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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Jul 11. 2023

(질문) 교사가 된 계기와 위기 극복 경험?

후배교사 질문

교사가 된 이유/계기와 교직에 있으면서 회의감이나 스스로의 한계를 느낀 적이 있으신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중3 때 후배들에게 공부법 강의를 해주면서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았고, 그 이후 후배들과 지속적인 교감과 소통에서 큰 보람과 의미를 찾았어요. 내가 가진 작은 것으로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과 삶의 가치를 발견했던 것 같아요. 그때 이후로 교사는 제 꿈이 되었고 지금은 그 꿈을 살고 있지요.

 

교직에 있으면서 회의감이 들었던 위기가 한 번씩 있었고, 한계는 그보다 더 자주 느껴요.

젊은 시절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무모한 자신감과 모든 학생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지내다가, 현타가 올 때마다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교사로서 역할이 크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너무도 더딘 교육의 성과나 효과에 대해 고민이 커졌고, 좋은 의도로 교육을 해도 오히려 비난받거나 민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에 무력해지고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교사에게 가장 힘든 건 학부모 민원인 것 같아요. 존중이나 존경은커녕 감정적인 민원을 받아내야 할 때는 특히 제 얕은 자존감으로 버텨내기 힘들었지요. 그렇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는 불안감으로도 이어지곤 했어요.

 

그래서 극복하지 않기로 했어요. 극복이 안 되는 문제더라구요.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야 제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걸 실감하게 되고 나서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교직 경력이 쌓인 지금도 전 여전히 부족하고 더 성장해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이 저를 불안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이나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과 대우에 집착하지 않도록 오히려 도와주는 것 같아요. 그걸 인정하지 않고 당위성만 내세운다면 꼰대가 되는 거겠죠. 이미 전 꼰대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끝까지 몸부림치려 해요.

 

학생들도 지금 이 순간 모든 학생들을 제가 다 변화시킬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저에게 손을 내미는 간절한 학생들이 눈에 더 들어와요.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만, 교육적 변화와 성장은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열고 손을 내미는 학생들에게 달려 있다는 걸 받아들이려 해요. 꼭 나를 통해서만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교만해하지 않으니까, 멘토링하면서 이탈하는 학생들로 인해 상처를 덜 받는 것 같아요.

 

제 멘토링과정 참여나 지속의 선택을 존중하듯, 정규수업시간에도 학생의 수준과 의지와 동기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 달라질 수 있음도 받아들여요. 물론 보다 많은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업을 준비하려 애쓰지만, 평생 완성을 지향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거죠. 

학생들도 당장 완전학습을 할 수 있는 극소소를 제외하고는 역량껏 최선을 다하고 이후의 기회를 봐야 하는 것처럼 교사로서 저도 그런 부족함과 성장의 가능성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려 애쓰고 있어요.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회의감을 느낀 적도 꽤 있었어요. 교사 외의 다른 현실적 생존의 대안이 없기도 했지만 그때 저를 지탱해 준 건 학생들이었어요. 교사가 된 이유이자, 어떤 어려움이나 회의감에서도 교직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저를 만나는 게 축복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적어도 사소한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붙드는 것 같아요.

능력과 소질 여부를 떠나서 그 어디에서 이토록 많은 학생들을 만나며 그들의 인생의 여정에서 행복한 기억을 공유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겠어요. 그만큼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그래서 매 순간 고민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맛있는 거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눠먹고 싶은 것처럼, 학생들이 나의 눈과 귀를 통해서도 세상을 바라보니까 그 사명감으로 행복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듣도록 애쓰는 것 같아요. 학생을 만나는 건 교사 자신의 행복이 전제가 되어야 행복이 전달되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이유와 동기가 되기도 하구요.

 

어떤 교사도 어떤 경력으로도 학생, 학부모의 민원과 감정노동에서 면제될 수 없어 늘 불안할 수 있고, 현실에서도 힘들 수 있지만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일어날 엄청난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 그로 인한 행복값을 생각하면 교사가 치러야 할 숙명 같은 대가일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면...

제가 정말 힘든 위기와 고비에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기독교) 신앙인 것 같아요.

선생님의 꿈을 살아가시고, 아이들에게도 각자 꿈의 의미를 삶으로 전해주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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