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최소성취수준 보장 지도가 의무화되면서 기초학력수준 미도달 학생들을 방과 후에 지도해야 하는데, 학생 맞춤형 수업을 하기 힘듭니다(학교의 현실적 여건, 교사의 역량). 기초학력수준 미도달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답변
유감스럽게도 제 대답은 “노답”입니다. 이 경력이 되도록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이 수준 관계없이 의지력이 없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입니다. 딸들조차도 제 의도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제 역량의 부족도 있겠지만, 오랜 경력으로 느끼는 건 제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학생 각자의 시계와 성장의 나이테가 다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중학교에 와 보니 더 심각하더라구요. 일반고에 진학할 마음도 전혀 영어를 학습할 동기도 느끼지 못하고, 한 번도 영어를 제대로 시작한 적도 없는 학생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건, 가르치기 전에 공부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더라구요. 그 자리에 나아온다면 학습의 의지보다 착한 학생이어서인 경우가 많아서 가슴 아픈 일이었구요.
기초학력수준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출발점은 존중해 줘야 배움이 일어나는데, 기초학력수준이라고 하면서도 최소한의 기준은 포기하지 않은 채 그 기준을 넘어서라고 하니, 결국 성장을 이루더라도 정해진 기한 내에 못 하는 경우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지요.
지금으로서는 최소성취수준의 기준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것 같아요. 그래야 학생들 개별수준을 존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니까요. 속도나 수준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야 그나마 학생들이 용기를 냅니다.
실은 현실적으로 의지는 있는데 방향을 못 잡는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잡아주는 것이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건 맞는데 행정적으로 그렇게 추진하기가 어렵죠.
일단 힘들다는 것, 의도한 교육적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부터 받아들여야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준에 당장 못 미쳐도 최대한 학생 수준에 맞춰주려는 노력 외에 저도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지난번 말씀드린 대로 영어를 전혀 안 해도 다른 과목으로 일반고 진학이 가능하니까, 고등학교에서도 기초학력수준 미달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늘 상처받는 무력감에서 도망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기도 해요.
기초학생이 아니라도 주 몇 회의 만남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면, 결국 실질적인 기초수준 향상은 수업 외의 시간에 달린 것 같아요. 그러나 스스로 해보려는 노력의 기억이 없는 경우도 많으니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인 습관형성에 대한 노력이 학생들의 영어기본실력향상 이상으로 중요한 상황인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의 사소한 노력부터, 사소한 성취부터 기다려줄 마음이 있지만, 행정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당장의 성과를 요구한다면, 우린 늘 고민 속에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는 늘 저의 열정은 아이들의 열정을 비춰주는 거울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결국 교사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한계를 느끼는 거죠. 그러나 한편으로 교육의 더딘 효과를 생각하면 우리의 애씀은 하나도 의미 없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버티는지도 몰라요.
적어도 우리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내민 손을 못 보고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는 거지만, 우리의 현실적인 고민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은 아이들의 손을 억지로 잡아끄는 공허함과 무력감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그러나 그조차도 의미 없지는 않아요.
우리가 먼저 내민 손이 어떤 교육적 효과를 장담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도, 그 아이에게는 한 어른의 인격적이고 개별적인 관심의 손길이 닿고 있는 것이니까요.
학습코칭은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고, 넘어져 있는 아이들과 함께 아파하면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며 삶의 사소한 의미부터 찾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교육의 완성은 교사를 떠나서야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그저 우리의 소신과 가치에 맞게 한 영혼을 만나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 무력감을 학생과 함께 끌어안으며 기다려주는 것...
결국 경력이 많은 제게서 어떤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정답을 찾지 못한 건 실망스러우시겠지만, 눈에 드러나지 않아도 선생님의 지금 노력이 틀렸거나,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며, 애쓰시는 것만큼 정말 중요하고 숭고한 일을 하고 계신다는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무한한 교직경력에서의 무한한 성장을 설렘으로 기대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