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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pr 04. 2023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작가의 글쓰기 교재인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을 정말 인상 깊게 보았다.

그리고 글쓰기의 실전편과 같은 <글쓰기 상담소>는 쓰기 수업의 완결편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전 글쓰기에 대한 질문이 있다고 나를 찾아온 수석쌤들은 나를 만날 게 아니라 이 책을 보셨어야 했다.


책의 글쓰기 상담주제 중 몇 가지를 선택하고, 그중 인상 깊은 구절을 발췌했고, 나만의 답변도 간단하게 써 보았다. 실망스럽게도 어떤 건 내 답변만 있다.

전문작가의 이야기에 내 의견을 덧붙이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초라한 결단이었지만...

어차피 내가 쓴 글은 옆에 대비시키지 않아도 초라한 것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런 뻔뻔함이 글 쓰기를 계속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1. 혼자 글 쓰는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혼자 글쓰기를 다르게 말하면 세속적인 성공의 뒤안길에서 쓴다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그 시간을 소외의 시간이 아니라 내면을 다지는 풍요의 시기로 생각할 수 있어야 오래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빠른 성공이 아니라 건강한 성장이니까요. 혼자 쓰는 시간 동안 자기 탐색의 자유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의미가 있지만, 누군가 봐 준다면 응원의 힘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완성할 수 없을 자신의 모습을 완결된 것처럼 보이려 애쓸 필요는 없다.



2. 글쓰기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나요?

늘 하던 익숙한 글쓰기를 그만둔다.

쉬면서 쓸데없는 일을 하거나 나를 가만히 둔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글쓰기를 시도해 본다.


슬럼프는 익숙함이다. 늘 시작할 때의 의욕과 설렘으로 연료의 반 이상을 사용한다.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할 때 그 안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가려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 같다. 뭐든 처음처럼...

교사는 늘 아이들을 만나지만 매년 아이들이 다르고, 같은 아이들이라도 성장의 정도와 포인트가 다르므로 익숙함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익숙함은 별생각 없이 지속하는 이유가 되지만, 뭔가 신나게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잠시 떠나 있는 것... 그것뿐인 것 같다.

전문작가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그 호사로움을 유명하지 않은 덕분에, 원고료의 동반자인 마감시한에 쫓기지 않은 덕분에 누리고 있어 감사하다.



3.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하나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씁니다.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 <쓰기의 말들>


글은 재능으로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쓰게 되는 거였다. 사랑을 선택하지 않아도 시작되는 것처럼...



4. 저 같은 사람도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글쓰기도 막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완벽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완벽해지려는 노력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봅니다.


그런 고민을 왜 하나? 난 잘 쓰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니다. 잘해서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니까 쓴다.



5. 글쓰기 수업을 듣는 게 도움이 될까요?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온 세상이 다 교실이고 만인이 다 스승입니다.


난 글쓰기 수업을 들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내 글을 돌아보았지만, 책이 이끄는 대로 끌려갈 생각은 없는 듯하다. 나를 움직이는 건 사소한 것들이다. 그저 사소한 변화를 꿈꾸며 일상에 충실하는 것, 삶에 대한 의식과 관심 자체가 글쓰기 수업이자 무대 아닐까?



6. 제 글보다 잘 쓴 글을 보면 기가 죽는데, 어떡하죠?

잘 쓴 글을 보고 기죽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니 기죽는다는 사실엔 기죽지 말고, 내가 기죽었다는 사실을 글로 써보자. 그게 글 쓰는 사람의 임무다.


전문가인 작가보다 그런 심정은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기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글을 제대로 써 볼 생각이 없었을 거다. 난 글쓰기로 승부하지 않는다. 글쓰기로 표현되는 삶에 의미가 부여되도록 애쓸 뿐이다.



7.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는데, 맞나요?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적어도 1년은 산책하며 사유하고 앉아서 쓰는 습관을 들이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 - 니체


공부의 시작은 엉덩이일 수 있지만, 글쓰기의 시작은 엉덩이를 움직여 앉게 하는 생각이다. 내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이지, 생각 없이 손을 움직일 수는 없다.



8. 솔직하고 정직한 글이 좋은 글인가요?

솔직하고 정직하게 글을 쓰자는 말을 바꾸면

‘정확하게 쓰자.’ 정확하지 않으면 나만의 고유함을 지닌 글이 되기 어렵고, 고유성이 없는 글은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진부한 글이 되잖아요. 생생한 에너지가 없는 글은 독자의 마음까지 가닿지 못합니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솔직함 그 자체가 남는 게 아니라 솔직함을 통과한 메시지가 남습니다.


자기 경험을 쓴다는 것은 아프기만 한 것 같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는 일인데...

도무지 솔직하게 쓰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9. 글쓰기로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로 고통을 씻겨내고 극복하는 게 아니라, 내 고통을 글로 공유함으로써 타인의 고통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성장과 치유가 됩니다.


아픔은 사명이다. 공감이고 함께 살아가며 응원하는 힘이다. 고통 없이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꼭꼭 눌러서 표현한 고통은 다른 이들의 마음에 꼭꼭 눌러 있는 고통을 마주하게 한다.



10. 글감을 어떻게 고르나요?

저는 글감을 주로 일상에서 찾습니다.

‘오늘 아무것도 안 했어’하고 표현할 법한 상황도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꾸 생각나는 것, 가슴에 들어와서 나가지 않고 남아 있는 말이나 상황이 글의 소재가 됩니다.

내가 잘 아는 것,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써보세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글은 생명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마음속에는 누구나 글감을 품고 있으며 고상한 글감, 시시한 글감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내가 내 삶을 풀어가는 데 도움을 준 글이라면 다른 사람의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요.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겪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 일상이 소재이지만, 새로운 느낌을 스스로에게서도 찾을 수 없다면 읽는 이들이 스스로 찾아낼 수 없다. 내가 글감을 고르는 게 아니라 글감이 내게 다가온다. 쓰지 않고는 비워낼 수 없을 거라는 부담을 안기면서....



11. 내가 쓰고 싶은 글 vs 남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 무엇을 써야 하나요?

글쓰기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남이 읽고 싶게 쓰는 것, 이 두 가지를 조합시키는 부단한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유한한 시간 속에 살고 있기에 진짜 쓰고 싶은 글을 먼저 써야 한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나라는 최초의 독자에게는 읽히는 글, 만족스러운 글이 될 테니까요.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 치고 장구 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 - 박막례


청탁 받은 글은 쓰기 힘들었다. 아니 고민이 너무 많아졌다. 청탁 받은 글도 내가 쓰고 싶은 글에 집중하니 결국 완성되었다.



12. 글을 쓰다가 막힐 때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쓰다가 막힌다는 것, 글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생각이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죠.

글이란 ‘내가 무엇을 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버리는 것도 실력입니다.

일단 뭐든 써보세요. 글을 쓰다 막히면 상기하거나 묵혀두거나 포기한다는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세요.


생각이 무르익지 않을수록 힘겹게 썼을 가능성이 높고, 그럴수록 포기하기가 어렵다. 글을 다 완성하고도 글의 일부를 삭제하는 것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난 버리는 걸 잘 하지 못해서 글도 길어지고, 글마다 공감의 편차가 심한 것 같다. 버리지 않으면 버림받게 되는 걸까?



13. 글을 마무리 짓기가 항상 어려워요

중요한 것은 어떤 식의 마무리라도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독자에게 메시지를 환기하면서 끝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난 어떻게 글을 끝마치는지 모르겠지만 허전함은 늘 느낀다. 미완성의 느낌이 드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종종 예외를 두면 묘한 반전이 느껴지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나의 마무리만 부족한 것은 아닐 것이니 마무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오픈 엔딩도 있을 것이니... 그런데 때로는 마무리에 내가 스스로 감탄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감탄하는 엔딩이 나오는지, 나도 모르겠다.



14. 퇴고를 꼭 해야 하나요? 퇴고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좋은가요?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독자의 눈으로 글을 읽어보며 적절한 정보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예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 아들의 나이를 독자는 써주지 않으면 모른단 말이에요.

항상 제3자 입장에서 자기 글을 보는 것, 자기 객관화가 퇴고 단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세 번째 마지막 단계는 ‘실밥뜯기’라고 명명한 글을 말끔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칩니다.

문장이 길어서 늘어진다 싶으면 단문으로 끊어줍니다....

글쓰기가 내 최상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요...


퇴고는 괴롭다. 미안하지만 난 퇴고에 많은 시간을 쏟지는 않는다.

그 대신 초고를 작성하고 시간 간격을 두고 묵혀둔 후에 다시 읽는다. 그게 재미있다. 바로 읽으면 보이지도 않는 문제점을 찾아 글 자체의 흐름을 놓치기 쉬운데... 약간의 시간의 경과라도 있으면 다소 객관화해서 나의 글을 볼 수 있는 느낌이라서, 갇힌 방을 나와서 방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문장이 긴 것도 문제다. 짧은 문장이 훨씬 더 좋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는데 애써도 잘 안된다. 아니, 애쓰지 않는 것 같다. 헤밍웨이처럼 되려고 애쓸 수 없다는 애초부터의 포기가 있던 것인지...

내 글의 서투름과 부족함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그저 생각과 글쓰기 내용을 이끌어내는데 몰입하는 편이다.

한글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글 정리가 끝나고 퇴고가 마무리될 시점에 블로그에 글을 올려 네이버나 카카오의 맞춤법 검사를 한다. 맞춤법 검사에 걸리지 않으면 짜릿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런 경우가 1년에 한두 번 정도 되는 것 같다.

완성단계의 글을 블로그에 저장해 놓고 보통 하루 이상을 더 묵혀둔 후 올리기 전 한 번 더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올린다.

물론 이후에도 다시 읽어보며 틀린 부분을 고친다.

퇴고지옥이라는 말을 작가도 언급했다. 어떤 자세로 어떤 완성을 추구하냐에 따라 시간과 노력이 다르다. 난 참 글을 쉽게 쓰고 관리하는 것 같다.



15. 제목을 잘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에 담긴 내용을 말하면서 다는 말하지 않는 제목이 좋은 제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제목이 소박하고 담백한 표현인 건 좋지만 무성의하면 안 돼요. 장황한 것보다는 간결해야 좋고요. 호기심을 유발해야 하지만 격을 잃지 않아야죠.


글을 잘 쓰는 법도 잘 모르겠지만 제목을 잘 짓는 방법도 잘 모르겠다. 제목을 보고 느낌이 왔다는 칭찬도 글이 좋다는 칭찬처럼 어쩌다 얻어걸린 것이었다. 제목을 먼저 떠올려 글을 쓰기도 하지만 글을 쓰려는 마음이 동하면 어느 정도 글을 진행한 후 가장 두드러진 표현을 제목으로 두기도 한다.

제목이 주는 이끄는 힘을 무시할 수 없지만, 내 힘과 역량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일 필요는 없다. 제목이 본문 글의 역량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본문보다 제목이 더 끌리는 글을 소위 어그로 끄는 글이나 낚시 글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16. 타인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룰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이렇게까지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글쓰기가 ‘서사의 편집권’을 갖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안 쓴다’가 아니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조심스럽게 쓴다’로 방향을 잡으시고요. 심판자가 아닌 관찰자가 되어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되는 인물을 그려내시길 바랍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정말 조심스러운 일이다. 사진의 초상권을 존중하듯 글에서 묘사되는 타인의 모습도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제외하고 객관화된 존중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쓸 때 당연히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 글의 주인공이 되는 당사자에게 글을 보내서 수정이나 삭제 등의 의사를 묻는다. 거의 괜찮다고 반응하지만, 부디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마지못해 하는 대답이 아니기를 바란다.



17.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노하우나 훈련법이 있을까요?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글감에 대한 생각이 설익었기 때문입니다.

“완벽함은 집착만으로 안 돼. 놓을 줄도 알아야 돼. 너를 가로막는 건 너 자신밖에 없어.” - 영화 <블랙스완>


완벽과 완성을 꿈꿀 수는 있고, 열정을 다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멈춰야 함을 빨리 인정할수록 좋은 것 같다. 육체의 한계에까지 이르러서 그만둔다면 절대 즐거운 글쓰기가 아닐 것이니. 물론 전문작가가 아닌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만 해당되는 자기 위로겠지만. 이번 글이 아니면 좀 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쓰는 글에 내가 원하고 기대하는 수준의 생각과 글이 완성되어 있기를 꿈꾼다.



18.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글 몇 편 쓰는 것과 책 한 권 쓰는 것은 글쓰기의 체급을 다르게 요구합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희귀한 기적을 제외하고, 책을 쓰는 것은 경제적으로 승산 없는 도박과도 같다” - <침묵의 봄>의 저자 레이첼 카슨


아무나 작가가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난 이미 뼈저리게 느꼈다. 즐거운 글쓰기에만 머물고 싶지 않은 분들은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도전과 성과는 별개로 두어야 시작할 수 있는 일지만, 출판사 입장은 다를 것이니 너무 낭만적인 생각으로 도전할 일은 아닐 듯하다. 물론 이런 얘기도 아마추어가 내가 함부로 언급할 내용은 아니다.



19. 책을 내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1년에 약 6만 권 정도의 단행본이 나온다고 해요.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남을 위해 기록을 남기듯 책을 써야 하는 분들은 남들 이상 가진 축복을 나누는 사명을 가진 분들이다. 난 그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저 내 삶의 반경에서 소소한 나눔을 할 수 있어서, 그러한 삶의 기회에 감사하다.



20. 작가님은 글쓰기가 재밌나요?

제게 ‘재미있다’의 반대편에 있는 표현은 ‘식상하다’이거든요.

저도 세상에 모르는 게 많아서, 알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삶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으면 재미 없어질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있을 때 제가 가장 훌륭한 생각을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 하베에르 마리아스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글을 쓰는 동력이고 재미입니다. 내 앎이 무화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혼란과 두려움이 있지만, 그럴 때라야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열리고 사고가 확장됩니다. 이런 인식의 쾌감, 성장의 효능감이 저를 글쓰기 앞으로 자꾸 데려다 놓는 것 같습니다.



모른다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나아가는 글쓰기...

난 아직 멀었다. 평소에 뭔가를 더 알려고 하고, 성장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작은 결실을 글로 옮기려고는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려 애쓰지도 않고, 글을 쓰면서 뭔가를 더 알아가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은유 작가 덕분에 글쓰기의 목표점과 지향점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알고 보면 그게 글쓰기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난 본질을 놓치고 글 쓰는 흉내만 낸 셈인데...

그래도 좋다. 난 아마추어니까 잘 하는 데서도, 전문성의 지침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냥 지침을 따르거나 잘 하려는 욕심 없이 쓴다. 글도 점점 성장할 거라는 막연한 희망만 품으면서, 감히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욕심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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