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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ug 07. 2023

입시 선택의 전후 2 - 나의 대입 스토리

<굿 와이프>라는 법정 미드에서 본 장면...

25세 여자가 파티에서 살인사건에 연루된다. 굉음이 나서 올라가 보니 남자가 쓰러져 있었고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쓰러진 남자 옆에 있는 물건이 뭔지 집어보니 총이었다. 그 바람에 총에 지문이 묻었다. 다른 용의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 여자는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탄도 전문가가 발사 각도 등을 설명하며 이 여자가 범인이 아닐 거라고 증언하지만, 검사 측에서 범죄 경력 등을 문제 삼아 증언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어쨌거나 재판은 진행되었고 배심원들의 평결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명확한 유무죄 결과면 평결을 내는 시간이 길지 않았을 텐데, 배심원들의 논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니까 검사 측에서도 초조함에 plea bargain을 시도한다. 유죄를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형량을 협상하는 것이다. 무죄가 나오면 검사 측에서는 비난을 면키 어렵고 다른 용의자를 특정해서 또 기소를 해야 하니까.

피고 입장에서도 무죄를 받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아닐 경우 형량을 줄여 준다는 것이 매력적인 제안으로 인식되면 억울해도 협상에 응할 수 있다. 

검사 측이 제시한 조건은 유죄를 인정하면 10년형으로 감형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재판을 끝까지 해서 유죄 확정되면 35년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형량 자체가 충격적일 정도로 다르다. 미국 법정, 범죄 드라마를 보면 쉽게 확인 가능하다. 형량을 더하여 징역 100년 이상을 선고하기도 한다. 수명에 상관없이 죄의 위중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살아서는 못 나올 거라는 메시지와 함께.

분명 그 여인은 자신이 한 범죄가 아님에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가 살아 있다면 무죄로 집에 가겠지만, 혹 유죄 판결을 받으면 60세가 되어서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엄마가 그렇게 나올 때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슬픈 분위기에서 여자는 형량 협상을 한다. 10년 형이면 35세가 되어 어떻게든 인생 2 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죄판결로 집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돌이킬 수 없으니.

물론 재심 청구는 할 수 있겠지만, 현 재판보다 훨씬 강력하고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면 뒤집을 수 없을 것이고,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질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니 형량 협상은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그나마 덜 억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협량 협상을 하면 배심원들의 평결은 필요 없다. 법원에서는 배심원들의 해산을 통보한다. 배심원 대표가 이제 막 평결을 결정하여 적은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퇴장한다. 카메라가 이윽고 그곳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종이에 쓰여진 평결은 “NOT GUILTY”였다. 

소름이 돋는 충격이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으면 그냥 집에 가는 것이었는데. 

결과만 가지고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무 안타까운 결말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일이라서 더 와닿았다.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보편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이 에피소드와 한 똘아이(누군지 아시겠죠?)의 썰을 수시원서 쓰기 직전의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다가 반응이 좋아서 고1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무서운 이야기해 준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귀신 얘기해 주는 줄 알고 불을 끄고 커튼을 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내 알게 된다. 귀신 얘기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였다는 것을.


"비평준화 지역의 중 3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제안을 받아요. 스카이 대학 진학하면 4년 등록금을 다 대주겠다는 파격제안이었지요. 그 학생은 대학등록금을 집에서 댈 수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어요. 여러분이라면 그럼에도 A 등급 학교를 지원할 건가요? 아니면 스카웃 제안을 받은 C 등급 학교에 가서 열심히 하려고 다짐할 건가요?

그 학생이 고3이 되었어요. 학력고사는 시험 후 대학 지원이 아니라 평소 나오던 성적을 고려해서 대학 지원 후 그 대학에 가서 학력고사를 응시해서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시스템이었어요. 스카이 대학에 불합격했을 경우 후기대학도 지원할 수 있지만 스카이는 후기모집이 없으므로 보통은 재수를 선택했겠지요. 

평소 나오던 성적으로 서울대는 80% 이상 합격 가능권, 연고대는 95% 이상 합격 가능권이라고 예상되었어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이 학생이 가고 싶은 대학이 서울대라면, 이 상황이 앞에서 얘기한 미드의 장면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연고대를 지원하면 원하는 대학은 아니지만 대학 합격과 4년 장학금을 모두 받을 수 있고, 서울대를 지원하여 합격했을 때는 대학 합격과 4년 장학금을 모두 받을 수 있지만, 불합격하면 대학도 날리고 장학금도 날리게 되니까요. 학교에서는 재수는 말고 고3 현역으로 합격했을 때만 장학금을 약속했었거든요.

미드에서 여자가 형량 협상을 하면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는 것이 연고대 선택이라면, 협상 안 하고 기다리다가 무죄일 경우는 서울대 합격해서 장학금까지 받지만, 유죄를 받으면 대학도 떨어지고 장학금도 날리는 상황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그 학생은 이대로 서울대를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며 비장하게 서울대를 선택하고는 장렬하게 불합격했다고 합니다. 결국 대학도 날리고, 장학금도 날렸죠.

그 학생이 좌절감을 딛고 다시 재수를 해요. 이번엔 성적이 확실히 더 올라서 서울대가 95% 정도 합격가능권이었는데... 재수를 하면 원래 선택에 더 소심해지거든요. 이번에는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게다가 그 학생은 이번에 떨어지면 군대를 가야 했기 때문에, 그래서 절대로 떨어지면 안 되는 상황이어서 고민이 많았던 거죠.

집안 형편은 여전히 어려워서, 연고대 진학은 옵션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주변의 대학을 살펴보니 경북대는 합격 가능성이 200%였지요. 얼마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냐의 문제였죠.

여러분들이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이 학생은 너무 소심해져서 결국 경북대를 선택했고, 원서 쓰고 나서는 아침에 샤워할 때마다 울었다고 해요.  물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어요.

그러다가 궁금해서 그 성적으로 서울대 냈으면 어땠을지 찾아봤는데, 서울대 합격하고도 남는 성적이었던 거였죠."


여기까지 얘기하면 학생들이 아우성이다. 자기들이 더 아쉬워서. 

학생들의 반응이 잦아들면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제가 여기 있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설마설마하다가 그 똘아이가 나였음을 알고는 격한 반응을 보인다.

교육특구 여고에서는 아이들이 내게 이렇게까지 분노하기도 했다.

“선생님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마세요. 남자가 쪼잔하게 그게 뭐예요?”

이미 그 똘아이의 선택에 감정이입하듯 그렇게 아쉬워했다.


그래서 내가 이랬다.

“제 아내가 과 선배 여동생입니다. 제가 서울대 갔으면 못 만났겠죠.”


그러니가 애들은 이랬다.

“서울대 갔으면 더 좋은 여자 만났겠죠.”


순간, 그럴 수도 있을까 하다가... 이렇게 말해줬다.

“전 지금 제 아내를 두고 그 어떤 다른 가능성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진정시킨 후에 이렇게 마무리한다.


"미드에서 여자가 협상을 하고 혹 배심원의 평결이 궁금하다고 쓰레기통을 뒤져보면 어떨까요? 절대 안 되는 거죠. 거기서 무죄 평결을 보고 나면 자신의 선택의 무게로 평생을 얼마나 괴로워하겠어요.

저도 경북대 합격하고, 삼수나 반수할 거 아니면 서울대 (영어교육과) 합격했겠는지 찾아보면 안 되는 거였죠.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거의 1년간 헤맸어요. 선택에 대해 자책하면서.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죠. 이미 선택한 길인데, 다른 길은 없는데... 그래서 그때부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했어요. 단 하나의 후회도 남기지 않을 각오로요. 

그리고 아내를 만나고, 소중한 두 딸을 얻게 되었죠. 저는 제 아내와 딸들을 서울대하고 절대 바꾸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제까지 만났던 제자들하고도 절대 바꿀 생각이 없어요. 제가 서울대 갔으면 여러분들도 못 만났을 거니까.

이제 그만 저를 향한 불쌍한 눈빛을 거두어주세요. 저는 너무 행복해요.


저의 삶을 통해 전하고 싶은 두 가지 결론은...

첫째, 선택하기 전에는 신중하게 최선을 다해 고민해야 하지만, 선택한 후에는 절대로 뒤돌아 보지 말 것. 

선택 자체에 옳고 틀린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 후에는 그 선택이 옳도록 최선과 진심을 다하면 되는 거예요. 바뀌지 않을 것에 집착하지 말고, 이제부터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거죠.


수시원서 쓰기 전에는 신중하게 고민해야겠죠. 그러나 원서를 내고 나서는 뒤돌아 보면 안 됩니다. 경쟁률 찾아보고 후회하고, 먼저 수시 합격한 애들 막연하게 부러워하고 그럴 이유가 없는 거죠. 원서 내고 나서 벌써 그 대학캠퍼스를 거니는 모습도 상상하지 마세요. 다른 선택을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하지 말구요. 재수할 거 아니면 이제부터는 내가 바꿀 수 있는 수능에 시선을 고정하는 거예요. 수능 최저를 맞추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에.


둘째, 오늘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한 걸음만 더”

기적을 이루는 것은 결정적인 한 방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꾸준한 축적입니다.

고3 때 후회하는 건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었는데 안 했던 사소한 거예요.

제가 서울대를 간절히 원했다면 합격 가능성이 95%만으로는 부족했죠. 120% 이상 올렸어야 했죠. 결과적으로 서울대를 갈 성적도 나왔지만, 선택할 용기를 내기에 충분한 실력에 이르지 못한 것이니 핑계 댈 수 없는 거예요. 

하루하루 한 걸음은 큰 의미가 없는 사소한 몸짓으로 보이겠지만, 그게 모여서 훗날 기적의 근거가 됩니다."


간접경험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특히 교사의 삶의 체험은 학생들에게 귀중한 깨달음과 배움이 된다. 아이들은 교사에 감정이입하면서 그 삶을 한 번 스스로 체험한 것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성공사례도 동기유발이 되겠지만, 오히려 부족한 모습과 시행착오가 아이들에게는 더 큰 희망과 깨달음을 선물한다. 

아이들은 내 덕분에 2회차 인생을 사는 것과 같은 희망을 줄 수도 있는 거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는 후회에 가까운 생각보다, 선택 이후 할 수 있는 사소한 것부터 집중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삶의 지혜다. 

참고로 고등학교에서 약속받았고 교만한 마음으로 받을 거라고 확신했던 4년 장학금은 날렸지만, 서울대 떨어지고 겸손해진 마음으로 경북대 4년 전액 장학금(사범대 차석)을 받았다. 

남들은 실패라고 말하지만, 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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