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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r 12. 2023

합창의 전율과 행복감

각자의 장점과 개성이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performance가 있다. 합창이다. 

합창의 화음은 듣는 이들의 즐거움 이전에 모두의 소리를 하나로 얹어내는 합창단 자신의 전율과 황홀함이 출발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지역 학교 대항 합창 및 독창 경연대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난 독창분야 학교 대표 후보 중 하나였고, 열심히 연습했지만 최종불합격했다. 

난 합창에라도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독창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좌절감에다가 음악선생님께 참여하겠다고 말씀드릴 용기도 내지 못할 정도로 소심한 학생이었다. 그걸 보다못한 여동생이 나서서 겨우 합창에 참여하게 되었다. 난 연습하는 과정부터 너무 행복하고 황홀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소리가 다듬어져가고 화음이 완성될수록 황홀함도 완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냥 영원히 그 순간이 지속되기를 바랄 정도였다. 그 순간 난 오히려 독창대회에 나가지 못 한 것이 너무 감사했다. 독창으로는 절대 느끼지 못할 전율과 황홀한 행복감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학과 영문학의 밤 행사에서 합창할 기회가 있었다. 1, 2학년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합창에 참여하였다. 난 어쩌다보니 지휘를 하게 되었다. 지휘의 경험이 있어서도 아니고, 음감이 뛰어나서도 아니었다. 

선배와 동기들이 내가 합창지휘를 시켰던 유일한 이유는...

합창지휘를 하면 관객들에게 얼굴이 안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ㅋㅋ

반박할 수 없이 바로 설득이 되었다.


그러나 지휘자는 정말 극한직업이었다. 연습보다 함께 모이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어떤 때는 지휘자와 반주자, 그리고 지금은 손위 처남이 된 복학생 선배, 이렇게 세 명만 모인 적도 있었다. 연습을 제대로 하기 전부터 좌절감이 가득했었고 그렇게 소수의 성실한 동기와 후배들이 연습 자리를 외롭게 지키다가 벼락치기하듯 행사에 가까워져서야 완전체로 모이며 무대에 설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내 성격 상 그때도 지금보다 훨씬 더 조급함으로 서둘렀을 것이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될 것을, 충분히 여유있게 기다리지 못하고 나 혼자 최악의 상황을 그려보며 마음으로 힘들어했다. 

선곡부터, 연습까지, 그걸 통솔하는 역할의 책임감까지 내 역량을 훌쩍 넘었던 터라 감당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날 지탱해준 힘은 화음이 완성되어가는 전율과 행복감이었다.

그리고 실전 무대에서의 황홀감은 영상도 녹음파일도 남아 있지 않지만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화석화되었다. 선배와 동기들에게 설득 당한대로 난 인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뒷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해서 다행이었지만ㅋㅋ, 합창하는 동기와 후배들과 눈을 마주치며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서로를 배려하면서 뿜어내는 화합의 소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가슴 속에 다 담아두듯, 행복과 황홀함을 나 혼자 다 누린 듯 했다.


망신만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만 같은 과정에서 하나씩 쌓아올려내듯 서로를 향한 배려의 소리가 쌓여져서 완성을 이루어낸 뿌듯함과 동기와 후배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모두를 향한 손편지를 써서 전달하기도 했다. 

합창이 전율인 이유는 각자의 잘남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소리로 같이 가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면 개별적인 잘남도 부족함도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하나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소속감과 합일의 느낌이 선율을 통해 서로의 가슴을 울린다. 합창의 실제 수혜자는 관객보다 합창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합창의 하모니 같은 전율과 황홀함의 일상을 꿈꿔본다.

아래 영상은 그때 불렀던 합창곡.. The Holy City...

피아노 전주의 설렘 후에 잔잔하게 이어가다가 점점 절정에 이르는 드라마틱한 구성의 합창곡(찬양곡)이다. 

https://youtu.be/5PAc3krFyQA



아래 영상은 대구여고 있을 때 매년 실시되었던 합창경연대회... 우리반 합창 영상.학생들 사진이나 영상은 사전 동의없이는 흐리게 처리해야 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본 자체가 흐리다. 2014년 제자들을 보고 눈앞이 흐려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ㅠㅠ. 얘들아 잘 살고 있지?

https://youtu.be/vwRRwcwE_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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