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영원할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매일 같은 곳에서 자고 같은 곳에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며 함께 식사하고 너무도 평범하여 특별할 것조차 없는 일상을 나누는 일이 이제 제게는 현실일 수 없음을 압니다.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큰딸은 방학이 되어 한 번씩 집에 와서 지내기도 하지만 그저 손님처럼 다니러 온 것일 뿐, 함께 사는 개념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무도 많은 시간과 감정의 무게를 통과해야했습니다.
그저 딸이 집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그곳에서 한 번씩 외로움과 향수에 빠져들기도 하겠지만 꿋꿋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음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들과의 만남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첫 만남부터 새롭고 특별한 순간을 신기하게 지나고 있지만, 머지않아 우리에게는 그저 지루하기까지 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또 알게 될 겁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기억 속의 과거도 아니고, 환상 속의 미래도 아니며,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일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매일 함께라서 소중함을 생각하지 못하는 가족들이라는 일상과, 학교라는 일상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꿈꾸며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너무도 자주 또 함부로 소원합니다. 저는 혹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분의 그 소원이 부디 이뤄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저 매일 매일의 일상이 또 다른 설렘과 특별한 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선택과 관계없이 여러분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선택하지 않았으며 학반도 반 친구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여기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 중요합니다.
저는 저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기도의 응답이며 앞으로도 그 기도의 응답이 매 순간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첫인상부터 여러분들은 제게 강렬했습니다. 이제까지 익히 들어왔던 막나가는 중학생들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매일 보면서 막나가는 악역은 오히려 담임교사인 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안 하던 짓을 시키고, 뭐 그렇게까지 뭔가를 시키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악역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속의 생각이 있음에도 잘 참아주며 신뢰를 보여주며 따르려는 여러분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반항하고 불평불만을 얘기해야 제가 밀당하듯 더 힘을 내서 여러분들을 누르려는 의지를 가질텐데 너무 잘 따라주는 것이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하네요. 혹 그런 불편함이 마음 속에 있더라도 제가 제시하는 방향에 신뢰가 간다면 끝까지 너무 지치지 말고 그렇게 전진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여러분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제가 늘 외치는 꿈을 이룬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걸 꼭 전제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다보니 남들보다 앞설 수도 있고 더 큰 경쟁력을 갖출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자체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목적은 아닙니다.
"과정을 즐기고 누리며, 결국 마지막 걸음이 내디딘 그곳이 도달점일 것"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할 만큼만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행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 이 시기에 삶의 의미를 찾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준비도 해야 합니다. 남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더 갖춰야 하고, 성적을 떠나서 뭔가를 적극적으로 배워가며 성장하는 기회를 얻어야 하고, 우리가 가진 것으로 그 축복으로 남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더불어 지내면서 서로의 거리와 선택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소중한 관계를 더 아름답게 가꿔가고 손해를 보면서도 헌신의 의미를 배울 수 있어야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나 상황을 마주할 때도 의연하게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며 존중하며 지내는 법을 배울 것이며... 그래서 결국 앞으로 여러분들이 마주하게 될 삶은 지금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하는 공부가 어떤 의미이고 앞으로 여러분들의 길이 어떠할지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의 만남과 상담을 통해 여러분들의 현재에 이르게 된 과거의 모습을 품어주고, 매 순간 성장하는 현재의 모습을 지켜주고, 이후 기대되는 여러분들의 미래의 모습까지 함께 기대하며 바라볼 것입니다. 아직은 숲을 보지 못해 지금 이 순간의 한 걸음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방황하는 여러분들에게 그 사소한 한 걸음의 의미도 귀뜸해 줄 겁니다.
저는 학생들이 먼저 내민 손은 절대 놓지 않습니다. 손이 놓아져있다면 그건 여러분들이 아직 손을 내밀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전 여러분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애쓰지 않아도 실수하고 넘어져도 여러분들만의 특별함과 사랑스러움은 변하지 않습니다. 단, 저는 여러분들이 그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성장하기를 응원하고 바라며 늘 여러분들이 필요한 그 곳에 있겠습니다.
지난 번 얘기했죠? 제 역할은 여러분들이 정하는 것이라고... 미안한 마음도 부담스럽다는 마음도 다 내려놓고 다가와주길 기대합니다.
저는 담임선생님이지만, 영어선생님이기도 하고, 여러분들의 필요에 따라서 인생의 멘토이자 선배이기도 합니다.
혹 저의 열심으로 여러분들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있다면 제게 솔직하게 얘기해주면 좋겠습니다. 같이 의논하면서 서로의 꿈과 행복을 지켜주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들을 만나고 저에게도 꿈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들의 현재와 미래의 꿈을 지켜주고 행복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영화대사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의미를 잘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Help me help you. - 영화 Jerry Maguire(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