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의 중요성에 대해 늘 듣는다. 나도 늘 잠시 멈춰서 생각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야 그냥 흘러가지 않으면서 뭔가의 이유를 알게 되고, 그 이해의 지점에서부터 생각이 자라날 거라고...
그래서 책 제목부터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각을 멈춰야 한다고? 그런데 그게 지적 작용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한 심리법칙이라는 것에 일단 납득이 되었다.
인상 깊었던 주요 구절을 살펴보려 한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을 때는 언제나 그 생각에 대응하는 정서적 반응을 느끼게 된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 사실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이 불행과 우울에서 탈출하는 첫 번째 단계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은 그 구체적 내용에 상관없이 당신이 느끼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근본 원인이 된다. 뭔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신경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생각이 없다면 그야말로 감정을 느끼는 기준이 없어진다.
감정의 시작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 생각하는 내용의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생각은 어떻게든 감정에 영향을 주게 된다.
생각을 열심히 한다고 행복해질 수는 없으며,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행복은 일련의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 상태다. 행복은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평화로운 감정이지, 우리가 열심히 찾아다녀야 할 뭔가가 아니다. 그렇게 찾아다녀서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려고 시도하는 순간, 행복이 우리의 외부에 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은 우리 안의 건강한 정신 작용에서 나오는 느낌이다. 건강한 정신 작용이 우리의 중요한 일부란 개념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길 멈추고 그저 행복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행복해지려는 의지와 생각으로 행복을 생성할 수 없다. 건강한 정신작용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행복이라는 감정이라면,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느끼는 것이다.
당신이 ‘행복한 사람들’ 100명에게 행복해지는 비결을 묻는다면, 그들 중 누구도 살면서 단 한 번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거나, 단 한 번도 부정적인 생각을 안 했다거나, 과거가 완벽했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도 그보다 더 나은 것, 그 순간 경험하고 있는 그 끔찍한 느낌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믿음이 바로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원동력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고, 강력하고, 중요한 뭔가가 있다는 걸 안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연구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행복은 부정적인 생각을 면제받은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환경을 바꿔서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게 만들어야 행복한 게 아니라, 긍정적이고 더 중요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행복을 만든다. 집중하면 그 외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사소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결코 우울해지지 않고, 불행하지 않으며, 언제나 이해심 있고, 자신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 찬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에너지와 관심은 그쪽에 쏠리게 된다. 이걸 모르면, 행복을 찾기란 더러운 물에 옷을 빠는 것과 같다. 불행 한가운데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생각하는 마음 너머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 선택의 지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더라도 우리 안에 사랑과 평화에 반응하길 더 바라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야만 당신은 부정성의 한가운데서도 더 나은 감정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우울증을 겪더라도 우리의 내면에 정신 건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확신할수록,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끈기 있게 그걸 찾을 것이다.
앞서 했던 이야기의 구체적인 지침이다. 우리 삶에 행복의 요인이 실종된 게 아니라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면 눈앞의 큰 행복조차 누릴 여유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선택적인 생각법은 생각 자체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부인과는 다르다. 당신은 세상의 문제들과 당신의 인생에 있는 문제들을 인정한다. 그저 당신은 그렇게 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으니까 인생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곱씹지 않는 편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의 인생 경험은 우리가 관심을 어디에 집중하기로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관심을 문제에 집중하면, 당신의 인생 경험은 수많은 문제로 이뤄질 것이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삶의 더 많은 아름다움과 친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들이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지만, 삶의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아이들은 인생에서 유머와 연민과 기회를 본다.
그러니까 생각은 환경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의도적인 선택이다. 집중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머릿속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채우는 것이 바로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다. 그런 생각들은 항상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왜곡시킨다.
기분이 나쁠 때 하는 생각이 그 순간 보기엔 타당할지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생각들은 거의 항상 비이성적이고 왜곡돼 있다. 기분이 나쁠 때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사막에 나타나는 신기루를 무시하는 것처럼 그런 생각을 불신하고 무시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면 끝없는 왜곡의 길을 가면서도 인식하지 못한다. 모든 걱정과 불안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기분 나쁜 정서 상태에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멈추지 않으면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
기분을 이해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매번 기분이 나쁠 때마다 우리가 지금 그런 감정을 느낄 만하고, 그런 감정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항상 절박하고 독선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너무나 간절하게 믿으려 한다. 여기서 빠져나올 유일한 길은 기분이 나쁠 때 생각과 감정을 믿는 것이 전적으로 어리석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그런 상태에 빠질 때마다 그 생각을 무시하는 데 전념하는 것이다. 기분이 나쁠 때 드는 생각은 관심을 둘 가치가 없다. 그런 생각에는 인생에 대한 아주 왜곡된 시각이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를 해친다. 그런 생각에 전념하지 않고, 그저 내버려 두면 우리의 인생이 좀 더 나아 보일 것이다.
기분이 나쁠 때 생기는 중요한 문제는 그런 문제들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 있어서 빛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황과 같다.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동굴 속 어딘가에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빛을 전혀 볼 수 없다 해도 괜찮다. 빛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안다면, 공황에 빠질 이유가 전혀 없다.
기분이란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모든 인간이 겪는 현상이다. 그렇기에 결국엔 나쁜 기분은 사라지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기분은 저절로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어둠은 알아서 걷힌다. 이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문제에 대해 생각을 덜 할수록, 기분은 더 나아진다.
기분이 나쁠 때 드는 온갖 생각에 관심을 끊고, 그 생각과 감정을 무시하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고 인생에 무심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실수는 하지 말라.
기분이 좋아지면, 당신은 현재의 삶에 훨씬 더 깊이 몰입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나 눈앞의 문제를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비뚤어진 생각을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난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고.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 선택이라면 더욱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영원한 건 없다. 우상향 곡선도 자세히 보면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바닥에 이르면 최악의 절망의 상태를 느끼지만 그것은 희망의 신호일 수도 있다. 바닥에 이르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해가 뜨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머릿속에 들어오는 모든 생각을 쫓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다른 곳(과거나 미래)에서 노느라 너무 바빠서 현재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행복한 사람들은 어제, 한 달 전, 아니면 어렸을 때 일어난 일에 상관없이, 그리고 내일, 다음 주, 혹은 15년 뒤에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상관없이, 마음속 깊이 ‘지금 이 순간’에서 행복을 찾는다. 행복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 우울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인생이란 그저 끝없이 경험하면서 이어지는 일련의 현재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과거는 ‘현재’에 더 열중해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는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언젠가 도착하게 될 더 많은 현재의 순간들로 이뤄져 있는 것으로 본다. 행복한 사람들은 함께하는 사람과 전심전력을 다해 그 자리에 존재하려 노력하고, 과거나 미래에 대해 별생각을 하지 않으며 자신이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몰입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인생의 매 순간을 최대한 충만하게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과거에 얽매이면 후회에서, 미래만 생각하면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과거와 미래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지점이기 때문에 생각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현재를 담보로 한 더 나은 미래는 행복을 보장할 수 없고, 그럴 수 있었다는 후회로 현재 이 순간을 바꿀 수 없다.
아이들은 무슨 일을 하고, 누구랑 같이 있건 그 순간 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해요. 아이들은 현재를 살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경험을 하나도 빼지 않고 완전히 흡수합니다.
아이들이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 시각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행복에 큰 기여를 한다. 아이들이 학원의 주된 삶의 터전이 된 것은 거시적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욕심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해맑다는 것은 어느 때부터인가 칭찬이 아닌 말이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의 해맑은 행복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인들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현재 이 순간의 생기를 다 쥐어짜게 놔두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에 관한 생각으로 우리가 스스로 인생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만, 그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더 행복한 느낌을 되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생각을 의식적으로 떨쳐버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의도적인 노력이 없다면 특히 더.
누군가를 용서하길 거부할 때 당신은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당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다. 당신은 자기가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고문하고 있다.
분노를 품으며 원한을 느끼는 것은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의미다. 용서는 가해자가 아니라 본인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작 가해자는 자신의 고통에 무심하고 기억조차 못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건강한 정신 작용은 당신이 개 짖는 소리를 알아차리기 전에 경험하고 있던 그 평화와 정적으로 볼 수 있다. 평화와 정적에 복잡하거나 화려한 점은 하나도 없다. 그저 조용하고 근사할 뿐이다. 당신은 거기에서 영감을 받고 활기를 되찾은 느낌을 받는다. 당신에겐 통찰력이 생기고, 완전한 충만함을 느낀다. 이때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아주 지혜롭고 명료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이때 삶은 단순하고 아름답다. 당신의 눈에는 문제가 아니라 답이 보인다.
분석적인 마음은 멀리서 들리는 개 소리와 같다. 당신이 그것에 더 집중할수록, 그것은 머릿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고, 의식을 장악하고 평화와 정적에서 관심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소음이 당신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것처럼 들린다. ‘정적을 즐기지 말고, 내 소리를 들으란 말이야.’ 분석적인 마음은 당신의 관심을 애걸하며 시끄럽게 짖는 개와 같다. 그것은 당신의 관심을 차지하고 싶어 한다. 자기 말고는 당신이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주지 못하게 막는다.
분석적인 마음은 지적인 역량을 발휘할 때가 아니면 대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는 도심지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집마당에서 온 동네의 적막을 채우는 개 짖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그 개소리를 의식하는 순간 나의 평화와 행복한 기분은 망쳐지기 시작한다. 행복한 일과에 더 집중할 일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생각을 그냥 생각으로 본다.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무시하고 멈추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상황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도 행복한 느낌을 찾을 것이다. 그들은 행복한 척하는 게 아니라, 행복해질 거라고 예상한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행복한 감정이지, 완벽한 인생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생각에서 파생된 부정적인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부족함과 결핍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생각과 사실과 현실의 한계 등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것 같다.
가장 행복한 인생은 철저하게 분석한 결과가 아니다. 사실 내가 본 행복한 인생은 종종 가장 단순한 인생이었다. 외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내적으로도 그렇다.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사느라 자신의 불행을 분석할 시간도 없다.
행복은 의외로 단순한 데 있었다. 그저 멈추면 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도 멈춰야 하지만, 때로는 생각 자체를 의도적으로 멈춰야 하는 것이다. 불행을 분석하며 끝없는 공상을 하기에 놓치지 말아야 할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한 순간들이 너무 많다.
책의 이런 구절들이 실제 우울증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와닿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해를 하는 학생들을 한 번씩 마주한다. 나의 상담과 진심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약물치료를 받고 전문상담 등의 치료를 통해서 회복되었던 학생의 사례도 알고 있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행복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자만하거나, 힘겨워하는 이들의 노력 부족을 비판하는 식의 접근은 너무 위험하다.
그러나 적어도 위의 글에 공감이 되고, 사소한 의지가 생길 수 있다면 이 책의 지침이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