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교육적 함의

by 청블리쌤

우리는 한 번씩 골리앗이라는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압도적인 느낌의 두려움을.

이스라엘 군사들은 골리앗의 도발에 응수할 수가 없었고, 그건 너무도 인간적인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때 애송이 소년 다윗이 맞서겠다고 나섰으니 어른들은 얼마나 황당하면서도, 아이 뒤에 숨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을 것인지... 그럼에도 아이를 말리고 자신들이 나서지 못한 자괴감도 있었을 것이다.


사울왕은 그런 다윗에게 갑옷을 하사했다. 실용적인 쓰임을 떠나서 일개 민간인 소년이 왕의 하사품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을 것인데...


아래 그림은 다윗이 왕의 갑옷을 입었을 상상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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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준 것을 거부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음에도, 골리앗에 맞설 용기를 가진 다윗에게는 갑옷을 거부하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그는 갑옷을 거절하고 자신의 모습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물론 그건 무기와 갑옷이 아닌 하나님이 함께 하실거라 강력한 믿음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긴 했다.

그 모습이란 남들이 보기에 분명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보호해 줄 갑옷도, 무기도 없이 그저 돌팔매로 골리앗에 맞선다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코미디 그 잡채였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현실의 그림을 보게 된다.

골리앗이라는 눈에 보이는 두려움... 그러나 의외로 보이는 강점 뒤에 가려진 큰 약점을 보지 못해서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가 갖는 두려움은 알고 보면 실체가 모호할 때가 많다.

두려움은 일종의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 상상이 실제로 현실이 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언더독과 탑독의 싸움이며, 이미 승패가 결정된 싸움이었겠지만...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에 따르면, 다윗의 돌팔매는 투석병으로 포병인 셈이고, 골리앗은 보병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골리앗이 위력을 발휘할 때는 같은 조건으로 맞서 싸울 때의 이야기일 뿐, 투석병과 보병의 싸움은 마치 현대로 얘기하면 권총을 든 다윗과 청동기 칼을 든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성만 전제가 된다면 이미 다윗의 싱거운 승리로 이야기는 결론에 이를 거라는 분석이다.


물론 다윗이 평소에 양을 지키기 위해 맹수들과 돌팔매로 싸웠던 일상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어설픈 돌팔매의 시늉 이후 골리앗의 힘과 칼에 눌려 끝장이 났을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었고, 다른 이들이 인정해 주는 것과 관계없이 자신만의 모습 그대로 나아갔다. 사울왕도 다윗의 강점을 알아보지 못하고 보병끼리 붙는 백병전을 전제로 몸에도 맞지 않는 갑옷을 갖춰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다윗이 갑옷을 입고 나아갔다면 자신의 강점을 포기한 보병끼리 무의미한 백병전을 치렀을 것이다.



난 여기서 다윗과 골리앗의 교육적 함의를 생각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의 중요성이 그것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니까 사교육이 횡행하고, 비교의식으로 조급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각자의 속도와 모습도 인정해 주지 못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인 것 같은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리앗이라는 알고 보면 약점투성이의 실체가 압도적인 두려움의 대상으로 우리의 생각에 침투하여 용기와 의지를 꺾어 버리고 있다.


난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앞에서 강연을 할 때나 학생들 앞에 설 때에도 완벽한 모습을 갖춘 전문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래서 늘 두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럴 때 난 전문가를 흉내 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의 강점이라고 확신한다. 전문가를 흉내 내는 것은 마치 사울왕의 갑옷을 입고 두려움의 대상과 백병전을 치르려는 바보 같은 선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그저 나의 모습, 내 모습 그대로 나아간다. 그리고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강연에 참여하신 선생님들도 자신만의 모습과 속도로 나아가기를 격려하고 싶다.


두려움과 증명에 대한 압박감 말고, 그저 이 순간 진심이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게 진정성인 것이고 그런 나만의 스토리에서 울림과 감동이 펼쳐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뻔한 스토리가 아닐 수 있어 의의로 나의 이야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건 오히려 어설픈 전문가 코스프레가 아니라 나의 약점과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면서도 나만의 모습에 움츠려들지 않고 당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난 삶으로 가르치고 가르치는 대로 살려고 애쓴다.

We teach what we are.

좋은 모습은 감동으로, 약하고 부족한 모습은 듣는 이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게되니, 나의 솔직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울왕의 갑옷을 입히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자기에게 맞는 옷이 가장 좋은 방향이자 방법이다. 그건 각자의 속도와 능력과 타이밍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빨리빨리를 외치며 똑같은 기준으로 줄을 세웠던 것이 미덕일 때도 있었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상처받고 낙오자가 된 듯한 아이들에게 자신의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은 이런 진정성이 담긴 메시지로만 가능하다.

자신의 모습으로 적어도 주어진 분량만큼은 꼭 행복하기...

그리고 그 행복 가운데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성장을 이루어가기...

그런 교육현장, 그런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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