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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y 05. 2023

마음이 가난해져야 들리는 고등 영어공부방향

어제 갑작스럽게 반가운 손님들이 학교를 찾았다. 

인근 고등학교에서 체육대회를 마치고 불쑥 학교를 찾아와도 되냐고 문자가 와서 초청에 응했다. 

작년 우리반 학생들 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몰려왔고, 난 학생들을 한곳에 앉혀놓고 제 버릇 못 주고 수업 때 잔소리하듯 잔소리를 쏟아냈다. 반가움에 친한 척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감을 느꼈다. 쉬는 시간이 되어, 보고 싶은 다른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도록 선생님들 계신 장소를 알려주고 돌아서려는데, 학생 한 명이 절실한 표정으로 영어고민을 내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해서 다시 수업 잔소리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모두 고등학교 중간고사 영어에 충격을 받은 아이들이었다. 

이번엔 절실함으로 마음의 문을 연 아이들은 나의 쏟아지는 잔소리에 기꺼이 몰입하며 경청했다.

잔소리를 한참 하다 보니 갑자기 민망해졌다. 처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년 수업시간에 다 했던 얘기였다. 

같은 이야기 다른 반응... 그건 마음의 가난함의 정도가 결정하는 거였다. 

중3이었을 때 그 아이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중학교 내신영어성적은 흠잡을 데가 없었고, 나름 학원에서 고등학교 모의고사를 어느 정도 감당하면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의 염려 섞인 잔소리가 귀에 들릴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실시하는 영어멘토링에 참여할 이유도 없었고, 방과후 수업을 신청해서 들을 이유도 없었다. 

작년에 내가 실시하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서 고등학교 내신 대비가 잘 안되었다고 질책하는 것은 아니었다. 꼭 내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자신의 수준부터 쉬운 것부터 점차적으로 실력을 늘려 갔어야 했고, 조급함으로 완성의 단계 어딘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위안보다는 초라해 보이는 치열한 기본기에 더 충실했어야 했다는 메시지였다. 내신시험, 특히 수준 높은 학교의 서술형 시험을 대비하려면 더욱 더 그랬어야 했고, 작년 수업시간에도 수차례 강조했었다. 이런 주제로 진학사 온라인 학부모 강의, 교육청 학부모 강의도 계속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공부법 특강이나 영어단기특강에서도 변함없이 강조하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그 메시지를 관념이 아닌 삶의 체험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아픔이 내게 그대로 다 전달되었고,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픔과 상처값을 지불해야 들리는 이야기라면 전달하는 나의 마음도 아픔을 면제받을 길이 없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아이들이 더 아프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폭풍 잔소리를 쏟아냈다.

오히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만만한 단계에서 쌓아 올린 내공으로 인해 영어문장이 보이게 되면 즉,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의미를 맥락으로 정확하게 끌어내고, 한 단어도 소외되지 않게 단어의 역할을 지정하면서 문장분석이 가능해지면, 그때부터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영어지문을 꾸준히 재미있게 읽어가면 되는 거라고. 지금은 완결된 모의고사를 그것도 자기수준보다 높여서 볼 이유는 없다고. 특히 내신 서술형은 유창성보다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고.

그러니 현재 진도에서 유형별 답을 찾는지의 여부보다 모든 단어와 문장이 다 정확하게 납득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그 기본기를 안 해 놓으니까 그래서 자립이 안 되었으니 계속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거라고.

성적이 안 나온다고 더 어려운 것에 도전하면서 영영 자립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물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는 성실한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다. 근데 어제 학생들은 모두 그런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방향만 맞았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니. 그 학생들은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평소 내 조언이나 수업을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때는 다들 각자의 사연으로 공부를 잘 하고 있었던 것이어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었다. 

그중 어떤 학생은 무슨 단어를 공부하면 좋겠냐고 묻길래, 다소 기분이 안 좋을 정도였다.

작년 수업시간에 내 단어 코스를 집중적으로 분명 소개했었는데 이제 와서 뭘 보냐고 묻다니.

마음이 가난해지고 나서야 들리는 소리가 있다. 그때라도 들리면 다행이다. 

마음이 가난해지기까지 상처와 아픔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나의 말에 반응하는 학생들은 그 순간의 실력에 상관없이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다. 

나에 대한 신뢰가 넘치거나, 이미 상처를 겪었거나, 학원에 의존하지 않아서 내가 유일한 옵션인 그런 아이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내게 왔던 아이들은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던 아이들이었다. 

내 코스를 강요할 수 없던 것을 자책했다. 그러나 아무리 붙잡고 얘기했어도 그때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 내게 친한 척하는 아이들은 내가 개인적으로도 분명 그런 방향을 얘기해 주었었다.

그러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작년 아이들은 유독 학원과 내 멘토링에 양다리를 걸치다가 학원에 비중을 더 두고, 결국 학원을 선택했고 그 상처는 나의 몫이었다. 무료로 진행되고, 화려함보다 초라해보이는 기본기를 강조하는 내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더 합리적인 선택이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고등학교 내신에서 박살난다는 나의 경고도, 학원에서 충분히 높은 수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해의 깊이를 더하지 않고 수학선행진도만으로 고득점을 기대하는 심리도 이와 유사하다.

오늘 내가 해줄 이야기는 이것뿐이었다.

고3, 고2, 고1, 중3 학년에 관계없이 가야 하는 방향은 동일하다고. 미리 준비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의미 없는 후회는 집어치우고, 지금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가라고... 그 대신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니, 특히 모의고사 점수 따위에 자존심을 걸지 말고, 일단 영어내신에 집중하며, 어떻게든 멈추지 말라고... 

제발 초라해보이는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거기서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하라고. 거기서부터 제대로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지라고. 더뎌 보이는 그 과정을 잘 참아내며 조급해하지 말고 부디 멈추지 말라고.

그리고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분명 작년 반응과는 달랐다. 그들의 자세를 다르게 한 것은 시간의 흐름만은 아니었다. 그들 가슴에 새겨진 상처였다.

아픔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아픔과 성장은 동격이 아니지만, 아픔이 있어야 못 보던 것을 보게 되고, 자신의 방향을 수정할 기회를 가지게 되며, 배움의 조건인 겸손함을 장착하게 된다.

그래도 그들이 너무 아프지 않기를... 혹 너무 아파서 겸손보다 더 추락해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우루루 내 전화번호를 따갔다. 마치 연예인에게 싸인해달라는 포즈로 내게 자신들의 폰을 들이대고 있었다.

정식 교사와 학생일 때는 가닿지 않던 나의 교육적 영향력이, 그 관계가 종료된 후에야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니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당장의 가시적 성과 없이도 교육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시선을 돌려 중간고사 끝나고 다시 시작할 이유나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을 영어멘토링 참여하는 중3 학생들 90여 명에게 현실적인 더 큰 관심을 주려한다. 그럼에도 주도권은 학생들 각자에게 있지만 조금은 월권을 해보려 한다.

이번 달에는 멘토링과정에 추가된 듯 영어과 교생선생님 네 분도 학교에 와 계시다. 사명감으로 더 들뜬 일상이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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