많이 성장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내려놓게 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자신만의 걸음에 느끼는 성장과 기쁨과 즐거움에 집중하도록 해주면 되는 거다.
저자는 일본의 상황에서 말하고 있지만 지명과 인명만 바꾸면 우리나라의 현실과 많이 다르지 않다. 인정받고 싶은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좋은 기회 같은 책이었다.
몇 구절만 소개하며 나의 생각을 더해 본다.
저자는 인정 욕구의 순기능을 이렇게 말한다.
인정 욕구는 존경·자존의 욕구라고도 불리듯 자기의 인정은 물론 타인의 인정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아무리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해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이나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를 인정하기 어렵다.
즉 인정은 거울과 같은 것이다. 거울을 통해야만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과 주위의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그것이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인정은 사회화된 우리가 필연적인 겪어야 하는 성장을 점검받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과도할 경우는 의도하지 않은 더 큰 부작용을 겪는다.
저자는 강박에 이르는 인정욕구를 이렇게 말한다.
‘인지된 기대’, ‘자기효능감’, ‘문제의 중요성’을 강박의 세 가지 요소로 부를 수 있다. 인정 욕구에 대한 강박 정도를 공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인지된 기대-자기효능감)*문제의 중요성 = 부담감의 크기
빅터 프랭클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로고테라피(의미요법)를 역설하며 이렇게 말했다. “공포증과 강박 신경증의 증상 중 불안과 강박 관념은 환자가 그로부터 도망치려고 하기보다 그것과 싸우려고 할 때 더욱 증가한다.”
이 같은 현상을 ‘정신상호작용’이라고 하며 이는 원래 신경증에 따른 불안과 갈등은 정상적인 사람에게도 생기는 심리 상태로,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약점을 제거하려고 노력할수록 그 뜻에 반해 자신에게 좋지 않은 신경증 증상이 나오게 된다.
요컨대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라는 의식이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한 그 불안을 제거하려면 할수록 마치 개미지옥처럼 불안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다. 그럴 때 불안을 제거해 주려는 주위의 노력은 오히려 본인을 궁지로 몬다.
그래서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주변의 인정에 대해 눈과 귀를 다 닫아야 한다는 것인가?
인정받으려 너무 의식하며 애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정에 연연하지 않고 성장을 이루는 자신의 발걸음에 집중하는 것이 더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인정은 상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자신이 아무리 인정받고 싶어도,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인정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과 경제력이 있어도 힘을 써서 인정을 끌어낼 수는 없다. 물론 스스로 바라지 않았는데도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인정받을 때도 있다. 이처럼 타인이 존재해야 하고 서로에게 의존하는 가운데 충족되는 욕구인 것이다.
인정에 대해 이것만 인정해도 강박처럼 반응하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작은 마을과 중소도시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좋은 성적으로 주변의 주목과 기대를 받았던 난, 그 관심과 응원이 내게 축복인 줄 알았다.
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고, 그 기대에 충족이 되어야 내 삶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이 지켜지는 줄로만 알았다. 마치 그 지역과 학교의 대표 선수로 서울대 입시라는 경기에 출전하는 느낌이었다. 서울대 불합격하고 나서야, 그리고 냉담해진 주변의 공기에서 난 현실을 알게 되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 진심이 아니었고, 생각보다 관심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 혼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기대와 응원에 보답하려는 숭고한 미션처럼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판타지와 고통 속에서 혼자서 신음하고 있었다. 얼마전 그때의 고통까지 담아 둔 그당시 일기를 보고 이제까지 살아 있는 나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로 어떻게 버텼는지가 신기할 정도였다.
“애초에 인정은 상대의 의지에 달려 있다.”
난 어떻게든 나의 의지로 상대방의 인정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혹 서울대에 합격했더라도 그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도 놓치고 있었다.
주변의 관심과 기대를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그건 그저 주변적인 것이며 본질적인 것과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는 안 되는 거라는 걸 한참 나이가 들고 나서야 깨달았다. 주변적인 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거다. 그러나 나 자신의 기쁨과 행복의 성장은 변하지 않는 나의 삶의 본질이다.
그러니까 인정받으려고 너무 애쓸 필요가 없는 거다. 인정은 나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닌 그들의 결정인 것이니까. 난 지금 이 순간 나의 성장에만 시선을 두면 된다. 인정은 목적이 아니라 나의 노력에 대한 부수적인 부수적 결과물일 뿐이다.
물론 어쩌다 보니 얻게 된 인정에 대해선 그저 감사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인정을 못 받았다고 섭섭해하거나 허탈해할 이유는 전혀 없는 거다.
자기효능감이란 환경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쉽게 말해 ‘하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뜻한다.
자기효능감, 즉 ‘하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일으키는 최대 요인은 성공 경험이다. 실제로 해보고 성공하면 자신감이 쌓인다. 하지만 성공을 거듭해도 스스로 그 가치를 모를 때도 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이 “굉장해!”, “잘하네!”라고 칭찬하거나 전과 비교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려주면 성취의 가치를 실감하고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의욕을 만들고 또 불안을 줄이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주위의 인정이라는 피드백이 필요한 이유다.
자기 효능감은 자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연료가 된다.
큰 딸이 성균관대 진학하고 나서 주변의 친구들은 어떤 일에도 확신에 차서 뭐든 도전하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지속적인 성취나 안정적인 자리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 타이틀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이뤄냈던 성취의 경험으로 무슨 일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기효능감을 얻게 되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큰 딸은 남들처럼 죽어라고 공부만 하지는 않아서 주변의 인정을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특유의 태평스러움과 여유로 학교나 교회에서 공부 못 할 것 같다고 무시당하면서 지낼 정도였다.
난 딸에게 주변의 인정과 평가에 반응하지 말 것과, 성장하고 있고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으니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는 곳이 도달점이 될 것이라는 말만 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주위를 놀래켰는데... 오히려 주변의 기대와 인정이 없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자기만의 속도로 자신의 여정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쿄 올림픽이 끝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보다 의외의 선수가 좋은 결과를 내면서 오히려 부담 없이 즐기듯 할 수 있었다는 인터뷰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리는 인정의 표현방식 중 하나인 칭찬에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칭찬은 부드러운 구속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 칭찬 자체가 자발적 노력의 즐거움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그저 성취의 자리에서 함께 기뻐하고 흐뭇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더 나은 방식이다.
사실 칭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꾸 넘어지고 확신이 사라질 때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해낼 거라는 부담보다 끝까지 성장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을 믿고 있다는 격려가 더 중요하다.
성취와 결과를 분리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결과와 성취와 전혀 관계없이 그들이 사랑받고 지지 받고 있다는 또 다른 관점의 인정이 더 필요한 것이다.
물론 제대로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피드백해 주고, 지금보다 무조건 성장할 미래를 응원하며 현재의 자리에 머물러 좌절하지 않도록 확신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위에 언급한 나의 생각과 비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에서 소개한 구체적인 내용 몇 가지...
흥미진진한 점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정이 공부에 대한 관심과 불안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평가 기준에는 ‘시간을 잊고 공부에 집중한 적이 있다’, ‘공부하면 자신의 능력이 더 성장할 것이다’라는 항목 외에 ‘진학이나 취직 시험 보는 게 불안하다’, ‘공부할 때나 일상생활을 할 때 초조했던 적이 있다’라는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가령 자식이 대학 입학시험을 치를 때 부모는 자신감을 주려고 “틀림없이 잘 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는다고 없던 자신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 자신이 없을 때는 오히려 틀림없이 잘될 거라는데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떨어지면 부모님은 실망할 테고 자신도 엄청난 충격을 받을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시험 결과를 생각하면 할수록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이 강해진다. 그 결과 진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현격히 줄어든다.
한편 대형 학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의고사 같은 시험 결과에서 지망하는 학교의 합격선보다 조금 아래의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조금 위에 있는 학생보다 훨씬 합격률이 높다고 한다. 실력 면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는데 조금 위에 있는 학생은 ‘떨어지면 안 돼’라며 위치를 지키려는 심리가 강한 반면 조금 아래에 있는 학생은 ‘안 돼도 그만’, ‘한번 해보는 거야’라는 공격적인 태도로 시험에 임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이런 역전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인상 깊었던 또 한 구절... 남들이 인정 지옥에 빠지지 않게 배려하는 이런 노력이 넘쳐나길 기대하며...
어느 병원에서는 해마다 가장 모범적인 직원을 선발해 최우수 직원으로 표창했다. 수상자에게 상당히 많은 액수의 상금도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상자 중 다수가 수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계속 잘 일해달라는 뜻에서 표창 제도를 신설했는데 정반대 효과가 나고 만 것이다.
바로 ‘기대에 부응해야만 한다’라는 부담감에 압도당하는 경우. 자신에게 표창 수여를 결정한 사람들은 물론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을 실망시키기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이미 더는 일하기 어려울 만큼 큰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병원에서 최우수 직원으로 표창을 받은 직원이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직하는 일이 벌어지고, 공장 시찰차 방문한 사장에게 “기대하고 있으니 잘해보게”라는 말을 들은 젊은 사원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휴직해버리기도 한다.
표창 수여 행사에서 500만 원이라는 상금을 받은 영업사원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 이렇게 멋진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분발하겠습니다!”
회장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응했다. “자네, 그 생각은 틀렸어. 우리는 자네가 과거에 이미 공헌한 바에 대해 상을 준 것일 뿐이야. 앞으로의 실적을 기대하고 표창한 게 아니라고. 물론 ‘또 이 상을 받고 싶으니 노력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네 자유지만.”
상을 받은 직원이 지나친 부담감을 가지지 않도록 사려 깊게 배려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