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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r 10. 2023

교사임용에 다시 도전하는 제자에게

결과만 생각한다면 이뤄내도 공허할 것이고, 이루지 못하면 모든 노력이 부정될 것이다. 삶의 대부분인 ‘과정’ 자체를 생략하려 했기 때문이다. 

과정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누리고 즐기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불안함은 당연한 현상이면서 긴장감과 노력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성취의 시기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욕으로 좀 더 당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양으로, 가시적인 노력의 발현으로 무조건 이때쯤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물든 결의로 성취의 확실성을 보장받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분리하면 되는 거다. 과정과 결과를...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의식적으로 애쓰는 거다. 

결과는 엄밀하게 보면 인간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과정 중에 후회를 남기지 않으면, 결과와 관계없는 성장과 긍정적인 후속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과만 바라보고 있다면 행복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의 사교육시장 팽창도 결과만 바라보고 결론을 과정으로 끌고 오려는 억지스러운 이상 현상이다.


얼마 전 재수하는 제자가 공부한 것에 대해 얼마만큼의 보상을 스스로에게 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의 답변...


보상을 해줘도 좋고... 아무 보상 없는 보상이 공부 자체를 즐거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듯. 어제 딸이 저녁시간에 친구의 호출로 친구집에 가서 떡볶이 먹고 카공하고 싶다고 해서 너가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그러라고 했어. 오후에 졸렸지만 버티다 보니까 공부가 좀 되었다고 하길래 집중 안되어도 자리를 지키는 노력이 그 자체로 공부가 잘되는 보상이 될 거라고 해주었거든. 

그렇게 친구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독서실에 있다가 돌아온 딸의 모습이 안쓰러웠어.

그런데 이렇게 참고 견디는 과정에서 정말 원하는 대학으로 보상받지 못하면 힘든 과정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인 걸까? 아니어야겠지. 결과에 관계없이 그냥 그 순간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결과를 떠나서 성취의 기억으로 몸에 새겨지기를 바랄 뿐이란다. 

재수의 과정에 긴 공부가 너에게 부담이 되겠지만, 공부 아닌 보상도 분명 필요하지만.. 부디 그 자체의 본질적인 보상으로도 즐거워하는 일이 늘어나길 기대할게.

그리고 주일은 푹 쉬어도 된단다. 단, 평일에 너무 부족했다면 조금만 애쓰는 걸로 하고.. 죄책감 없는 온전한 안식 자체도 보상이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예배드리는 축복도...




얼마 전 임용 준비하는 제자로부터 댓글이 달렸다. 내 응원의 메시지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댓글 중 일부분.

...

시험에 합격하면, 쌤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고, 블로그를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다고 감사하다고 댓글을 쓰고 성덕이 되려 했는데, 올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서 성덕이 될 기회를 놓쳐 아쉬워하던 차에 이렇게 댓글을 쓰게 되네요.

...

선생님의 열정과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존경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는지 그 길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외롭고 힘겨운 길을 또 가야 하는 제자는 그 와중에도 이렇게 큰 힘과 의미가 되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ㅠㅠ

그 제자에게 이렇게 답글을 달아 마음을 전했다.


덕분에 너의 덕심을 알게 되어 너무 기쁘고 반갑다. 이제는 선생님이라기보다 인생 선배, 교직 선배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들어 설레기까지 하네. 내가 임용 준비할 때보다는 상황이 많이 안 좋아져서 교직 선배로서 너무 미안하고, 제대로 마음을 헤아려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도 확신이 들지 않지만...


넌 언젠가 결국 교단에 서게 될 거니까... 그곳에 이르기까지 겪는 모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더 훌륭한 교사가 되는 과정일 거니까...


임용 중에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결과에 대한 불안 외에도 이 공부가 과연 아이들을 가르칠 때 실제 도움이 되는 것인지, 게다가 그걸 반복하다 보면 더 의미를 찾기 힘들어지고, 뭔가에 소모되는 것 같고, 영영 의미 있는 일을 다시는 못할 것 같기도 하다는 무기력함일 거란다.

그러나 기억하렴. 과정 자체에서 스스로 정한 소소한 성취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가짐으로 그저 오늘을 살아가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 뭔가를 이루기 전까지는 인간답게 사는 걸 포기하듯 보류시키지 말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재미있는 것도 보고, 휴식이나 안식을 누리면서 그렇게 쉬어가면서 과정 중에도 행복해하라고. 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니...


합격 후에 내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예고편임에도 감동으로 가슴 벅찼단다. 실제 상황이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지 상상이 안 되면서도, 너의 간절함과 비장함이 느껴져서 눈물이 날 것 같구나ㅠㅠ

그때가 되면 다시 꼭 들려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완성의 단계로 미뤄둘 필요 없이 다시 시작하는 아직 불완전한 느낌인 이 시점에서 내게 그런 다짐을 들려주어서 난 너무 기쁘다. 그곳에 도달하게 되면 누구 못지않게 나도 기뻐 날뛰겠지만, 성취 여부에 관계없이 넌 내게 특별하고 소중한 제자라는 건 꼭 기억하렴.

어차피 합격해서 교단에 서더라도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란다. 난 교직경력이 이렇게 쌓이도록 늘 불완전함에서 몸부림치고 있거든. 그러니 현재를 담보로 미래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 이룰 때까지는 과정 자체는 의미 없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고...


너의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르지만,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도 임용을 준비할 가능성도 생각해 보렴. 무조건 시간을 많이 잡는 게 꼭 효율적이지만은 않을 거란다. 2년간 열심히 노력했으니 다른 관점에서도 정리해 보고, 오히려 하루 종일 주어지는 시간보다 시간의 압박감에서 나오는 긴장감으로 더 힘을 낼지도 모른단다. 나름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블로그 이웃들도, 대구여고 다른 제자도 기간제 하면서 삼수해서 합격한 사례도 있었단다.

그중 대구여고 제자는 너처럼 딸에게 해주는 응원과 위로를 읽고 자신에게 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댓글로 다짐을 내게 전했고, 삼수째 결국 해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오기도 했단다.


나의 응원이 실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멀리 있어서 아쉽네.

그래도 한 번씩 전화로도 연락해도 된단다. 

좋은 소식이 아니라도 슬럼프가 왔거나, 의미를 찾지 못해 힘들거나, 교직 선배의 그저 따뜻한 목소리가 필요하면 언제든 진심으로 반겨주고 너의 아픔을 함께해 줄게.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조건 없이 무조건 응원하는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을 거란다.

꼭 연락하라고 부담 주는 건 아니니 번호는 그저 킵해 두렴. 언제든 호출이 가능한 연락처이니...

적어도 너가 귀찮거나 바빠서 시간을 내어줄 수 없거나...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니, 미안해하지도 말고...


너의 전화 연락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겨울에는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 전에라도 대구에 올 일이 있으면 응원의 식사를 한 번 사줄 수도 있으니 시간 되면 꼭 연락하고.


난 아직도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과정 중에 만난 너와 같은 제자가 있어서...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을 응원해 주고 아이들에게 선한 교육적 영향력을 끼칠 설레는 마음을 공유할 제자이자 후배가 있어서 그 존재 자체로도 너무 힘이 나고 감사하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기억해 주고 이렇게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오래도록 교사의 꿈을 함께 키우고 있었다는 것도 내겐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가슴 벅찬 감사함이란다.

너도 꼭 너 같은 제자를 만나야 한다. 내가 느끼는 이 감동과 감사함을 너도 축복으로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쌩재수하는 내 딸과 함께 너의 기도도 잊지 않을게. 힘내렴. 연락하고 싶을 땐 언제든 연락하고...




제자가 댓글에 또 댓글을 달았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무게가 한 문장, 한 구절, 한 단어에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모든 문장에 내 머리와 마음이 그 무게만한 깊이로 반응하며 감동했다. 특히 아래 구절에 울컥했고, 더 큰 희망의 크기를 느낄 수 있어 다소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 공부해 보라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작년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었는데, 공부하는 과정 중에 쉬어가면서 행복해야 한다는 쌤의 말씀이 너무 위로가 되었어요,,,

부디 나의 치열한 응원의 마음이 제자에게 가닿기를... 제자의 말처럼 날 만나달라고 조르며 귀찮게 할 일이 많아지기를ㅋㅋ... 모든 과정도 다 행복했는데 '어쩌다 보니' 꿈에도 도달하게 된 기쁨을 누리며 행복을 이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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