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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y 04. 2023

나의 공부 연대기4 (재수 시절-삶의 전환점)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생은 되지 못한 중간계에서 나의 고통이 시작되었고, 그 고통의 깊이만큼 난 성장하며 인생의 퍼즐을 완성해갔다. 지금 생각하니 모든 사소한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들어맞으며 운명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재수생의 신분으로 쓸쓸하게 졸업식을 마치고 연고도 없던 시골교회 옆 사택에서 나홀로 재수를 시작했다. 학원 다닐 형편도 안 되어서 그저 혼자서 공부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모든 과정이 자기주도학습이었고 자율성의 극단에 있었다. 아무도 나의 공부계획에 개입할 사람도 없었다. 때로는 한 번씩 방향성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을 멘토나 선생님의 존재가 절실했지만, 그저 혼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홀로 감당해야 했다. 

당장 아침에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것부터 힘들었다. 집과 공부하는 장소가 분리될 수 없이, 하루 종일 부모님과 함께 집에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을 나눌 친구들도 곁에 없었다. 1990년대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그저 섬에 격리된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공부만 하게 되었으니 잘 되었네”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물리적인 시간의 확보만으로 공부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은 시기이기도 하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한 번씩 동네 초등학생들과 자발적으로 놀기도 했다. 놀아 준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놀았던 느낌이다.


부모님은 내가 전교 1등의 삶을 감당하게 된 이후로 내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나,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하라는 조언 등도 전혀 없으셨다. 그런데 그게 무관심이나 방치는 아니었다. 신뢰였다. 그래서 난 나의 자율성을 완벽하게 보장받았다. 내 모든 과정이 완벽했거나 옳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행착오도 그 좌절감도 다 나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다정한 무관심”을 완벽하게 내게 실행해 주신 것 같다.

자세한 재수 체험은 아래의 포스팅을 참고하시길...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978227325

<재수의 신앙적 의미>

재수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 당시에는 고통스러워서 그렇게 중요한 지점에 있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신앙적 해석이 없다면, 나의 재수 기간과 그 이후의 삶의 여정은 그저 실패로 규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재수 기간의 그 광야의 훈련이 완전히 달라진 삶의 관점과 가치관을 준비시켰고, 이후의 모든 만남에서 난 진심과 사랑과 행복을 누렸다. 



그 관점의 변화에 대해 이전에 정리했던 글(2013년)을 발췌해서 소개하려 한다. 나의 신앙고백이며 간증이니, 불편하신 분들은 skip 하시길...

1. 고통을 통한 훈련

광야 같은 훈련을 통해 다듬어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패 없이 제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면 아픔을 겪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만한 교사가 되었을 겁니다.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와 대학 입학했을 때 제 수준이 너무 높다고 착각하며 어울리려 하지 않았던 그 교만함으로 만나는 학생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2.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정체성에 대한 인식 변화

돈, 명예, 인정, 높은 성적이 제 가치를 증명할 거라고 믿으며 공부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얻는 건 교만함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외모도 뛰어날 것 없는 저는 공부만이 저를 지켜주는 보호벽 같은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들여 쌓아 올린 벽도 서울대 떨어지면서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깨어진 그 순간 저는 nothing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알게 된 건 그분과 함께여야 everything이 된다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nothing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아파트, 멋진 차, 풍족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로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멋진 승용차로 출퇴근하시는 선생님들 옆을 자전거로 지나치면서도 굴욕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물으시는 선생님들께 아파트 그늘에 가리는 빌라에 산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합니다. 교사로서 명예로운 일이나 인지도 등을 추구하기보다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진심으로 사랑하는지가 제게는 더 중요해졌습니다.

 

3. 삶의 우선순위 변화

세상적인 가치를 내려놓으니 소중한 것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매년 초에 드리는 기도는 내가 필요한 아이들 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제게는 승진보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4. 맡길 수 있는 축복

저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지만 궁극적으로 내 뜻대로 내가 이끄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목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 것이지요. 저도 원하지 않았지만 의무적으로라도 그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착각이었고 지금 여기가 제 자리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저를 인도하시는 분은 그분이시니 걱정과 불안함은 없습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주변의 걱정스러운 일들이나 받은 상처로 인해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믿음으로 가질 수 있는 평안함입니다.

그 순간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자칫 저주의 길일 수도 있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길을 가게 되면서도 훗날 감사로 떠올릴 수 있는 기도제목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전의 일들과 그 변화는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교사를 하는 데 있어 저를 준비시키신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카리스마가 있는 교사도 아니고, 지도력이 뛰어나지도 않으며, 화려한 실적을 거두는 교사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차피 제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는 아니었습니다.

 

경의 에스더 내용처럼 하나님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모든 일이 우연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그게 우연이 아니었음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이제까지 과정 중에 그 어떤 하나가 어긋났어도 여기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생의 퍼즐처럼 막연하지만 갈수록 명확해지고 그분의 큰 그림을 알게 됩니다. 때론 최선책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퍼즐을 다 맞추고 나면 알게 됩니다.

 

대구는 제게 아버지 고향 밀양으로 가는데 스쳐가는 역이름에 불과했으나 전 지금 대구 시민이고 지금 제 와이프도 대구 시민입니다. 대구 시민이 되는 것은 제 인생의 계획 중에 없었으며 그 어떤 공상 속에서도 대구라는 곳에 내려가서 사랑하는 여인을 찾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이전의 사소한 결정과 그 결과로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던 결과였습니다. 그랬다면 지금 제 두 딸들도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저의 삶의 선택의 순간과 그 과정 그 당시 알지 못했던 것의 이유를 이제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만났던 수많은 소중한 학생들, 앞으로 만나게 될 소중한 학생들... 그리고 와이프.. 그리도 딸들

그래서 제게 주어진 모든 만남은 충분히 극적이며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불안해하지 않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순간순간 살아갈 것입니다. 저의 부족함과 실수도 그분의 궁극적 인도하심의 허용오차이기 때문이며 혹 때론 저의 부족함을 통해서도 그분이 정하신 때에 우리에게 최선의 곳으로 인도하시기도 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일, 다음 달, 내년에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겠냐구요? 알 수 없습니다. 그냥 맡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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