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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야구>에 감정이입하다

Feat. 운동선수 꿈꾸던 시절

by 청블리쌤
한계를 설정할 때 너는 진다. - 김성근 감독


<최강야구>는 요즘 내 최애 프로그램이다.

난 야구를 사랑했다. 한때 내 장래희망이 야구선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 보내달라는 현실성 없는 요청을 부모님께 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정식 축구부에 들어가서 동계훈련까지 했지만 바로 해체되어 현실적인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겨를은 없었다.

학교와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하러 다니는 게 내 가장 큰 즐거움이었고, 5학년 때는 그 당시 유행이던 주산학원을 빼먹고 야구하러 다니다가 엄청나게 야단맞던 기억도 난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80년대 어린이야구클럽 가입하면 해당 구단의 유니폼과 아이템들을 주었는데 가입비용이 무척 비쌌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나의 그 소원은 끝내 이뤄주지 않으셨다. 그래도 야구 글러브와 공, 배트 정도는 사주셨다. 난 프로야구 선수 흉내 낸다고 눈 밑에 검은 테이프도 붙이면서 나름 진지하게 야구에 몰입했다. 좁은 골목길에서도 친구들과 야구를 했는데 공이 담을 넘어가면 낭패였다. 문을 걸어 잠근 호랑이 같은 주인 집에 공이 넘어가면 그 순간 그날 야구는 몰수게임이었다.


난 시골의 작은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녔다. 학교 특색사업 중 하나가 매달 체육대회였다. 전교생을 대상으로한 체육특기가 이단줄넘기였다. 100-120번을 넘어야 실기 만점이었다. 체육대회 종목이 반별 대항 달리기, 이인삼각, 계주, 학교 밖 동네를 완주하는 단축마라톤 등의 일반적인 종목도 있었지만, 이단 줄넘기 종목도 있었고 가장 특이한 종목으로 자전거 느리게 가기 경주도 있었다. 시골 학교 특성상 자전거 등하교가 많았고 물론 자전거 달인 학생들도 많았다. 그래도 체육종목의 빨리 달리기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느리게 가는 경주라니... 정말 참신했다. 우승자는 거의 시작과 동시에 몸의 균형을 자전거 핸들만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서다시피 하는 학생이었다.

난 달리기에서 늘 두드러졌다. 단거리는 압도적인 전교 1등이었다. 이어달리기에서 주로 마지막 주자였는데 거의 반바퀴를 따라잡은 적이 있었고, 내가 마지막 주자로 나서게 되면 응원하던 다른 반 애들이 그냥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고 연년생인 여동생이 내게 말해주었다. 난 그저 동급생보다 키가 좀 컸을 뿐이었다.

내가 지금 큰 키는 아니지만(아이들이 내 키를 물으면 난 2미터 좀 안 된다고 대답한다ㅋㅋ) 거의 초등학교 6학년 때 키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지냈는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점점 아이들을 올려보았던 좌절감이 기억난다.


순전히 그 당시에는 다른 애들보다 더 일찍 키와 몸이 컸다는 이점이 있었을 뿐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체육선생님이자 학교육상부 코치선생님께 발탁되어 반강제적으로 육상부에 들 뻔했다. 부모님이 나서시기 전에, 담임선생님께서 체육선생님께 가서 전교 1등을 운동부 시키면 어떻게 하냐고 바로 빼 오셨던 기억도 있다.


중학교 때부터는 축구에 몰입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에는 반대항 축구경기와 고등학교 학습실 멤버들끼리 매주 축구하는 게 나의 낙이었다. 농구도 좋아했고, 배구도 좋아했다.

고등학교 이후 이제 더 이상 내 키와 신체조건이 유리하지 않아질 때쯤부터는, 그리고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농구경기를 할 때는 내가 드리블을 하면 수비수가 잘 뺏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키때문에 드리블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가 되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은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으면서 더 이상 현실적인 장래희망이 되지 않았지만 이후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열정으로 이어졌다.

딸도 음악전공을 현실적으로 고려했는데, 공부도 예능도 다 재능이 필요하지만, 공부보다 예능의 문이 훨씬 좁다는 걸 피부로도 느끼는 순간 음악전공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했다. 나도 집안 형편 과 선수를 하기에는 부족한 재능에 대한 때이른 자각이 날 지켜줬던 것 같다.

교육현장에서 운동부 제자를 만나왔다. 야구, 배드민턴, 사격, 하키, 배구 등의 종목이었다. 프로의 문은 좁아도 너무 좁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육성 시스템은 대개 운동부 학생들에게 수업과 공부를 면제시켜준다. 끝까지 운동하다가 프로나 실업팀 등에 진출하지 못한 학생들은 물론, 중간에 부상을 당해 그만 둔 학생들은 공부로 선택하는 진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일정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운동선수를 할 수 없는 미국 등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공부 면제되는 것이 특권처럼 생각될 정도이니...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전국적인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난 평소 농구경기나 배구경기에도 몰입했지만 나의 주관심사는 야구경기였다. 대학교 때까지, 그리고 교직에 나와서도 학생들과 축구경기를 했어서인지, 축구 중계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야구 관심은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그 역사를 같이한다. 어쩌다 80년대 선수들의 영상을 볼 때면 나의 어린 시절도 같이 생각이 났다. 80년대는 고교야구도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90년대 후반 초임학교가 대구고등학교였다. 이승엽의 경북고만큼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야구부로 유명한 학교다. 내가 근무하던 당시 나름 친하게 지냈던 선수가 이범호다. 함께 캐치볼을 하기도 했다. 이범호는 고1 때부터 활약이 두드러졌었다.


대구에서 개최하는 대봉기 야구대회에 학교 학생들이 응원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야자는 빠지긴 해도 야구장에 응원가는 걸 귀찮아했는데, 막상 경기가 막판에 긴장감이 생기니 자발적으로 모두 일어서서 교가를 부르면서 응원하며 가슴 뜨거워지는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어쨌거나 야구경기를 자주 챙겨 보았다. 처음에는 아버지 고향팀인 롯데 자이언츠를 함께 응원했다. 그리고 대구고 제자들이 삼성 라이온즈로 지명되고(김진웅, 박석민) 응원할 이유가 생기면서 삼성 라이온즈로 갈아탔다.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의 초인적인 활약으로 예상을 뒤엎고 삼성을 이기면서 우승했던 84년의 감격적인 순간도 생생하고, 02년도 우승도 환희의 기억이지만... 그 이후 롯데는 우승권과 멀어졌는데, 꼭 그래서인 건 아니었지만 이후 삼성 라이온즈 왕조가 시작되었으니 갈아탄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학교 때 고시를 준비하던 법대 선배가 야구중계를 보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했던 말이 충격이었다. 보통 3시간 이상 소요되는 중계를 매번 보면서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것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야구중계만 몰입하지는 않고 과제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멀티태스킹이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말한다. 결과만 보고 하이라이트만 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야구에는 매 순간 인생이 담겨 있다. 한 편의 소설이나 서사처럼 우리는 매 순간 투수와 야수와 타자들의 선택에 주목한다. 투수는 어떤 구질의 공을 어느 코스에 던질지를, 타자는 순간 방망이를 휘두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감독은 선수를 선택하고 작전을 선택한다. 그리고 반드시 선택에 따르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각 선택에 대해서 해설자나 관중들은 너무도 쉽게 결과론을 얘기한다. 그랬어야 했다고... 말도 안 되는 투정이다. 결과론은 정신건강에도 해롭다.

야구를 보면서 어쨌든 일은 일어난 것이니 그 이후가 더 중요한 것을 배워갔다. 경기 내에서, 아니면 패배한 경기 후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닮았다. 야구 경기 하나하나가 각자 한편의 인생 드라마와 같다.

이번 공은 어떤 의미가 있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선택은 어떤 영향을 줄지 작은 순간부터 게임 전체로 이어지는 큰 그림까지 그리면서 몰입하다 보면 3시간은 시간순삭이다.


야구는 팀을 위해 희생(sacrifice)하는 거의 유일한 종목이다. 자신을 죽이고 주자를 진루시키는 희생번트가 그 좋은 예다. 자기가 죽어도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희생 플라이에도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야구에 열광하면서도 선수들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보통 야구를 한 번 이상 해보았던 사람들이다. 실제로 타자로서의 경험이 없다면 어이없는 공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타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투수를 해보지 않았다면 얼마나 큰 중압감으로 한구 한구를 던지는지 알지 못하고, 야수를 해보지 않았다면 숙명처럼 따라오는 에러에 본인도 얼마나 괴로운지 이해할 수 없다. 외야수를 해보지 않고서는 타자의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그 소리와 순간의 괘적을 순식간에 판단해서 바로 뛰기 시작해서 공을 잡는 것이 숨 쉬듯 그렇게 당연하고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없다.


물론 선수 입장이 되어야 매 순간의 결정과 그들의 심리까지 진정 감정이입이 되어 함께 뛰는 느낌이 든다. 야구를 재미있게 본다는 건 감독모드가 아니라 선수모드일 때다. 드라마를 통해 인생을 간접체험하듯이 야구를 통해서도 간접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야구 중계를 안 본지 오래 되었다. 바빠서이기도 하고, 다른 더 재미있는 일이 많기도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성적과도 관계가 있다. 순위를 따져가면서 예상하고 응원하는 순간 시즌을 함께 달려야 하기 때문에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고 애쓴 게 몇 년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가슴졸이고, 불확실성 속에서 긴장하는 것을 심장이 감당하지 못 한다. 그리고 시간이 아깝기도 하다. 지금은 즐겨보던 미국 프로농구인 NBA도 특정팀의 하이라이트만 본다. 젊은 시절 영원히 살 것 같고, 시간이 남아돈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요즘 야구선수들도 잘 모른다.


그러던 차에 <최강야구>라는 TV 프로그램을 만났다.

내가 아는 은퇴한 선수들이 나온다. 그들의 리즈시절은 나의 젊은 시절이기도 해서 그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 은퇴한 선수들이 팀을 꾸려서 현역 야구선수들과 벌이는 실제 야구 경기...

팀 구성을 위해 선택된 몇몇 젊은 선수를 제외하고 이름값을 보면 최강야구 팀은 레전드이니 전성기 때 이런 팀이었다면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 2군과의 경기는 시시할 정도로 완전 기울어진 경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은퇴한 선수들이라는데 초점이 있다.

체력도 몸상태도 오히려 전성기 때 비교하면 좌절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치는 안타 하나도 감격이다. 현역 때는 너무 당연했던 그 사소한 것들조차 그들에게는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세월의 흔적과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그 간절함 자체가 승패를 떠나서 감동을 준다.

난 이 프로그램을 눈물로 본다.

그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많이 애쓰지 않아도 쉽게 하던 일들이 이젠 내게 도전이 된다. 노안으로 흐릿한 글자를 넘어서야 하니, 젊은 날의 책의 글자를 편안하게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 축복인 것을 몰랐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학교에서 난 더 이상 젊고 유망한 교사가 아니고, 점점 학생들과의 거리가 생긴다.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최강야구팀의 절실함이 나의 절심함이기도 하다. 젊은 날에 축복처럼 주어졌던 순간들에 대해 감사할 시간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아직 내게 학생들 앞에 서고, 교사들 앞에 서고, 블로그나 브런치를 통해 교감을 이루며 지내는 기회가 있음에 너무 감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선수들끼리 서로 단합하여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응원해 주는 그 분위기도 감동이다. 서로의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어떤 일이고, 부상을 안고 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은 목표를 향해 마음이 모아지고 함께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 자신에게도, 그걸 바라보는 나 같은 팬에게도 늘 감동이다.


그들은 더 이상 현역 시절, 리즈 시절의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리즈 시절을 기억에 담아두고 있기 때문에 은퇴 이후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얼마나 큰 절실함으로 그런 감격스러운 몸짓을 만들어내는지 잘 알 것 같아서 더 몰입이 된다.


그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기도 하니, 그들에게 보내는 응원은 결국 나를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김성근 감독이 이승엽에 이어 2대 감독이 되면서 교사로서의 리더십도 생각하게 되었다. 최강 몬스터즈 야구팀의 멤버들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라면 야구광이 아니라도 반드시 봐야 할 드라마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사심가득한 주장을 하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나이 들어도 계속 도전하고,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지난날을 감사하면서도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간절함을 잃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를 응원하고 나와 팀을 이루는 것 같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응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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