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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pr 11. 2023

선 넘는 아이들의 성장

Feat. 나의 선 넘던 시절

선을 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학교생활이다.

중학생들은 장난을 주고받으면서 보이지 않지만 존중해야 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배워가는 것 같다.

 

중학생들은 평소에도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상황에서 뭔가를 배워간다. 아직 추상화 능력이 발달하는 중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애를 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마치 언어에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비유적 의미로 확장해 가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문자 그대로의 의미, 보이는 것에 집중해서 교육을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과정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확실히 알아야 비유적 의미로의 확장이 가능해지는 것이니까.

 

중학생들이 추상화 능력이 아직 한창 발달 중이라고 해서 그들을 나무라거나 재촉할 생각이 전혀 없다. 고등학교에만 있다가 중학교에 왔던 초반에 다소 당황했을 뿐이다.

 

실제로 영어도 고등학교 고학년으로 갈수록 내용이 추상화되고 학구화된다. 중학생 때 추상화 능력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학년이 올라가면서 능력이 발현되지 않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조급해하거나 서두를 이유도 없다.

이제까지 학생들과 소통했던 방식의 수정이 필요할 뿐, 아이들을 향한 교육적 영향력에 대한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수업 시간에 마음을 비운다는 건 그런 능력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당장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맥락과 내용들을 설계하면 된다.

 

중학교에서는 친구의 만행(?)에 대해 일러주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선을 넘어선 것을 자신들끼리 해결하기 어려워서 달려왔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는 드문 일이다. 이미 선을 넘어서지 말아야 하는 것을 체득한 학생들이 많아서일 것이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더 장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와서 이런 일까지도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난감한 적도 있었다.


나도 그런 시절을 겪었지만 너무 어른이 되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고 세월의 흐름으로 묻혀버린 그 과정의 기억을 다시 꺼내들어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실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나와 띠동갑인 초임의 여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 너무 좋았지만, 엄격함이나 무서움에 눌리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셨는데 난 그걸 악용했던 나쁜 학생이었다.


엄격한 아버지의 교육에 숨 막히듯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숨구멍 같은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모범생 강박에서 벗어나 장난을 치고 까부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였다. 그 재미에 중독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지, 일주일만 더 장난치고 다시 모범생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소란스럽고 통제가 안 되는 학생의 신분으로 지내다가도 선생님 앞에만 서면 쑥스러워서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했었다.


아침 등교 순서대로 원하는 자리에 앉으라는 담임쌤의 지시가 있던 어느 날 아침, 난 늦게 가는 바람에 원하는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난 본인의 자리에 불만인 듯 보이는 몇 명의 학생들을 선동해서 무단으로 학교 밖으로 뛰쳐나왔다.

논과 밭을 지나 정처 없이 걷다가 학교가 아득한 철길까지 오게 되었을 즈음, 더 이상 걸어 갈 용기와 힘도 남아 있지 않던 아이들과 난, 이 일탈의 끝은 절대 달콤한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걸, 자존심을 내세웠던 흥분이 가시고, 피곤이 몰려올 때쯤 온몸으로 자각하고 있었다.

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나가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난 후였기 때문에 바로 돌아올 수는 없었지만, 무작정 걷는 길에서도 현실이 나아지게 하는 해답을 찾지 못했고, 멀리 간만큼 돌아오려는데 더 큰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했다.

 

꼬리를 내리고 돌아와서 담임선생님께 불려가 벌을 섰던 그 허탈하고 씁쓸한 패배감과 좌절감과 죄스러운 느낌은 아직 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성이 마비가 된 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귀여운 장난으로 볼 수 없는 심각한 일탈이었음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그중에 일탈의 수장이었던 나조차 용서하셨다ㅠㅠ


담임선생님은 평소에도  일기장 검사하시면서 일일이 피드백을 주시면서 소통을 하셨고, 끝까지 나를 포기하거나 내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놀랍다. 나 같은 학생을 어떻게 그렇게 품어주실 수 있으셨는지... 선생님의 인내와 기다림으로 난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올 수 있었고, 변화되었다.


그전까지는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난 탕자처럼 진짜 학교 밖으로 나가는 문자 그대로의 행위와 평소의 선을 넘나드는 일탈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하고 조절하는 법을 체득하며 자기절제와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자발적인 기회를 얻었다.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내게 수치심으로 모범생의 강박을 심어주셨다면 나의 일탈은 더욱 길어졌을 것이고, 결국 돌아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은 멀었고, 효과가 바로 드러나지도 않았으며,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재활과정과 같았다.

 

난 담임선생님께서 6학년 때도 담임이 되어주시길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은 첫 해의 좋은 기억은 2년째부터는 안 좋은 모습을 서로 자각하며 훼손될 수 있음을 우려하셨다. 같은 학생들을 2년 이상 하지 않는다는 나의 원칙(단 한 번의 예외만 있었다)은 선생님의 은근한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6학년 초 난 갑자기 학교 교목으로 계시다가 교회 목사로 시무하시게 된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전학을 갔다. 선생님께는 정기적으로 편지를 드릴 것을 약속하고 인사를 하고 떠나왔고, 몇 번의 편지 왕래가 지속되었다. 정성껏 답장을 해주셨던 담임선생님의 친절과 관심과 사랑을 잊지 못한다. 교사의 꿈을 키운 건 중3 때부터였지만, 난 선생님을 이미 그때부터 나의 롤 모델로 내재화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일탈의 그 시기에 만난 선생님의 은혜를 특히 잊지 못하겠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른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이 되어 공감해 주고, 감정노동을 피하지 않으며 아이들로 인해 자신 주변에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고 함께 맞으면서, 무작정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걸, 난 삶으로 배웠다. 그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지 어른이 되니 더 실감이나서 눈물나도록 감격스럽게 고맙고 감사하다.

 

그리고 난 선생님 덕분에 선생님처럼 노력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던 그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들을 예전의 나를 만난 듯, 중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나의 역할은 아이들의 말과 행동과 학업 및 인격의 성취 등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걸 매번 다짐한다. 성취한 학생도 거기 머무르지 않아야 하겠지만,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 학생들도 너무 다그치지 않으면서 곁에서 같이 아파하며 기다려주기로 했다. 시대의 영향도 있지만, 중학교라서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부쩍 더 눈에 띈다.

 

아이들은 어딘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게 공부와 성적 등의 성취인 학생들도 있지만, 그게 어른들의 인정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더 많은 학생들은 누군가 자신만의 영역을 인정해 주어야 아이들은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은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며 자신을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기도 하는데 그게 때로는 기성세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게 그들만의 장난과 소란스러움과 분주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관계에서 찾기도 하고, 학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헛소리에 가까운 농담일 수도 있다. 스포츠에서 분출을 해야 하기도 하고, 밴드나 국악반, 댄스반 등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덕후처럼 도서관에 다니며, 도서반을 할 수도 있고, 방송반을 하면서 뭔가 자신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중학교에 교과형 방과후보다 예체능 방과후가 더 활성화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아이들은 장난 허용범위의 경계를 넘나들며 찐 우정을 시험받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을 이론이 아니라 직접 상처를 주고받으며 삶으로 배워간다.

선생님들은 한 번씩 아이들끼리 너무 선을 넘어서 자신들끼리 해결되지 않을 때 그 중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아예 선을 넘을 생각을 안 하는 학생들도 있다. 너무 조심스러워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걸리는 시간만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어떤 학생들은 교사들을 대할 때 선을 넘나들며 친근함을 표현한다. 한 번씩 선을 넘을 경우 선생님들의 애정 어린 교육으로 아이들은 예의와 인간관계의 선을 배운다. 그러나 역시 어떤 학생들은 아예 시도를 하지 않는다.

선을 넘나드는 모험이 없이는 친밀한 관계 형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

 

어차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암묵적인 선을 더 명확하게 인식을 하게 되어 인간관계가 조심스러워진다.

 

고등학교 때 친구는 오래간만에 통화를 해도 편한데, 첫인사가 그냥 욕설이다. 그게 선을 넘나드는 허용범위를 확인받은 친밀함의 표시일 수 있다. 친밀함이 없다면 그런 막말은 그저 폭력일 뿐이며,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런 관계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난 엄격한 아버지의 교육으로 인해 선을 지키는 것에 대해 너무 강박적일 정도로 소심했다. 머리로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행동으로 도저히 옮길 수 없을 정도의 정체성으로 화석화된 느낌이다. 특히 연장자나 어른을 대하는 것이 너무 조심스럽다.

옆자리에 계신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너무 깍듯이 인사하고 말을 하길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줄 알았는데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너무 놀랐다는 말까지 들었다.

 

나는 교사를 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사교성에 어려움이 있지만, 적어도 학생들 앞에 설 때는 그런 조심스러움에서 다소 자유롭기는 하다. 내가 선을 유연하게 정하면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혼자 수업하는 건 연기하듯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저 내가 혼자 농담을 준비해서 아이들을 웃기고 수업에 집중하도록 노력할 수는 있지만, 활동중심수업으로 아이들의 반응을 끌어내며 협력해서 수업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나이가 들어도 난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것보다 내가 그냥 다 하는 것이 여전히 편하다.


내 몸에 새겨진 성실하려는 노력과 책임감, 습관 등에 대해 아버지께 은혜를 입었지만... 사소한 것에 대한 선택장애나 인간관계에서 너무 조심스럽고 소심한 것, 늘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인해 모험하지 못하는 성격도 영향을 받았다. 이미 나의 모습과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경우에도 아예 선을 넘어서는 일이 없도록 원천 차단을 하는 등, 기준이 높거나 원칙을 강조하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을 경우, 나처럼 폐를 끼칠까 봐 아쉬운 소리도 못하고 어려움을 혼자 소심하게 감당하려는 학생들이 학교에 꽤 많이 있어 안따까울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난 딸들을 아버지의 방식과는 거의 반대로 대하고 있다. 그게 더 힘들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 기준에 아이들이 바로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압적으로 흉내 내도록 하려 하지 않는 건 내가 그 아픔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여러 분야에서 선과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결정의 의미와 그 결정을 책임지는 것을 스스로 터득해갈 것이라 믿는다. 어른들이 보기에 너무 둘러 가는 길인 것 같아도 그게 진정한 성장의 모습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탕자가 얼마나 고생하고 힘들어할 줄 진작에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탕자를 막지 않았고 또 막지 못했다. 억지로 집에 가둬두는 것보다 그게 얼마나 더 힘들 일인지는 부모가 되어봐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포기가 아니었고, 아픔을 통해서만 진정한 성장과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소망과 확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망과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탕자가 돌아오는 그 순간을 아버지는 얼마나 간절하게 눈물로 기다렸을 것인가.

 

난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도 끊임없는 기다림 앞에 숙연해진다. 어른으로서의 나의 한계를 느끼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만큼, 어른의 영향력의 권리를 내어놓는 것만큼 아이들은 점점 뿌리를 내리며,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그 소망과 확신과 그런 겸허한 기도의 마음만이 긴 기다림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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