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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Jul 09. 2023

진심을 다하는 수업과 학습코칭

킹더랜드 대사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셰익스피어가 청소하다가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고 빗자루를 집어 던진 청년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난 펜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일부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지만, 자네는 지금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일부를 아름답게 청소하고 있잖은가? 결국 우리는 같은 일을 하고 있네.”


킹더랜드라는 드라마 ep.7에서 호텔의 테이블보를 대충 덮으려는 본부장과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려는 직원의 대화를 보고 위의 예화가 생각났다.


본부장 : 그냥 씌우면 되는 거 아닌가?

호텔직원 : 호텔에서 그냥이라는 건 없어요. 이 테이블보 모서리 떨어지는 위치랑 각도까지 다 맞춰야 해요.

본부장 : 어차피 한 번 쓰고 치울 건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호텔직원 : 이 자리에 앉으실 손님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담았잖아요. 그 정성을 제가 펼치는 거고요.

본부장 : 깔끔하기만 하면 됐지 그런 의미까지 담아야 하나?

호텔직원 : 그런 의미라도 없으면 제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해도 상관없는 허드렛일이에요.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저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되죠. 그게 호텔리어로서 제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 호텔직원의 평소 모습을 관찰한 본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작은 거 하나하나 참 진심이네.


모든 직업인들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이 장면에서 난 교사됨을 떠올렸다.

내 수업을 들을 많은 학생들을 위해 정성을 담아 수업으로 펼치고 있는지. 그런 의미가 없으면 내 모든 수업은 누구나 해도 상관없는 허드렛일이 아닌 건지. 의미를 부여해야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닐 것인지. 그게 교사로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 것인지.

그 정성을 본 학생들이 내게서 작은 거 하나하나 참 진심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지.

어차피 중학생들은 고등학교 교사로서 쌓아왔던 나의 내공을 몰라볼 것이니, 어차피 고등학생 같은 절실함이 없어 내 수업의 가치를 모를 것이니, 그냥 대충 수업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았다.

나한테 맞추지 않는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내가 그들에게 맞추지 못함을 더 절실하게 돌아봤어야 했다는 반성이 되었다.


나의 진심이 단 한 명의 학생에게만 전달되더라도 난 노력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나의 수업과 코칭은 한 학생, 한 학생에게 개별적으로 가닿아야 하는 인격적인 교육과정이어야하기 때문이다. 우주 같은 한 학생의 세상을 마주하는 일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우리학교 여름방학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아직 방학은 아니지만, 기말고사 끝난 후, 방학이 되기 전 기간도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시기라고 믿기 때문에 일찍 서둘렀다. 약속한 45명의 학생 중 19명만 구글클래스룸에 가입했고, 그중 7명의 학생들이 첫날 플래너점검 및 글읽고 댓글달기 활동에 참여했다.

내게 중요한 건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한 속상함보다, 참여하는 아이들에 대한 집중이다. 참여 안 한 학생들도 물론 인내를 가지고, 애정으로 기다릴 것이다. 이 과정의 목표는 완성이 아닌 완성을 향한 한 걸음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진심을 담기만 하면.

학생들에게 안내문을 배부하면서 며칠 참여 못해도 부디 좀비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당부했다. 하루도 안 빼먹는 데 의미를 두지 말고, 몇 번 빼먹었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에 의미를 두라고 했다.

첫날 글 읽고 댓글 달기에는 예전에 포스팅으로 올린 적도 있는 학생들에게 전하는 편지글이었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134485221


학생들의 댓글은 이러했다.


    처음부터 완벽하려 하기보다는 처음에는 실행하기 쉬운 목표를 세우고 점차 목표를 늘려야겠다.  

    사소한 것부터 꾸준히 하는 습관이 시간이 지나면 앞으로 나아갈 디딤돌이 되는 것 같다. 처음부터 해야 할 일을 거창하게 잡으면 금방 놓아버릴 것 같아 이번 방학, 이제부터는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준비가 되어서 시작하다 실패로 끝나지 말고 가볍게 시작해서 끝까지 간다라는 마음으로 실천해야겠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조금씩 천천히 기본기를 쌓아가려 노력하고 시행착오에 굴하지 않겠습니다.  

    영어멘토링을 하면서 매일 꾸준히 하는 게 힘들어 미룬 적도 많았는데, 중요한 건 미루지 않고 완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루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인 걸 알았다. 앞으로 그런 마음을 갖고 멘토링에 참여해야겠다.  

    이 글에서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적용하면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있지는 않을 수 있다는 문장이 너무 저에게는 와닿았습니다. 글에서 예시로 든 상황들과 저의 생각과 처지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지니면서 한자리에만 있지는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명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 그 끝은 정해져있지만, 졸업으로 물리적이고 행정적인 거리가 생기는 것과 무관하게 아이들의 기본기가 굳건해지고, 습관형성을 이루어 결국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순간을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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