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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r 07. 2023

이기적인 (나이 든) 교사가 되기로 한 결심

나이가 들어가는 걸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요즘 부쩍 나이 많은 교사로서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아끼는 후배교사도 나이 많은 교사로 주변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애매한 자신의 위치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처럼 수업하는 걸 좋아하고, 학생들과 지내는 걸 워낙 좋아해서 주변 사람들이 승진을 바라볼 때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진심을 다해왔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승진하지 않으면서 나이 든 교사가 된다는 걸 몇 가지만 정리해 보면...

    학생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럼에도 학생들이 가까워질지 보장할 수 없다.   

    어느 때부턴가 부장교사보다 내 나이가 많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학부모회의, 학부모 상담할 때 보니 어느덧 학부모님들보다 나이가 많아져 있다.  

    후배나 동기가 승진했다는 소식을 듣거나 교장, 교감으로 근무하는 학교에서 평교사로 지내게 된다.  

    제자 같은 젊은 청년들이 임용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데 자리를 억지로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해질 때도 있다.  

    담임이나 교과지도할 때는 물론, 교생지도할 때에도 젊고 멋있는 선생님일 수 없어 미안하다.  


경력이 쌓이면서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하게 되는 사기업 상황과 비교해서 보면, 승진할 능력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굳이 선택하지 않은 그 후배는 승진이나 부장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담임교사로 머물러 있는 것이, 교직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애초에 추구하는 가치관과 지향점이 달랐다. 돈, 명예, 권위 등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교직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주변에서 애정 어린 승진 등의 권유에도 귀를 닫고 있었다. 교과서 작업을 권했던 대학교수님의 제안도 거절했다. 나 자신에 대한 주제 파악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저 학생들에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지향점이 달라도 모두가 같은 평교사의 길을 함께 가니까 흔들릴 이유가 없었는데, 승진을 성취하는 후배나 또래 교사의 모습이 현실이 되니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적어도 학교 내에서 나이가 많다면 통념상 부장교사를 맡아주어야 하는데, 그저 일반 담임교사로 남는다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느낌도 들고, 함께 하는 후배교사들에게도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직전 학교에서 능력도 안 되는 내가 학년 부장을 2년간 한 것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하필  부장 중에 학년 부장을 원했던 건, 담임을 포기할 수 없어서였다.

올해 나도 신세를 지듯 부장을 하지 않고 담임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새로 오시는 선생님께서 3학년 부장을 하시게 되었고, 첫만남에서 유능한 선생님이고 이 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했다고 들었는데, 왜 새로 온 자신이 학년부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게 말씀하시길래, 같이 지내보시면 납득이 되실 거라고 대답했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그분은 카리스마, 리더십, 세심하게 챙기려는 따뜻함, 열의와 인화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학년부장의 모습이었다. 일을 추진할 때도 기존에 있던 선생님들께 의견을 물어보며 진행하는 겸손하면서도 강한 추진력을 보이셨다. 휴일에는 일부러 학교에 나와 학년실을 깨끗하게 정비하는 섬김의 모습도 보이셨다. 

그럴 마음은 물론 전혀 없었지만 혹시 내가 학년부장을 욕심내었더라도 감히 들이댈 수조차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난 미안함에서 좀 벗어 날 수 있었다. 

학년부장이 아닌 편안함에서 난 특기를 살리기 시작했다. 담임 자료를 공유하고, 구글설문지로 학년전체 비상연락망을 받아 정비하고, 학년전체 명렬을 작성하고, 성적참고자료도 만들고, 자리추첨프로그램도 필요한 분들께 공유했다. 그리고 2년 동안 3학년 담임하면서 알게 된 사전정보를 기꺼이 공유해 드리려 한다. 이후로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며 3학년 전체 학생들의 진로지도와 행복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전 학교에서도 학년부장이 학년의 요구를 강력하게 전달하여 관철시키고, 학년 담임선생님들과의 소통을 이끌었다면, 나는 학년기획으로 그 과정에 필요한 모든 실무적인 일들을 감당하는 것이 내게 딱 맞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여 부장님께 말씀드려 추진하도록 힘을 얻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었다. 

올해 학년에서 기획도 아니고, 역할이 지정된 것도 아니지만,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자료를 공유하고, 안내를 드리고 돕는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결국 학생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게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와 의미가 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주 3학년 담임 첫 협의회가 있었다. 놀랍게도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하자는 학년부장님의 제안이 있었다. 나이와 가족 사항을 오픈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부장님을 포함해서 거의 절반의 분들이 나보다 누님들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새로운 트렌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고, 에듀테크 등에 두려움이 들 수 있다. 교직도 계속 변화하고 있고 선생님들에게 요구하는 최신식 교육방식이 자꾸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 누가 더 바보 같은지를 내기하듯 서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부끄럽지 않게 드러내면서 서로 위로를 받는 누님 선생님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역시나 부족함이 많은 나 자신도 함께 힐링이 되는 듯했다.

나이로 대우받기를 기대하거나, 자존심을 세우며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지 않는 분들이셨고... 나도 나이로 봤을 때 꼰대 위험지수를 훌쩍 넘어섰음에도 후배교사인 나의 제안이나 안내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인정하고 수용하시려는 겸손한 태도에 감동까지 되었다. 

은혜로운 학년 협의회를 하며 나이 들어가는 평교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맞춰주려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

생각해 보니 교직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건,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신의 자존심으로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 분들이었다. 소위 '꼰대'였던 건데...

난 그 협외회 중에도, 이틀간의 생활 속에서도 그 비슷한 단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 소개를 할 때 난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러자 선생님들은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는 듯 웃음을 터뜨리셨다. 생각보다 내 존재감이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 감사하기도 했다. 웃음과 더불어 어떤 분은 내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시려는 듯, 목소리 좋다는 거침없는 반응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난 학년실의 유일한 남자 담임교사인 것에 대해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 편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필요 없는 말을 막 쏟아냈다. 지금은 이불킥 각이지만ㅠㅠ

대학 때 우리 학과에 압도적으로 여학생들이 많았던 데다가 여학생들과만 어울려 다녔고, 졸업사진 찍을 때 사진 찍던 분이 진지하게 나를 따로 불러서 인기의 비결이 뭐냐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고(실은 인기가 아니라 동기들이 날 남자로 보지 않았던 것이었는데ㅋㅋ)

여학생 담임을 20년째 하고 있는데 예전 학교에서 졸업생들이 하도 나를 많이 찾아와서 '의자왕'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다고...

딸만 둘을 키우고 있고... 

그래서 이런 환경 자체가 낯설지 않은 데다... 오히려 꿈에 그리던 교사 성비라는 등... 

뭐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수다처럼 떠들었다ㅠㅠ

나이가 들어가니 학교에서 나이로 서열이 몇 번째인지를 따지게 되는데...

학년실에서 11명 담임쌤 중에서 서열 6위였다ㅋㅋ 상위권도 아닌 중위권이라니... 말도 안 되는 서열이다. 다른 학교였다면 학교에 따라서는 전교권으로 서열을 다투었을지도 모르는데... 학교 내에서는 나이로 명함도 못 내밀 정도라니...

그래서 난 나보다 어리지만 학년실 서열 2위라는 그 후배에게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올해는 그렇게 딱 평타여도 이후 상황은 달라질 것이며 내 나이는 걷잡을 수 없이 더 들어갈 거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상황에 기대어 판단하고 마음가짐을 정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변하지 않는 본질과 원칙이다. 

난 애초에 눈에 보이는 성취보다 보이지 않은 가치에 더 집중했다. 교사로서의 실적, 대외적인 행사참여로 인지도를 높이는 것, 수업발표대회 참여하는 것, 승진을 위한 준비를 차분히 하는 것 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난 학생에 대한 내 사랑의 깊이로만 승부하려 했다. 그 사랑은 다른 실적들처럼 정량화할 수는 없는 것이니 난 내 사랑이 최고라고 스스로 자부하면서도,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절심함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활동에 열심을 냈다. 나의 성취로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되기로 한 순간부터 학생들의 행복한 현실과 밝은 미래에 헌신하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이기적일 수도 있다. 교육청에서, 학교관리자(교장,교감)으로 더 큰 책임과 업무를 담당하며 애써주시는 분들의 수고를 등에 업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수석교사도 아니고, 인지도가 있지도 않고 정량화된 우수교원이라는 증거가 그 어디에도 없는데, 3년간 50여 회 이상 강연을 다니게 되었던 것도 말도 안 되는 과분한 축복 같은 기회였다. 아직도 영문을 잘 모르겠다.

선배 수석교사를 포함해서 나를 아끼는 선배님들이 작년부터 내게 수석교사를 권하고 있다. 난 여전히 학생들과의 수업과 학습코칭에 더 집중하고 싶고, 담임교사로 정년퇴직하고 싶은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계속 끈질기게 거부하고 있다. 

그저 각자에게 맞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는 합리화를 하면서... 그래서 과 동기 두 명이 장학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함께 경쟁해야 했고 그 자리만이 유일한 나이 든 교사로서의 의미 있는 자리였다면 질투의 마음으로 온전히 다 축하할 수는 없었겠지만... 힘든 일을 감당해 주러 교육청에 입성하고, 결국에 교감, 교장으로서의 힘든 역할도 감당해 줄 것이니 오히려 더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판이다. 

올해 우리 학년부장님께도 내 자리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돕고 섬기며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헌신하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꾸준히 전하고 싶다. 다른 선생님들과도 잘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학생들에게나 후배교사들에게는 점점 더 민폐가 되고 미안한 일이 생기겠지만 올해 학년실의 겸손하고 솔직하신 누님 선생님들처럼 다른 이들에게 힐링의 존재가 되며 어떻게든 끝까지 애쓰고 싶다. 

이미 시기를 잘(?) 놓쳐서 승진해야 한다는 주변 권유의 고비는 잘 넘었고, 수석교사를 강력하게 권고하는 선후배 권유의 고비를 마저 잘 넘어야 하겠지만... 나에 대한 애정으로 하는 조언이나 권유라서 거절이 너무 힘들었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난 그냥 이기적인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이기심의 수혜자가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새학년을 맞아 첫수업시간부터 폭풍 잔소리를 쏟아붓고, 내 영어멘토링학습코칭에 한 명이라도 더 참여시키려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지만... 학생들에게 참가비를 받는 거였다면 나의 욕심때문이라는 오해를 할 정도로...

너무 애쓰지 않고 몇 마디 안내만으로도 150명까지 몰려 들었고 오히려 내가 배짱 튕기며 똑바로 안 하면 바로 탈락시킬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여전히 간절함이 넘쳤던 고등학교에 비해, 너무 애쓰고 조르고 설득해도 간절히 애원해서 겨우 진행하는 이 진행 과정이...

내가 나이가 들어서 아이들이 신뢰를 안 해서인지, 아직 절실함이 부족한 중학생들이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말이 너무 많아져서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또 나이도 있는데 너무 힘들지 않겠냐는 누님들의 걱정이 있지만... 내 한계를 인정하고 내 역량껏 최선만 다하려 한다. 17년간 100명 단위가 보통이어서, 세자리수가 모이지 않으면 허전했지만... 인원에 좌우되지 않고 학생 한 명에 미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만 생각하려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이런 기회들이 주어져서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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