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강을 듣는 것은 배움의 필수 코스다. 특히 학원이 아닌 독서실에서 혼자 재수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인강을 수강하는 것이 학교를 다니듯 자신만의 규칙적이고 루틴을 설정하는데 절대적이다. 독학재수학원에는 아예 인강 수강과 패키지로 묶어서 점검을 해주는 곳도 있을 정도다.
특히 자신에게 맞는 강사를 선택해서 자신의 수준과 필요에 따라서 유연하게 수강할 수 있는 것은 현강보다 비교우위에 있다.
그러나 인강을 본격적으로 수강하게 되었을 때는 모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하는 부담이 추가된다. 수업을 들을수록 도움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자신이 선택한 1타 강사의 수능에 대한 시각과 문제 해결방식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매번 인강을 통해 확인하게 될수록 혼자서 문제 해결하려 하는 자신이 초라해 보여서, 자습으로 가는 길이 더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수능장에는 준비도에 상관없이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입실해서 홀로 시험과 마주해야 한다. 그 자립을 빨리 이룰수록 더 큰 성취를 이룰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지만... 수험생들은 그런 이유들로 인해 수능 직전까지도 용기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1타 강사들 수업에 접근성이 너무 좋아졌다는 것은 그래서 장점이면서도 독이 되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이다.
특히 1타 강사의 수업이 좋다고 느낄수록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진다. 연예인 팬덤처럼 반응하는 경우도 흔할 정도다.
자신의 부족함이 느껴질수록, 다소 거칠게 느껴져도 어떻게든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려는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보다, 바로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맞춤식 인강과 강사를 찾아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결책인 것만 같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의 부족할수록 그런 현상은 더 짙어진다.
그러나 실력향상의 열쇠는 강사가 아니라 학생 본인이 쥐고 있다.
예를 들어 국어의 비문학 독서분야를 잘 하려면 결국 자신의 독해력이 더 중요하다. 인강을 통해 더 효율적인 방법과 평가원이 요구하는 시각을 다양한 관점에서 접할 수는 있지만 읽어내야 하는 건 결국 본인인 것이다.
영어독해도 리딩스킬이나 문제해결방법 전략을 익히는 것도 유의미한 접근이지만, 자신의 어휘력과 구문력을 통한 정확한 해석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헛고생일 뿐이다. 서툴러도 자기 혼자 이뤄야 할 과업이고, 자신의 발로 직접 걸어가야 할 길이다. 1타 강사가 제시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놓쳐도 괜찮다. 혼자서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좀 더 둘러 가더라도 수업을 통해 배워서 알게 된 지식의 축적보다 스스로 체화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이 궁극적으로 더 이롭다는 자기확신이 필요하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나 개념정립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수업을 집중적으로 듣는 것은 무조건 필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도적인 예습, 복습의 과정으로 자기 것을 만드는 노력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독립을 해내야 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데 굳이 인강을 듣는 것이 시간낭비처럼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때로 그 지점은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냉철하게 바라보면 본인 스스로가 그 지점을 자각해낼 수 있다.
국어와 영어의 정확하고 빠른 독해능력이 갖춰지면 전략도 거의 필요 없다. 이미 그 능력을 갖춘 강사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독해능력이 저절로 갖춰지지도 않는다.
넘어지고 실패하는 과정을 거치더라도 직접 내가 스스로 연습을 해야 축구든, 게임이든, 연주든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다른 학생들의 속도는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내 발달 단계와 속도는 정해져 있으니 그것만 따라가면 된다. 그러다 혼자서 하기 힘들다고 느껴지면 그때마다 주도성을 내어주지 않은 상태에서 필요한 부분만 인강을 들어도 된다. 그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학습의 완성이 아니라, 혼자서 제대로 하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이어야 한다. 완강 자체도 충분히 어려운 미션이지만, 완강 자체가 보장해 주는 것이 없다는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프로선수들은 비시즌 때 시즌에 맞춰서 재활하듯이 체력을 끌어올리고 몸을 만든다. 한 시즌에 다 이루었다고 해서 다음 시즌 준비를 면제받을 수 없다. 재수를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국어, 영어 역량을 쌓아놓았어도, 그게 어디 안 가긴 했지만, 다시 하나씩 잠자는 세포를 깨워야 한다.
그리고 모든 세포를 한 번에 다 깨워서 안심하려 할 필요는 없다. 시즌에 맞춰서 서서히 몸을 만들어가면 되는데, 오히려 조급함으로 무리하게 몸을 만들면 시즌 중의 부상이나 부진함의 결과를 낳게 된다. 혹 시즌에 맞추지 못했을 경우라면 일단 거기까지라고 인정하면 된다. 모두가 만점을 향해 노력하지만, 모든 과목에 만점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 편하게 자신의 강점을 더 활용할 길도 열린다.
게으름보다 더 가슴 아픈 오류는 과욕에서 비롯된다. 아예 안 했으면 억울할 일이라도 없지만, 과욕은 더 큰마음의 상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예전에 영어 등급이 잘 나왔더라도 당장 그 능력이 회복되지 않는다. 적어도 6월 모의고사 때까지는 완벽하게 살려내야 한다는 비장함으로 너무 애쓸 필요도 없다. 수능 때 1등급 나오면 될 것 아닌가. 오히려 그전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계속 받으면 방심해서 수능 때 미끄러지는 경우도 많다. 어차피 모의고사 1등급 받았다고 영어공부 면제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니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하면 된다.
오래전 대구여고에서 1학년 때 나와 영어멘토링 했던 학생이 수능 끝나고 문자가 왔다.
고3 중반기를 지나면서 상대평가인 영어가 불안해졌지만,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영어멘토링 하던 시절이 떠올라서 매일 꾸준하게 일정 분량만 공부했는데, 수학 한 문제 빼고 수능 다 맞았다고. 고1 때 매일 꾸준히 하는 습관의 의미를 알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어떤 제자는 고2 때 영어멘토링하면서 영어 등급을 고3이 되어 1등급으로 올려놓았는데, 방심해서 아깝게 2등급을 맞고, 재수를 해서야 다시 1등급을 회복하여 의대를 진학하기도 했다.
똑같은 시기에 모두가 똑같이 모의고사를 시간 재면서 풀 필요는 없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초반에는 정확성에 초점을 맞춰서 해석에 치중할 것을 권한다. 정확성이 커지면 많이 애쓰지 않아도 속도는 올라간다. 그런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면 고3 수준 아닌 지문을 접해도 된다. 혹 이전에 구문독해 등의 체계화된 문장분석을 익히지 않았다면 천일문 등의 구문독해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물론 쉬운 단어부터 단어를 꾸준히 리프레시 하며 익히는 것도 필요하다.
국어든 영어든 모든 지문을 똑같은 비중과 속도로 읽을 수도, 읽어서도 안 되지만, 전체적인 독해력이 시간의 여유를 가져올 것이니 요령이 덜 필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풀이 요령과 전략은 후반기부터 의식하면서 실전처럼 문제를 풀면 된다. 좋은 수업을 들어 아무리 전략을 익혀도 자신의 독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저 한계에만 부딪히면서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를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수업듣는 것을 학습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주도성을 놓지 않으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라도 스스로 해결하도록 꾸준히 애쓰는 것이 핵심이다. 시행착오도 배움의 성과를 이루는 가장 확실한 도달점의 구성요소다.
지난 토요일 대구 모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영어1등급 만들기 수업과정으로 13명의 고3 학생들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학생들이었지만 큰 애착과 고마운 마음까지 느끼며 그들 못지않은 간절함이 가득한 이유는..
신청한 것 자체가 사교육 아닌 공교육교사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긴 시간의 수업임에도 간절함으로 너무도 진지하게 수업에 몰입해 주었기 때문에...
격하게 응원하고 싶도록 만드는,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를 다하려 애쓰는 순수한 열정의 학생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해줄 중요한 역할이 내게도 주어졌기 때문에...
학생들의 출발점은 다들 달랐지만 난 같은 목표를 이야기하며 이렇게 진심을 담아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직 늦지 않은 중요한 기회가 있음을, 그리고 결국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실한 희망도 있음을...
내 수업의 목표는 5주 과정이 끝나고 바로 1등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강이나 학원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즐겁게 학습할 수 있도록 자립하는 것이라고. 혹 이후의 모의고사에서 단 한 번도 그 가능성을 약속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수능 때 도달하게 될 거라고.
적어도 나를 만났기 때문에 방법을 모르거나 방향을 잘못 잡아 노력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일은 없을 거라고.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축적되어 단기간의 효율적인 노력으로 영어성적을 얻어내는 교육특구에 비해 더 많은 절실한 노력은 필요할 거라고. 혼자서 하지 못할 것들을 내가 수업으로 채워주면, 그 외에 단어와 구문적용의 과정은 각자의 몫이고, 수업 이후 꾸준하게 실력을 완성해 가면 될 거라고...
아무리 조급하고 급해도 EBS 수능특강은 내신대비 텍스트로만 활용하고, 당장 수능을 응시할 것은 아니니 이제까지 하던 상상독해에서 벗어나서 답답해 보여도 평소에는 각자의 수준을 출발점으로 한 정확한 해석력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고...
단계별로 꾸준히 실력을 쌓으면 애쓰지 않아도 시간은 단축될 수 있을 것이니 지금 단계에서 시간 재면서 모의고사를 풀며 시간을 맞추려 할 필요가 없다고. 준비 없이 자꾸 빨리 읽으려고 하고, 높은 수준의 문제를 자꾸 도전하려고 하면 상상독해만 자꾸 늘 뿐이라고...
어차피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맞는 속도와 수준으로 해야 배움과 성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난 그들의 운명 공동체에 초대받았고, 이후에도 설렘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 역량껏 다 쏟아낼 것이다.
아래 글은 재수하면서 영어감을 다소 잃어버려 고민하는 제자에게 한 답변
영어를 끝장내려 하지 마라. 결국 수능에서만 1등급 나오면 되니까.. 단어와 구문을 계속 보면서 감은 살아 날 거고 독해의 흐름도 잘 파악하게 될 거다. 신택스를 듣는 건 비추다. 이미 넌 천일문 시리즈를 잘 끝냈고, 혼자서 문장해석에 잘 적용해왔는데... 그걸 다시 이론 같은 원리로 거꾸로 역류해갈 필요는 없단다. 그저 지금 만나는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해라. 문제 풀이보다 정확한 해석에 더 치중하면서... 시간은 점점 빨라질 거니까 모의고사 같은 모드로 영어지문을 대할 필요는 없다.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되니까 기피하고 싶은 거다. 예전 수준이 1등급이었던 상관없이 다시 처음부터 재활과정이라 생각하고 또박또박 정확성에 치중하며 시간을 더 들이고, 그럼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면 좀 더 쉬운 지문을 구해서 읽어 봐도 된다. 속도를 생각한다면 고2 모의고사도 괜찮고. 수능학습지에 모든 걸 쏟아붓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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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인강의 비중이 큰 건 납득할 수 있지만, 너의 말대로 체화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시각은 정말 바람직한 깨달음이다. 넌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깨우쳐 가는 것 같구나. 인강을 들어도 너가 주인공이어야 함도 기억하렴.
인강 강사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면서도 벗어날 수 있기를.. 그런 모순을 해결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