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같은 중학교 생존체험 2일차

by 청블리쌤


중학교가 너무 이질적인 것인지, 새로운 학교에 대한 적응의 문제인지 아직은 확실히 모르겠다. 교사가 되어 처음으로 미리 준비 없이 누군가를 만났다. 반 학생들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미리 출력해서 첫 시간에 빈틈없이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까지 준비하여 전달하던 이전과 비교하면 사뭇 이질적인 나의 모습이다. 난 준비라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중학교에서 단 하루도 상황을 확실하게 예측하면서 보낼 수 없는 내가 어찌 확신에 찬 선언 같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반 학생들과의 첫 만남에 멘트도 준비하지 않고 아이들 앞에 섰다. 작년까지 만났던 학생들보다 단 1년 차이가 났지만, 느낌은 완전 달랐다.


반 아이들과 수업하는 아이들 앞에서 솔직해졌다. 중학교 초보 교사이니 너희들이 중학교 교사로 적응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그 대신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거의 모두가 거쳐야 할 고등학교의 세계와 준비할 방향과 그 이후의 삶의 여정에 대해서 나의 모든 경력과 경험을 다 끌어모아 각자가 원하는 것만큼 도움을 주겠다고... 난 얼마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날 부디 이용하라고... 나의 역할은 너희들이 정하는 것이니...


예전 고등학교를 떠날 때 한 학생이 그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를 만나서 너무 좋았지만, 좀 더 일찍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내 모습 그대로 자신에게 좋은 선생님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기 전 좀 더 일찍 만나는 중학생이라면 훨씬 더 더 더 좋은 선생님이셨을 것 같다고...


가슴 벅찬 위로였다. 스스로 고등학교에만 적합한 교사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가능성을 그 학생을 통해서 찾아냈다.


문득 고등학교 있다가 중학교에 가게 된 것이 마치 타임슬립 같은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났던 고등학생들의 후회를 모두 모아서 그 후회가 시작된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 (물론 동일한 학생들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그런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이라고나 할까?


난 너무도 오래 고등학교 그곳에 머물면서 그전에 어떠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상상만 했을 뿐이었는데.

물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라도 학생들과 더불어 충분히 꿈을 위한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좀 더 일찍, 바른 방향으로 시작했더라면 좀 더 달라졌을 것임을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딸의 경우도 방황의 시기를 통과하여 중3 때부터 행복한 고등학교 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를 했었다. 과연 그때가 결정적 시기이긴 한 것이었다.


난 실제로 타임슬립처럼 그 상상 속의 시간대에 와 있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그렇게 고집했던 것은 간절함은 적지만 희망의 크기를 지켜갈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었고, 영어 기본기에 있어 그때가 결정적인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보다 영어 수준은 훨씬 떨어지지만, 그래서 수준에 맞추는 고되고 힘든 작업과 더한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더 큰 희망의 시기인 것이다. 그러니 설렘도 더 커야 하는 거다.


고등학교 담임과는 벌써 다른 세상임을 몸으로 체험한다. 아이들이 훨씬 더 귀엽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해맑음도 있다. 매일 점심시간에는 반 학생들을 식당까지 줄 세워서 인솔하고, 비닐장갑을 끼고 수저까지 나눠준다. 교과지도나 학습코칭 이전 더 보살피고 세세하게 신경 써 줄 일들이 상상 외로 많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내가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존경하는 선배 교사가 중학생들은 교사가 애쓰고 노력한 것만큼 성장을 확인할 가능성이 고등학교보다 더 크기 때문에 보람도 훨씬 클 것이라고 격려해 주셨다.

나보다 역량이 뛰어난 후배 교사는 영어교과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학력 격차가 너무 큰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중학교에서 체험하며 그 갭을 메울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감사하게도 중학교 가서는 나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발상을 전환시킨 격려와 위로의 조언들이었다. 그러고보니 교사로서 힘들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만큼 더 많다는 의미일 수 있는 것이었다.


중학교 수업을 해보았다. 실력이 좋은 어떤 학생은 벌써 내 수업이 쉽다고 말했다. "성공인 것인가? "하기에는 갈 길이 멀지만 난 그렇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는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반 학생들과 상담도 시작했다. 중학생이니 상담의 방향이 오히려 더 다양했다. 대학입시라는 동일한 목적이 아니라 인생을 보다 넓게 바라보며 막연하게라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고, 특목고 갈 학생이나 일반계 진학이 어려운 성적의 학생들이 아니라면 내신 성적에 너무 민감하지는 않아 아이들의 삶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일 수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오늘은 퇴근 후 전화상담도 했다. 학생이 볼 수 없던 저 먼 세계를 빅 픽처로 그려줄 수도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의 차이를 비교하며 지금 의미 있는 과정이 어떤지를 확신을 가지고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난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 시간대에 머물고 있다가 타임슬립한 미래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학반에서는 아침독서를 오늘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해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집중해서 들었다. 역시 미래에서 온 메시지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플래너검사를 통한 학습코칭, 아침 단어시험, 매일 좋은 글 한편 읽고 온라인 댓글 달기 활동도 예고했다. 사소한 거라도 꾸준히 하면 그 습관이 이후의 각자의 삶의 효율성과 행복감을 폭발적으로 늘려줄 거라고 강조했다.


벌써 학부모님으로부터 아침독서와 플래너 점검을 의무화해줘서 너무 기쁘시다고, 고등학교 경력이 많은 분이라서 든든하다는 응원의 문자를 받았다.


중학교 와서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이들이 여전히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해줄 역할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난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멘토링 영어학습코칭은 어떤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를, 또 어떤 식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이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 내게는 축복이듯, 아이들도 나를 만난 것이 행운이기를 바란다.


이 타임슬립을 마치고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갈지, 그냥 이곳에 남게 될지 아직 정해진 것도 따로 세운 계획도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어색함과 낯선 분위기에서 난 차츰 느끼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가 응답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할 수 있는 분량과 역할의 중요성 등은 내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적은 아니다.


난 그저 지금 이 순간,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사소한 일부터 진심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난 그분의 능력으로 어디까지 가게 될지 설렘과 같은 기대감이 차오른다.


내일 또 나는 이후 아이들의 삶에서 드러나게 될지 모르는 후회를 하나씩, 하나씩 삭제해 나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이 나의 역할이었는지 모를 수도 있다. 후회나 아쉬움 없는 삶에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책임을 전가할 누구를 찾는 것처럼 절실하게 누구 덕인지 알려 하지도 않을 것이니...

그러나 상관없다. 그런 생각도 나의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감사의 인사를 듣거나 나의 지분을 주장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나의 교육 활동의 본질적인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난 이후의 예상 못 할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나의 노력이 학생들의 성장이나 변화 등으로 보상받지 못할 가능성도 늘 열어둔다.


아까 전화 상담으로 반 학생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의 행복교육과정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후에 성취를 체험하며 누리게 될 것이니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기위해 너무 서두르지는 말라고...


그 순간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뿐이라고... 지금 행복할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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