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정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열정으로 일하는 사람은 몇 배의 에너지를 뿜뿜하며 폭주하듯 달리기 때문에 달리는 본인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도 기대감으로 들뜨게 한다.
그러나 난 열정이 클수록 매우 염려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맹렬하게 타오르다가 이내 지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열정은 꿈을 이루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미덕이다. 열정은 눈에 보이고, 뿌듯하게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열정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열정을 얻기 위해 학생들은 특별한 계기를 바란다. 요즘에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그런 자극을 받을 기회가 있다. 인강 1타 강사들도 그런 학생들의 열망의 트렌드에 대한 시장조사라도 한 것처럼 쓴소리를 은혜의 비처럼 쏟아붓는다. 유튜브에도 동기유발하는 영상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그런 자극도 내성이 생긴다. 더 강력한 자극이 있어야 움직이게 되니 늘 강한 한 방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말 강력한 한 방을 찾았더라도, 찾다가 지쳐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빈자리는 학습으로 채워야 하는데 학습을 위한 준비만으로 다 채우다가 시작도 제대로 못하기도 한다.
열정을 얻어서 날아오른다고 한들 지속적으로 열정을 유지할 동기와 의지력이 충전되지 않으면 이내 추락한다. 높이 올라갔을수록 더 오지게 더 아프게 추락한다.
그러면 재정비의 시간이 또 필요하다.
이런 유형은 늘 리셋증후군에 시달린다. 제대로 된 멋들어진 출발을 상상한다. 열정은 아름다워 보이고, 열정으로 세상을 바라본 후에는 평범한 것조차 찌질하게 만드는 저주 같은 현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어지간한 성취가 아니면, 가시적인 성과가 아니면 눈을 돌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난 학교와 집에서 아이들을 향해, 또 아이들과 함께 열정에 대해 선전포고를 해왔다.
열정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뜨거워지려고 달궈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미지근한 습관으로 루틴을 만들라고... 그 루틴은 하나도 설레지 않고, 성취감은 하나도 없을 것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부담 없이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열정에 의한 성취에 익숙해지면, 늘 그 이상을 얻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니, 늘 불만족과 불평 속에 소소하게 행복할 겨를이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열정이라는 연료를 얻으려는 에너지 고갈적인, 온몸을 불사르는 위험한 몸부림 대신, 습관이라는 관성의 힘을 의지하길 끊임없이 권한다. 미지근하지만 사소한 출발에서 비롯된 습관형성은 애쓰지 않아도 항로를 유지할 끝없는 동력이 된다. 물론 날아오르는 전율이나 나대는 심장의 존재감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때로는 초라해 보이고 가시적인 성취가 여전히 멀어 보이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르면 기적 같은 결과를 얻어낸 것은 사소한 일상의 반복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습관의 문턱을 넘어선 이후로는 별로 힘들지도 않게 일상적 루틴의 편안한 반복으로 얻어낸 것을 느끼고는, 더 깜짝 반전 같은 축복감을 누릴 수도 있다.
중3인 반 학생들이 고등학교 공부에 대한 불안감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내게 묻는다. 보통은 내게 묻지 않고 학원에 모든 걸 맡기는데, 물어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특할 정도다.
나의 대답은 아이들을 설레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김빠지게 하는 속성이 있다.
우리반 아이들에게는 이런 뻔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침 단어 시험에 그냥 기본실력으로 응시하지 말고 충분히 매일 꾸준히 준비해 보고, 아침에 오자마자 휴대폰 내기 전에 글읽고 댓글달기 활동할 때 남의 댓글만 읽고 글 읽은 척 댓글달지 말고 공들여서 읽어 보고, 학원 숙제 바쁘게 베끼고 싶은 그 유혹을 이기고 아침시간에 꾸준히 수준에 맞는 독서를 하고, 플래너를 작성하여 제출할 때 평소에 조금씩만 고민하고, 학원숙제도 아닌데 혼자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의 영역을 조금씩이라도 늘려보고, 수업이 이해 안 되면 이해될 만큼만 예습하고, 수업듣고는 까먹지 않게 조금만 복습하고, 그러다 아침 시간 외에도 독서를 조금씩 더 늘리고, 수학은 선행보다 후행하면서 진도의 깊이와 생각을 더하고 여유가 되는대로 조금씩 선행도 해보고, 영어는 영어멘토링코칭에 조금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참여하고...
때론 영혼을 갈아 넣는 참여를 해보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한 번씩 도전하고...
그렇게 당장 눈에 보이는 고등학교 수준의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작 고등학교 가서 잘 할 수 있는 준비를 각자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전부 다 당장 성적향상과는 관계없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항목의 나열이다.
물론 중학교 내신이 필요하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한 암기 등의 타협을 해야 하지만, 투 트랙으로 나의 잔소리를 실현할 마음이 없다면 고등학교 시절의 행복은 보장할 수 없을 거라고 경고도 해준다. 준비한 것만큼의 여유값과 고등학교에서의 즐겁고 행복한 생활은 비례하기 때문이다.
조급하여 성취를 빨리 확인하고 싶을수록 모트모트 플래너를 형광펜으로 가득하게 채우며 공스타에 활약하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평소 안 하던 열정을 발휘하여 그 자체로 뿌듯함을 누리면 당장의 마음의 위안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내 부작용에 시달린다.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만한 내공이나 습관이 형성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걸 강행하면서 정신력만으로 버티면 몸이 아프게 되거나, 정신력으로 버티지 못하면 무리해서라도 애쓴 것이 부질없어질 정도의 작고 빈번한 슬럼프에 시달릴 것이다. 알고 보면 평균회귀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열정으로 채운 하루가 그 고갈된 피로함과 지침으로 인해 비워낸 또 다른 하루에 의해 평균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비워낸 하루만큼의 마음의 짐을 스트레스로 더 받아내야 한다. 그러면 이후에 그 마음의 상처만큼 더 많은 회복시간과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할 수도 있다.
격한 운동을 하거나 몸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질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호흡하는 행위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호흡처럼, 식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자동화된 습관과 그 루틴이 오히려 배움의 즐거움 자체를 회복시킬 수 있다. 에너지를 짜내면서 힘을 내지 않아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피아노를 칠 때도 너무 잘 치려고 하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고수는 힘을 빼고 치는 법을 오랜 시간을 거쳐 몸으로 터득한 사람이다. 운동 종목도 마찬가지며,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힘을 빼야 힘을 제대로 줄 수 있다.
그래도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멋있어 보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 힘든 선택을 하고 의지로 어떻게든 끌어내려는 헌신 같은 노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번씩 마음이 시키는 대로 열정을 발휘할 기회를 의도적으로 많이 가질 필요도 있다.
그러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애썼다고. 이제부터는 좀 더 편안하게 해도 된다고. 일부러 힘든 길을 선택하고 스스로를 더 힘겹게 해야 뭔가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굴레에서 벗어나도 된다고. 매 순간 알아가는 즐거움에, 소소한 성취에 그저 기뻐하고 행복해도 된다고.
열정의 에너지를 끌어모으려 애쓰는 것보다, 습관의 관성을 선택해도 된다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할 만큼만” 공부해도 된다고. 그래도 결국 그 행복의 영역이 점차 넓어질 것이니, 당장의 출발점과 초라함으로 주눅들 필요 없다고...
그러나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 그럼에도 열정을 발휘하겠다면 또 박수를 쳐주고, 지쳐서 또 하루를 비워내면 잘 쉬었다고, 그러니 더 힘내라고 또 박수를 치면서 응원을 해주면서 어떤 순간에도 행복을 놓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그저 그런 현실에 안주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각자 역량의 크기만큼, 그 속도만큼 성장해야 할 거라고... 성장을 선택하지 않은 삶은 당장은 편안해 보여도 이내 닥치는 무력감과 불행함에 결국 더 힘들 것이니까...
지금 이 과정에서 너만의 행복을 찾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