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아무런 설명 없이 안내문을 교실에 게시하였다가 신청자 0명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하고는, 작년에 왜 그래야 하는지를 설명한 끝에 수십 명의 희망자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이번에도 간략하게 그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어떤 반에서는 처음 내 얘기에 주목하다가, 프로그램 소개로 넘어가는 순간 다들 감탄하며 영업 능력이 뛰어나다는 극찬(?)을 내게 보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내 학습코칭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의 교만함이었다는 인식을 넘어서, 아이들은 나의 이러한 권유를 일종의 영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분명히 있음을 확인했다.
아이들에게 중3에서 예비 고1로 프레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기말고사 끝나면 긴장이 풀어져 내 말이 귀에 닿지 않을 것이어서 미리 얘기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시켰다.
그리고 두 가지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
시기적으로 여름방학의 중요성 인식,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인식..
이 두 가지는 서로 상호보완적이다. 부족함을 인식해야 움직일 것이니까...
그런데 부족함 자각을 막는 것은 객관적인 부족함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외형적인 넘침과 자신감이라는 사실도 명확히 했다. 내신성적이 잘 나오고, 학원에서 나름 선행진도를 꽤 뽑고 있다는 것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학생들은 부족함 자각과는 거리가 멀 것이니...
그래서 중학교와는 다른 고등학교 세상에 대해 나름 실감나게 설명했다.
서울대 의대를 비롯한 최상위권 학생들의 공통점은 자기주도성(메타인지와 꾸준한 습관)과 확고한 기본기로 인해 암기를 최소화하고 이해하면서 지식을 확장하고 응용할 수 있어, 오히려 시간과 노력이 절약되어 슬슬하는 것 같은데도 결과가 좋다는 현실도...
중학교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방학 때 방학의 취지를 살려서 충분히 여유 있게 쉬고 고등학교 가서 "이제 시작!" 이렇게 해서는 경쟁에서 이기고 지고 문제가 아니라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며 행복한 길을 보장받을 수 없는 냉철한 현실도 얘기했다. 너무 과열되어 실속 없이 고생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분들은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그리고 전체적인 공부능력을 좌우하는 독서하는 비법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당장 실행해야 할 프로젝트라고... 고등학교 가서 필요성을 느끼고 하기에는, 축적된 시간과 독서량을 요구하는 상황에 가시적인 성과를 금방 거두지 못해 내신의 상처를 더 받으면서 좌절할 수도 있다고...
교육특구 학생들은 내신의 구멍이 생겨도 정시파이터 선언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개 수시로 대학진학을 해야 할 텐데, 고등학교 진학해서 받는 내신성적의 상처는 회복의 희망보다는, 선택권의 제한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알려주었다.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문턱을 넘어서야 하니까.. 찌질하게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데까지 해보면서, 겨울부터 본 무대에 올라섰을 때 힘겹지 않게 감당하기 위해서라고..
지금은 시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습관형성이 가장 중요하고, 자신의 실력에 맞는 수준과 속도가 중요하다고.. 그래서 플래너도 써야 하고, 어떻게든 혼자서 해봐야 한다고..
그걸 안 하려고 하니까 그냥 학원 숙제만 하고는 공부 다했다고 놀고 있는 거라고...
물론 내가 하는 과정을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어도 아이들은 강요에 비슷한 영업이라고 인식하고 있어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내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빌런이 된 느낌이었다.
물론 교사의 역할을 최소화해서, 별로 힘들지 않게 관리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에 학생들에게 비용부담을 받지 않고 무료로 진행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행복교육에 대한 기대로 인한 나의 행복값도 있지만, 그저 귀찮음을 무릅쓴 나름의 헌신인데...신청을 강요한 적도 없고 신청 안 하면 그만인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아도 학습의 방향을 제시해 주려는 나의 진심이 왜곡된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혹 학생들에게 비용부담을 받았다면, 그럼에도 절실한 학생들은 참여했겠지만, 학생들의 비난은 폭주했을 것이고, 난 돈벌이에 혈안이 된 나쁜 교사로 인식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중요한 키워드는 이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환영받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마침 신청 직후 받은 수업평가에 비난이 담긴 어조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단 한 학생의 필요와 절실함과 만날 수 있다면 비용 대비 효율은 꽝이겠지만, 의미 없는 몸짓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기대감...
어떤 학생은 방학 때 해외에 나갈 예정이면서도 신청했다. 시공간을 초월한 가능성의 극단을 확인한 느낌이었다. 4개 반에서 가신청을 받았는데 25명이 신청했다. 아직 7개 반 신청이 남았으므로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학생들과 시작하게 될 설렘에 수업평가에 받은 상처는 잠시 잊었다.
시간이 갈수록 정말 열심히 하는 학생들만 돋보이게 되는 영어멘토링 과정의 명단도 정비했다. 명단을 리셋하고 새로 신청을 받았는데, 거의 여름프로그램 신청자 수와 비슷했다.
몇 명이 신청해서, 몇 명이 살아남을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저 한 영혼, 한 영혼에 집중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