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식을 갖는다는 것

by 청블리쌤

둘째 딸이 학교에 다녀와서 내가 친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미술 하는 친구는 어떠냐고 하니까, 마지막 실기를 앞두고 있다고. 수능 끝나고 편안하게 지내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실기를 하는 친구들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그 엄청난 부담감을 지고 물러설 수 없는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야 한다는 게 안쓰럽기도 했지만, 대단해 보였다.


그러면서 딸에게 엄마도 그 어려운 걸 해낸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했다. 아내는 지금 애들은 예전에 수시도 없이 단 한 번의 기회만 있었던 때(전기대학 불합격 시 후기 대학의 기회가 한 번 더 있긴 했음)와는 달리 수시부터 정시까지 여러 개를 지원할 수 있어서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은 덜하지만, 그만큼 대학마다 다른 입시곡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더 고생일 거라는 말을 했다.


오래 전 아내가 피아노학원 강사로 있을 때 한 번씩 피아노 학원에 놀러 가서 입시하는 고등학생들을 지켜봤었다. 좋아서 피아노 전공을 선택했고, 그 좋아하는 피아노를 원 없이(?) 하면서도 너무 힘겨워하던 그 학생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뭐든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불안함과 부담감의 압박을 넘어서기가 정말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공연예술은 실수하면 안 되는 거니까 평소에 잘 되었더라도 어떤 변수가 있어도 실수하지 않도록 그렇게 치열하게 연습해야 하니 정말 힘든 것 같다고.

그러니까 딸이 체육 실기하는 친구 얘기를 했다. 평소에 아무리 완벽하게 잘 되었어도 실전에서 실수하면 안 되니까 부담이 큰 것 같다고.

그렇게 알면서도 가는 길이니까. 단 하나의 실수라도 하지 않기 위해서, 완벽을 추구하며 평소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멈추지 않으면서 몰입하게 되는 거겠지. 사람들은 실수 없이 공연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다가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과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거니까. 실수 하나로 그동안의 혼신의 노력의 과정이 저평가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거니까.

그런 대화 끝에 난 또 꼰대같이 교훈적인 마무리를 했다ㅠㅠ


공부도 그렇다고. 평소 성적이 잘 나왔더라도, 변수를 넘어서 수능 성적이 잘 나오려면 축적된 노력과 몰입이 더 필요하다고. 공연이나 실기는 하나의 실행마다 실력 발휘 여부가 바로 드러나지만 시험은 그만큼 즉각적이지는 않아 티가 안 나는 것 같지만, 결국 예체능 실기나 수능시험도 원리는 다르지 않다고.

나는 열심히 하라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거지만 딸은 부담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삶의 어떤 분야도 축적된 시간과 노력을 피해 갈 수 없다. 어쩌다 운 좋게 의외의 성취를 하는 수도 있지만, 문턱을 넘어섰다고 모든 것이 한 번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과정도 그 수준에 부합하는 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니까.


대화의 끝에 아내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오히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실수를 했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고 실수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완주하려는 멘탈 관리도 필요하다고.


큰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실수를 안 하면 좋지만,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님에도 실수는 할 수 있다. 물론 노력의 부족으로 하는 실수도 품어야 한다. 실기와 시험의 순간은 반성문을 쓰면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준비한 것만큼 그냥 다 쏟아내는 것이어야 하니까. 그래야 혹 이후에 주어질 기회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니까...


남동생이 좋은 영상 하나를 공유해 주었다.

https://youtu.be/4ddg06iI5kA

내 최애 프로그램으로 소개했던 <최강야구> 영상클립이었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을 하고 달라진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말하지 않아도 주는 영향력, 간결한 말 한마디에 묵직하게 담겨진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울리는 메시지...

한계를 정하지 않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까지 갈 수 있다는 신뢰와 믿음도 심어주는 것 같았다. 자기 절제와 주어진 책임에 대한 예의... 실력만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행복까지 이끌어 내는...


고령의 나이에도 야구장에만 있으면 무조건 행복하고 즐겁다는 그분의 인터뷰가 그 끝을 향해 가는 내게도 큰 울림이었는데... 은퇴한 선수들의 절심함만으로 충분히 감동이었는데,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격려와 응원을 받는 것 같아 가슴이 뜨거워졌다.


존경은 하지만 김성근 감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고, 최강야구의 모든 선수들을 현역 시절에 다 응원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다 감정이입되고 그냥 조건 없이 다 응원하고 싶다.


출연료를 받았으니 프로라는 김성근감독의 한 마디가... 안일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돈을 받고 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프로로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단기 알바를 하는 대학생들도 프로인 거니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하고 싶을 때 하는 것, 하기 싫어도 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난 입시의 과정에서 힘겨워하고 상처받는 학생들과 딸들에게 편지를 써서 프로보다 아마추어처럼 공부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곤 했었다(아래 링크 참고).


행복할 만큼만, 결과만으로 의미 부여하지 않고 매 순간 오히려 행복하기를 기대하면서... 그렇게 즐겁게 하다 보면 억지로 하는 프로보다 과정부터 결과까지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주는 위로였다.


그러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을 때만 취미처럼 해도 된다는 메시지는 아니었는데, 혹 아이들이 나의 메시지를 오해할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프로는 선택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늘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도 가지고 있다. 몸이 좀 불편하다고 마음대로 빠지거나 쉴 수 없다.


그러나 그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서 있을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 결과나 성과에서 분리된 과정으로만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성과는, 그리고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누리는 것이고 어쩌다 보니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하고 한 번씩 상기해야 하는 거다. 나태해지고 안일해질 때, 우리가 프로 자리에 있다는 그 무게를...


지난번 포스팅했던 재수에 대한 글에서처럼... N수생들이 굳이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는데도 재수학원을 가고 독학재수학원을 가는 이유는 마음에서 시작된 아마추어 의식이 신분조차 아마추어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며, 그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프로의식은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계속 주지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꾸준하고 성실하게 지키는 그 자리에서 오히려 아마추어처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54553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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