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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ug 09. 2023

창원에서 1정 연수 강의를 마치고

<두 번째 초대>

두 번째 반복되니 새로움이나 두려움에 가까운 설렘은 덜했지만 여전히 내게는 정말 중요한 일정이었다. 

작년에 했던 내용에 약간의 보강과 수정은 있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비슷했다. 소통과 교감의 교육, 이해중심 영어수업, 멘토링 학습코칭...

주제는 멘토링 학습코칭이었지만 2시간으로는 교사로서의 준비와 마음가짐, 소통과 교감의 방법, 자기주도학습의 원리, 이해중심 영어수업 컨텐츠 구성만으로 꽉꽉 채웠고, 영어멘토링은 요약정리해서 전달해 드렸다. 앞의 내용 없이 전달한다면 자발적인 멘토링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며, 원리나 준비 없이 너무 막연한 적용이 되었을 것이므로.. 그렇다고 진도만 신경 쓴다고 앞의 내용을 대충 전달했다면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서 너무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못다 한 이야기는 노션 페이지에 링크를 연결해서 선물처럼 드렸다.



<강의 시작, 뻔뻔한 자기 소개>

시작할 때는 늘 그랬듯이 1타강사 버전으로 소개를 했다. 겸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뻔뻔함으로.. 선생님들의 교직생활은 저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과장광고부터, 시간 순삭 해드리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까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현직교사 버전으로 소개를 했다. 제가 뭐라고 이 자리에 서서 여러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고, 부족하고 재미없겠지만 끝까지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이러면 기대가 되겠냐고 하면서.. 약간의  bluffing도 필요할 것이라고 하면서.


솔직히 교사들은 준비한 것이 많아도 후자처럼 소개를 한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 차린 것 없다는 겸양... 그러나 그게 수업이나 강의를 듣는 이들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말이다.

나도 솔직한 심정은 현직교사 버전이어야 했지만, 뻔뻔함과 연기의 가면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 멘트를 염두에 두면서 강의 준비를 하면 강의도 훨씬 더 좋아지는 걸 느낀다. 자기최면효과이기도 하다. 말한 대로 바라는 대로 그렇게 다짐한 대로 되는 것이니 학생들 앞에서도 당당함을 연기할 필요가 있고, 이내 그 연기는 교사의 실제 삶이 된다.


어제 한 반에서는 학원버전소개를 하자마자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이런 리액션이면 이미 성공일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두 시간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당부 : 강의는 하이라이트일 뿐>

강의 시작 전 나도 아직 완전하게 이루지 못한 목표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니, 출발 지점부터 망설임이 없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이런 당부를 했다.

"저도 퇴근하다가 그냥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롭기도 했고, 학부모 민원으로 우울하고 불안한 증세가 오래 지속되기도 했고, 학생에게 상처받아 쓰러지기도 했고, 교사로서 무력해서 그만 둘 생각도 했었어요. 여러 선생님들과 비슷한 아픔을 겪어 왔죠. 그러나 이제부터 제가 할 얘기는 제 교직 생활의 하이라이트일 뿐이에요. 인스타에 잘 나온 사진만, 때로는 필터 적용해서 올리는 것처럼, 저의 이야기도 그런 것이니 감안해서 들으셔야 해요. 

어쨌거나 제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각자에게 맞는 옷을 입으시고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시면 좋겠어요."



<인간미, 부족함의 역설>

선생님들은 나의 열심과 교육적 성과에도 반응을 해주셨지만, 수업 시간에 기타 치면서 망가진 얘기, 딸들이 아빠랑 영어공부 안 하려고 도망 다니다가 둘째는 거리를 유지해달라면서 줌 온라인 수업을 요구했던 얘기, 책 출판해서 망했던 얘기, 그와 관련된 예문 등을 얘기할 때 더 호감 있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인간미가 중요하다는 걸 또 실감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게 AI 시대에 인간의 경쟁력이라고 얘기했다. 인간다움은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연약함을 안고 늘 완전을 추구할 수 있는 희망의 여지가 있는 여정이니까... 낭비도 경쟁력이라고. 낭비에서 낭만이 있는 거고, 누군가에게 시간, 돈,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만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거고, 교사가 시간낭비처럼 준비한 수업으로 아이들의 이해도는 높아질 거라고...



<옆반 강사님과의 인연, 연수 분위기>

옆 반에서 강의를 교차해서 동시에 진행하는 선생님을 강의 전에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평가 특히 모의고사와 수능문항의 전문가셨다. 소개를 듣는 순간 난 그 전문성에 기가 팍 죽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난 전문성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했다.


강의할 때 선생님들께 전문적인 이야기는 전문가 쌤과 함께 하고 비전문가인 나하고는 그냥 재미있게 놀자고 농담처럼 말씀드렸다. 그야말로 낭비 같은 시간이었는데, 그런데도 모두가 몰입하고 집중해 주셨다. 감격스러울 정도로... 

확실히 가르치는 일은 혼자 떠들어도 상호작용으로 가르치는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고 전달의 깊이도 변한다. 상호 간의 만족감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 

교감이 무엇인지, 어제 처음 만난 60여 명의 선생님들께 그 의미를 규정하며 실감했다. 마치 내겐 선물과 같았다.

작년에 이곳에서 느꼈던 순수한 열정을 또 마주했다. 특히 한 반에서는 엄청난 리액션을 보여주어 마치 내가 드립의 달인이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강의를 동시에 진행했던 전문가 선생님이 내가 먼저 강의한 반에 들어갔다가 선생님들이 전 시간에 웃느라고 지쳐서 강의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한다는 기분 좋은 농담을 던지셨다. 초면에 이렇게 과한 칭찬 같은 농담을 해주시다니 감사했다. 그래서 가진 편견(?)은 아니고, 인격적으로나, 학생들에 대한 열정면으로나, 전문성 면에서 너무 좋은 분이셔서, 대구에 교사 연수 강의 추천할 기회가 있으면 초청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첫 시간의 위기>

그런데 어제 첫 시간부터 내가 너무 신나고 들떠서 조절이 안 되었다. 내가 신나고 흥분하면 목소리도 커지고 말이 빨라진다. 

난 수업하는 걸 좋아하는데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아프다. 특히 수업환경에서는 마이크 없이는 한 시간도 수업할 수가 없다. 음성이 높아지거나 말이 빠르면 목이 더 아픈데,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끝나고 나면 무리했다는 걸 자각하면서 후회한다. 

어쨌거나 육성으로 하는 것을 마이크가 온전히 다 담아내지 못하니 난 늘 마이크로 수업하면서 미안한 마음이다.

어제 첫 시간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고, 마이크의 소리는 불편했을 텐데, 수강하시던 선생님 한 분이 내 목소리가 충분히 큰데 마이크 소리가 높아서 귀가 아프다고 일종의 민원을 제기하셨다. 목이 아파서 마이크 없이는 수업이 안 되고, 그래서 마이크는 목소리를 올리는 기능보다 목을 지키려는 노력이라는 핑계나 변명을 구구절절 하지 않고, 바로 급하게 사과드리고 마이크 볼륨을 조정했다. 다음 시간에는 내가 챙겨간 마이크 말고, 강의실에 세팅된 핸드마이크를 들고 강의를 마무리했다.


그게 내게는 일종의 브레이크가 되었다. 

어제 2시간을 두 반 강의하고 나서 지금도 목상태가 메롱인데, 어제 그 브레이크가 없었다면 오늘도 3시간 교사연수 강의를 앞두고 정말 큰일 날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도 내가 말이 빨라지면 "워-워-"해 달라고 주문을 해 놓기도 한다.

그 이후에 그 반에서는 내가 좀 위축되기는 했다. 더 이상 신나는 느낌으로는 할 수 없었지만, 준비한 내용을 끝까지 잘 전달하기는 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지나고 나니 정말 감사했다. 



<후배 선생님들께 전하는 격려>

강의를 준비하면서 사기가 떨어졌을 후배교사들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명예나, 돈이나, 인정이나, 대우를 바라고 교사하는 것이 아니잖냐고. 우리가 감정노동을 감당하고, 민원에 시달리고, 학생들에게도 상처받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학생들을 만나면서 치러야 할 대가이고 숙명이라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냐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교육의 효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아도, 우리가 아니면 누가 아이들의 꿈과 행복을 지키겠냐고, 퇴직할 때까지 꼭 살아남으시라고 비장한 응원의 메시지를 건넸다. 물론 행복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받기도 하니, 나처럼 빨리 늙어서 그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순간에 단 하나의 행복도 놓치지 마시라고 축복해 드렸다. 


어제 그 연수원에 다른 교과 선생님들과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많았다. 그 젊음을 마주하고 바라보며, 선배 교사로서 지켜줄 수도 없고,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무력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교사가 되기로 한 이상 아픔과 상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니, 아프겠지만 너무 아파하지 말고, 상처를 받겠지만 빨리 회복될 수 있기를... 무엇보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면서 아픔과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를, 아픔과 상처보다 학생들과 나누는 행복이 훨씬 더 커서 아픔과 상처의 존재가 미약해지기를.. 그저 마음으로 응원하며 기도하고 싶었다. 



<마무리 소감>

이런 강연을 계속해도 난 여전히 얼떨떨하다. 그분들  앞에 서있던 것 자체가 내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초대해 주신 연구사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도 전해드렸다.

작년보다 더 더웠고, 한 살 더 먹었고, 오가는 과정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벌써 강연의 감격과 행복감에 다 잊었다. 아니 잊어야 한다고 되뇌었다. 그래야 혹 다음 번 초대가 있을 때 망설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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