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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ug 08. 2023

수석교사 제도와 개인적 고민

떡줄 사람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물부터 마시는 얘기지만...

주변에서 계속 내게 수석교사 지원을 적극 권하니까, 지원하면 그냥 합격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작년에 특히 강력하게 권하는 동기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면서 고민을 종결했다고 생각했는데...

"난 그저 평범한 담임교사로 정년 하는 게 꿈이자 인생 목표야. 나의 부족함은 노력으로 채우면 되니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만, 그저 학생들에게 집중하려는 마인드는 잘 타협이 안 되네. 그래도 좋게 봐줘서 고마워^^"


이번에 만났던 동기는 내가 수석교사를 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말해주었다.

블로그 글에서도, 한 번씩 하는 전화 통화에서도 진심이 느껴지고 큰 위로와 힘이 된다고. 그러니 수석교사를 하면서 그런 진심을 전할 기회를 더 넓게 가지면 좋겠다고. 그리고 우리 나이가 충분히 많이 들어서, 우리 생각만큼 학생들이 우리를 가까이하지는 않을 거라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할 것이니 더 좋아질 일은 없을 거라고. 


정말 슬펐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막을 수 없고, 갈수록 학생들과의 거리는 세대 차이를 넘어서 더 멀어지는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 이 정도 거리라면 나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자신감은 있지만, 매년 상황은 더 악화될 거고, 결국 아이들이 나를 원하지 않고 나의 다가가려는 노력조차 아이들에게 부담이 된다면, 나의 욕심만으로 아이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수업 시수가 적은 학교는 애써 피하고, 담임이 아닌 교사를 상상하지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존중하며 응원해 주던 아내도 요즘 들어 그 현실 인식을 하고 있는지 후배 교사들에게 선배 교사로서 좋은 역할을 더 해주는 수석교사 지원이 어떤지 내게 권했다.


일단 수석교사 제도에 대한 공문과 계획의 내용을 정리해 보고, 나의 고민을 함께 담아보려 한다 

혹 수석교사 제도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함께 고민할 좋은 기회가 되시길...



(2022년 기준 대구 수석교사 선발 계획 일부)

1. 수석교사 추진 배경

 '수업 잘하는 교사'의 수업 노하우 공유, 수업 우수사례 공유와 교과 전문성 개발

일단 내가 수업 잘하는 교사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든 학생들 수준과 흥미에 맞게 도움이 되는 수업을 구성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소위 활동중심수업, 프로젝트 수업, 방법을 공유할 만한 체계적인 수업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난 그저 고전적 방식의 교사 중심의 강의식수업에 컨텐츠구성에만 힘을 쏟고 있으므로... 그건 공유의 영역이라기보다 개별 노력의 영역이니까.



2. 수석교사제 개요

1) 자격 : 15년 이상 교육경력에 정년 잔여기간 4년 이상인 지원 교사 중 심사를 거쳐 선발


2) 수석교사 역할 : 교사의 수업 및 생활지도 컨설팅, 신규 및 저경력 교사 교수학습 지원, 자료개발 및 연구 활동

교사를 돕는 것이 수석교사의 핵심 역할이다. 그러나 영어교과가 아닌 분들께 컨텐츠중심의 강의식수업만 고집해 온 나로서 어떤 도움을 드릴지는 막막하다. 


신규영어교사 멘토링은 교육청 요청으로 2년 연속 하긴 했다. 원래 이건 수석교사의 중요 역할인데 이미 수석교사처럼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면 이런 기회가 있기 때문에 굳이 수석교사의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후배교사들을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픈 생각은 현실성 없는 나만의 상상이었는데, 1정연수강의, 신규교사 멘토링 등의 기회가 계속 주어지는 것이 아직도 꿈만 같다. 수석교사가 되면 그저 꿈이 아니라 의무가 되는 건가? 어쩌다 보니 생긴 기회에 감사할 뿐이었는데, 수석교사가 되면 그런 생활이 일상으로 주어진다는 의미인 건가? 

자료개발 및 연구활동은 그냥 내 수업을 위해 하고 있지만, 이제는 정해진 방향대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까지는 나의 선택이었고, 내가 하고 싶은 분야를 학생들을 위해 연구하고 자료를 축적했지만, 수석교사가 되면 그 선택권이 내게만 있는 건 아닐 거라는 사실이다. 이게 또 다른 기회일지, 아니며 제한 요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3) 임무 : 교사의 교수․연구 활동 지원 및 학생 교육 


4) 우대 : 수업시수(1/2) 경감, 연구활동비 지급 등

수업시수 경감은 내가 바라는 우대의 조건은 아니다. 학생들과의 만남을 대폭 줄여서 교사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 같아서, 이 대목에서 난 수석교사를 소망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후배 장학사님께 하니까, 수업 시수 안 줄이고 다 하면 학교에서도 더 좋아할 거라고, 수업 많이 하면서 자기 역할을 하는 수석교사가 멋지지 않냐고 반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업을 경감해 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구활동비를 지급한다는 것도 부담이다. 보통 예산이 있는 곳에 일이 따르고, 예산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수석쌤은 출장이 너무 많다고 했고, 그래서 운전을 하지 않고 다니는 것을 꺼리는 내게는 제약이 많을 것 같고, 어떤 수석쌤은 계속 출장, 연수, 출강으로 평소에 너무 바빠 보였다.

수업시수 경감은 우대이기도 하지만, 그 권리 이상의 의무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수석교사는 담임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내가 주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5) 평가 : 매년 업적 평가, 4년마다 재심사를 통해 재임용


3. 추진 방향  

    법령에 따른 기준과 엄정한 선발 절차를 통해 동료교원이 인정하는 인성을 갖춘 역량 있는 수석교사 선발  


    2022 개정교육과정 정착, 자유학기제 안착 지원 등 교실수업개선을 선도할 수 있는 전문성 역량 평가  


    수업‧평가의 혁신을 위한 IB 수업 경험의 학교 현장 확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석교사 선발   

인성, 교실수업개선, IB..모두 내 취약분야이거나 전혀 모르는 분야다. 

인성은 평생 노력해야 할 아직 갈 길이 먼 분야이고,

난 교실수업개선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일 것이고, 

IB는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전체적인 교육시스템이나 입시 시스템의 변혁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현재로서 참여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추진 방향을 놓고 보면 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4. 세부 임무  

    수업 : 소속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  


    교사의 교수․연구 지원 활동 : 교내외 수업 및 생활지도 컨설팅, 공개 수업 및 수업 시연, 신임교사 및 교육실습생 지도, 연구회 운영 및 자료개발 등   


    기타 학교 업무 지원 : 학교교육과정 수립 참여, 학부모 대상 교육 강사 등   

수업시수만 줄었을 뿐 소속 학교에서 수업에 당연히 참여한다.  

교사들의 수업과 생활지도를 돕는 역할을 추가로 하게 된다. 수석교사의 열심은 학교 내 동료교사들의 부담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열심과 부담 사이 균형의 선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공개수업을 하고 수업 시연을 하면서 모델이 되어야 한다. 올해도 쓸데없이 시키지도 않은 수업공개를 하면서 부끄러웠다. 교생선생님들께 보여주는 건 그렇다 치고, 다른 선생님들께도 문을 열어두고 초대를 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하니 무슨 배짱이었다 싶다. 부끄러우면 안 해도 되는데, 수석교사는 정기적으로 의무적으로 그걸 해야 한다는 것이니, 영어과 후배 교사들에게 수업을 비공식적으로 부담 없이 보여주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받곤 했지만, 규모나 부담감이 완전히 다를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눠줄 수 있다면, 영광스럽고 유쾌한 기회지만, 문제는 나눠드릴 것이 없다는 것이라서...


연구회 운영을 하는 수석선생님의 초대로 내 개인적인 강연이 시작되었는데... 난 학교 내에서도 공동체나 동아리를 만들거나 참여하는 등의 적극성이나 사교성은 없었다. 학생들과 점심시간에 따로 수업을 하거나, 개별학습코칭을 하는데 집중해왔고, 선생님들과의 모임 등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연구회를 운영하는 것도 내 역량 밖의 일인 것 같다. 아마 기존 연구회에 참여는 할 수 있겠지만 열심히 할 자신도 없다.


자료개발을 하는 건 수업컨텐츠에 대한 거라면 자신있지만, 보편적인 자료나 결론을 정해 놓은 자료개발이라면 역시 내 영역이 아닐 것 같다.


학부모 대상 교육도 개인적으로 초대를 받아서 학교에서도, 교육청과 진학사에서도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는 했는데, 이런 항목들을 살피다 보니 그동안 내가 무자격 강사였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수석교사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교사와 학부모 대상 강연을 한다고 한 건지. 그런데도 혹 수석교사가 된다면 의무적으로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 것 같아 망설여진다. 정해진 주제에 대한 강의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 이제까지 강의는 나만의 스토리를 내 마음대로 구성해서 전했었는데. 그래서 불러 주면 가고, 아니면 말고, 그렇게 자유롭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했는데... 부족한 역량을 억지로 끼워 맞춰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면, 내가 힘든 것보다 강의 듣는 분들께 너무 미안할 것 같다.


5. 선발 절차


6. 선발 단계

1) 1단계 : 단위학교 추천

2) 2단계  

    1차  교육지원청 : 서류심사 + 동료교원 면담 현장 실사  

수업전문성, 업무수행계획, 관계형성능력(동료교원면담) 등을 서류 심사 및 현장 실사를 통해 검증.

수석교사 본연의 역할 수행과 관련된 컨설팅 및 연구대회 실적 등을 포함

  

    2차 시교육청 : 1차 통과자 역량평가(심층면접)  

수석교사로서 필요한 수업역량(40%), 동료교사 지원 역량(30%), 학생지도 역량(30%) 세 영역을 심사하되, 영역별 배점비율은 반드시 준수

※ 수석교사의 직무, 수업기술, 컨설팅 역량과 동료교원 및 학생과의 상호작용, 소통, 갈등조정능력 등을 심층면접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

7. 주요 서류 양식(일부만)

1) 수석교사 업무수행계획서

Ⅰ. 활동목표(단위 학교, 교육지원청 및 시교육청 차원)

Ⅱ. 교과 전문지식 제고 측면

Ⅲ. 수업지도 기획력 향상 측면

Ⅳ. 학습자료 개발 측면

Ⅴ. 동료교사 지원 측면

Ⅵ. 학생 지도 측면(생활지도, 교과‧진로지도)

Ⅶ. 기타 활동

 

2) 수업선도 실적서(최근 3년)  

    수업컨설팅, 강의, 수업공동체 운영 및 활동 실적  

    연구 개발 활동 및 기타 실적  

8. 수석교사의 활동 예시 

2023년 중등수석교사 수업 나눔 한마당(9월 2일 토요일 9:00-12:50)

- 주제별 수석교사의 수업 연구·실천 사례 나눔, 수업 설계 실습 및 수업 자료 제공

- 8월 21일 월요일까지 단위학교에서 신청(저경력교사 적극 권장)

① 개념기반 탐구중심수업 

② 프로젝트 수업

③ 독서토론글쓰기 수업 

④ 맞춤형 개별화 수업

⑤ 에듀테크 활용 수업

수석교사 활동의 극히 일부분인 이 활동 하나로도 그 규모와 전문성에 이미 압도되었다. 자세히 살펴볼수록 희망과 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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