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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pr 05. 2023

무모한 수업공개 초대 이유

어제 학교에서 굳이 안 해도 되는 공개수업을 열어두었다. 


수업공개는 교사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영역이다. 교사연구회나 수평공동체 등의 이름으로 서로의 수업을 참관하고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사성장의 모형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동안의 수업공개가 대표수업 및 연구수업 등에 치중되어, 늘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학생 아닌 다른 누군가 수업을 참관한다면 손님 대접하는 기분으로 평소 먹던 밥이 아니라 뭔가를 더 차리고 준비해야 한다는 관례가 이어져 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평소 먹던 밥에 숟가락만 더 얹겠다고 편하게 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손님을 맞이하는 입장은 마냥 편할 수가 없다. 참관이라는 행위 자체가 남의 시선과 이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표하는 수업은 평소 수업보다 뭔가가 더 있어야 한다는 강박도 크게 작용한다. 실험적인 것이거나 다른 선생님들이 실제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특별한 그 뭔가를 담아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 그대로 실험적이어서 현실화할 수 없는 이상적인 수업모델로 그저 쇼에 그치기도 한다.


교사들의 수업공개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 중 하나가 수석교사제도다. 

어제 수석교사 한 분이 자신의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스토리에 올렸던 공개수업 스토리에 나를 초대했고, 정말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으로 읽었다. 

https://brunch.co.kr/@eyesnow/60

글의 시작부터 자발적 배움의 의지를 갖게 했던 구절...


나를 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 무던해지기, 그저 내가 진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모든 것을 진심으로 대하기, 그렇게 묵묵하게 나아가기...

수업공개를 하면서 다른 이들의 시선에 무던해지기란 그 자체가 모순이다. 

더구나 잔치할 명분도 없고,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이들을 초대한다는 건 예의 바르지 않은 일 아닌가.

한국인들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도 차린 게 별로 없다고 겸양의 자세를 보이는 게 미덕이었으니... 여간 자신 있는 상황이 아니면 손님을 초대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자발적인 수업공개에 용기를 낼 수가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제 상황에 이르러서야 손님을 받으면서, 자신이 자발적으로 초대한 것이 아니었으니 수업이 부족해도 어쩔 수 없다는 자세를 갖기가 쉽다.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려는 의미에서 수업공개일을 정해 놓고 강제가 아니면 서로 안 가주는 것을 암묵적인 국룰로 인식한다. 

이쯤 되니 수업참관을 받으면서 피드백을 받는 것은 거의 교생 시절에 국한되며, 공립학교의 경우 학교를 옮기는 첫해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도 경력이 많이 분들은 젊은 분들에게 양보(?)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학교마다 공개의 범위는 다르다. 우리 학교는 매년 학년별로 5명씩 대표수업을 하며, 전입교사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는 분위기였고, 난 전입 첫해는 물론, 둘째 해에도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눈치 보는 분위기에서 굳이 자원했다.

올해는 수평공동체 운영 확대로 학년형 3팀, 교과형(국어, 영어, 과학) 3팀에서 각 6명씩 36명이 대표수업자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선생님들을 직접 초대하는 것보다 수업영상을 미리 촬영해서 수업나눔의 날에 공개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수석교사들은 대외수업공개까지도 감당하며 초교과적으로 수업공개 문화를 선도하는 분들이다. 열정 넘치는 수석교사 선생님들은 선생님들의 수업참관을 하면서 피드백까지 해준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학교에는 수석교사도 없고 물론 나도 수석교사도 전입교사도 아니어서 의무적인 수업공개 외에는 공식적으로 수업에 누군가를 초대할 이유는 없었지만... 

아래 내용을 담아 메신저로 선생님들을 초대했다. 누구든 오셔서 보실 수 있도록...


4월 4일 화요일 5교시 3-11반 제 수업공개일인데요...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될 데 수업을 비공식적으로 열어두려 합니다. 혹 나쁜 선례가 되면 안 되니 교장, 교감쌤께는 비밀입니다.
특별히 준비한 건 없고 평소 하는 강의식 수업이지만, 영어에 관심이 많으시거나 아무 이유 없이도 수업을 참관하시고 싶으신 분들의 참관을 환영합니다. 잠깐 들렀다 가셔도 좋습니다.지도안 및 학습지 첨부해 드립니다.

교무부장님과 학년의 부장님과 동료선생님, 평소 나의 교육활동과 블로그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 사서 선생님, 영어과 선생님 한 분이 신청해 주셨다. 모두 다섯 분이셨고, 그중 한 분은 알려드린 시간을 잘 못 보시고 신청하셨다가 출장 때문에 못 오셨다.


너무 감사했다. 초대한 나도 무모했지만, 초대에 응해주시는 것도 보통 마음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초대하는 것보다 초대에 응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니까...

애초에 만만하고 편한 분들께만 메시지를 보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혹 메시지를 받고 부담스러웠거나 짜증 나실 분도 있으셨을 것이니...


내 수업 참관을 하시겠다고 신청하신 타학교 수석 선생님 한 분께도 메신저를 드렸다. 여건이 안 된다며 5월에 교생선생님들과 조용히 참관하시겠다는 답이 와서 이렇게 답변드렸다.


ㅋㅋ 선생님 덕분에 이런 용기도 내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오셔도 좋았겠지만...

글쓰기와 비슷하게... 수업을 잘해서가 아니라 이런 부족한 저도 이렇게 수업공개를 하니 다들 힘내시라는 메시지를 전해도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ㅋㅋ

5월, 날 좋은 날에 초대할게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자격도 안 되면서 뻔뻔하게 수석교사 코스프레를 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자기가 뭔데 수업공개 초대를 하는지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었을 터였다. 


난 잔칫상 같은 수업이 아니라도 평소 모습 그대로, 꾸밈없는 모습으로 수업하는 더 큰 용기를 냈다. 게다가 그 흔한 학생중심수업도 아닌 고전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내 수업 그대로를 그냥 드러냈다.


그럼에도 참관하신 선생님들이 내게 큰 힘이 되는 피드백을 해주셨다. 와서 봐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선생님 한 분은 비타음료까지 챙겨주시면서 이런 메시지를 남겨주셨다.


선생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고 있는데 종이 치더라고요~

아이들과 호흡이 너무 좋으시고,

늘 웃으시면서 주고받으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내용의 영어 수업은 처음 접했습니다.

저도 청블리샘 수업 듣고 프네요~~~ ㅎㅎㅎ


영어선생님께서는 정식으로 참관록을 작성해 주셨다. 내 수업에서 배움을 얻으려고 들어오셨지만 내가 더 큰 도움을 받은 느낌이다. 

논리적인 설명 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가요 및 영상 자료를 제시하면서 학생들의 흥미를 높였고, 수업 핵심포인트 교사 제시 이후에 스스로 원리를 질문하며 탐구하는 것이 관찰되었다고 했다. 학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재미있고 쉬운 설명과 잘 정리된 수업자료를 사용하며 학업성취도가 다소 낮은 학생들도 무리 없이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서 교실 수업에서 학습 격차가 나는 학생들에 대한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된 수업이라고 피드백을 주셨다.



수업 초대도 하고, 염치없이 준비한 것 이상의 좋은 격려의 말씀도 듣고는, 수업 공개는 이기적인 결단이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감사했다.



5월 교생선생님들께 좋은 수업보다 용기를 갖게 하는 수업을 있는 모습 그대로... 참관 예약하신 수석선생님께는 먼 길 오신 허탈함과 후회를 드릴 수 있기를...



어제 한 기관에서 교사대상 연수 강의가 가능한지 문의가 들어왔다. 과정중심 수행평가 및 생기부작성 전교사 연수였다. 정중히 거절했다. 교사연수를 꽤 많이 다녀서 전문가일 거라고 착각하려는 순간, 전문성이 하나도 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너무 명확하게 자각하게 되었다. 소위 현타가 온 거였다. 

생각해보니 그동안의 교사연수는 구체적인 주제를 미리 정해주신 글쓰기 강연을 제외하고는 대략적인 큰 주제 내에서 강의 내용을 거의 내 마음대로 구성했었다. 영어교사 대상 연수도 수업과 학습코칭에 대해서 전문적인 내용의 뒷받침 없이 그저 내 이야기로 채웠다. 

선생님들은 내 강의가 그동안 듣던 연수와는 달랐다는 반응을 많이 보이셨는데, 알고보니 그건 전문성 부족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학생 대상 수업의 전문성도 돌아보게 되었다. 현타의 언저리에서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영어기초반 수업이 있었다. 미리 수업안내문을 초대장처럼 전해주고, 수업 직전에도 수업에 올 것을 당부했는데 5명 중 3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수업하러 온 친구와 함께 귀가하려고 기다리던 2명의 학생들을 초대해서 수업을 진행했다. 



여전히 난 학생들의 수업할 의지와 공부할 동기유발에 완전 비전문가다. 아직도 방법을 모르겠다. 

난 그저 어떤 이유로든 절실함이나 의욕을 갖춘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열심만큼 통하는 수업을 해왔던 거였다. 그러니 고등학교 수업이 훨씬 더 수월했고, 선택형 방과후 수업은 더 수월했고, 야자시간이나 방학에 진행하는 심화특보수업은 훨씬 더 수월했다. 오히려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고 준비할 것이 많아도 힘든 줄 몰랐다. 심지어 수강인원이 60명이 넘고, 어떤 시절에는 80명이 넘어서도 오히려 더 힘이 났다. 



무모한 공개수업 초대 해프닝은 그러니까 내 전문성 부족을 돌아보고 확인받으려는 결단이었던 셈이다. 그 결단이 혼자만의 결심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주신 선생님들께는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이 글을 블로그와 카카오에 포스팅하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수석선생님께 링크를 드렸다. 글을 읽고 선생님 자신이 수석교사가 아니었던 4년 전 첫 자발적 공개수업을 하며 선생님들께 보낸 메시지를 공유해 주셨다. 한 시간 이상 공들여 쓰셨다고 했다. 장문의 메시지였지만.. 모든 부분이 다 좋았지만 그중 특히 가슴을 울린 부분만 인용하면...


아주 특별한 기회로 공개수업이 잘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잘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대상학생은 수업이 가장 힘들었던 **반입니다. **반 아이들이 공개수업을 통해 저와 더 끈끈해지고 긴장감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난 바로 이렇게 답변했다.

잘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잘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의미라니 너무 감동이에요. 저도 저렇게 멋있게 써서 메신저 돌렸어야 했는데요..

그래도 쌤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 같은 심정이네요

이러다 저도 수석교사되는 건가요ㅋㅋ

(게다가) 저는 수업분위기 제일 좋은 담임반에서 했는데, 쌤은 반대길을 가셨네요

정말 감탄입니다


수석선생님은 과분하리만치 감사한 응원의 말들과 마음을 받았다고 했다. 

수석선생님은 실제로 수업을 잘해서였겠지만, 난 그런 용기를 낸 것에 대한 격려의 의미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꼴찌나 언더독을 더 응원하고 싶은 마음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자신의 수업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할수록 더 용기를 내볼만할 것이라고 더 소리를 높이고 싶다.


수석선생님은 5월에 다른 수석선생님과 수업참관을 오시고 싶다고 초대해달라고 하셨다.


난 감사한 마음으로 이렇게 답변드렸다.


5월에 함께 초대하겠습니다. 배우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한수 가르쳐 주러 오셔야죠. 수석선생님의 출장 컨설팅을 받다니 꿈만 같습니다. 대구시에서 가장 큰 특혜를 받는 교사가 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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