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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ug 22. 2023

(질문) 기초학력수준 미도달 학생 지도방법?

질문

최소성취수준 보장 지도가 의무화되면서 기초학력수준 미도달 학생들을 방과 후에 지도해야 하는데, 학생 맞춤형 수업을 하기 힘듭니다(학교의 현실적 여건, 교사의 역량). 기초학력수준 미도달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답변

유감스럽게도 제 대답은 “노답”입니다. 이 경력이 되도록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이 수준 관계없이 의지력이 없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입니다. 딸들조차도 제 의도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제 역량의 부족도 있겠지만, 오랜 경력으로 느끼는 건 제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학생 각자의 시계와 성장의 나이테가 다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중학교에 와 보니 더 심각하더라구요. 일반고에 진학할 마음도 전혀 영어를 학습할 동기도 느끼지 못하고, 한 번도 영어를 제대로 시작한 적도 없는 학생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건, 가르치기 전에 공부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더라구요. 그 자리에 나아온다면 학습의 의지보다 착한 학생이어서인 경우가 많아서 가슴 아픈 일이었구요.

기초학력수준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출발점은 존중해 줘야 배움이 일어나는데, 기초학력수준이라고 하면서도 최소한의 기준은 포기하지 않은 채 그 기준을 넘어서라고 하니, 결국 성장을 이루더라도 정해진 기한 내에 못 하는 경우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지요.

지금으로서는 최소성취수준의 기준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것 같아요. 그래야 학생들 개별수준을 존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니까요. 속도나 수준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야 그나마 학생들이 용기를 냅니다.

실은 현실적으로 의지는 있는데 방향을 못 잡는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잡아주는 것이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건 맞는데 행정적으로 그렇게 추진하기가 어렵죠.

일단 힘들다는 것, 의도한 교육적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부터 받아들여야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준에 당장 못 미쳐도 최대한 학생 수준에 맞춰주려는 노력 외에 저도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지난번 말씀드린 대로 영어를 전혀 안 해도 다른 과목으로 일반고 진학이 가능하니까, 고등학교에서도 기초학력수준 미달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늘 상처받는 무력감에서 도망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기도 해요.

 

기초학생이 아니라도 주 몇 회의 만남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면, 결국 실질적인 기초수준 향상은 수업 외의 시간에 달린 것 같아요. 그러나 스스로 해보려는 노력의 기억이 없는 경우도 많으니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인 습관형성에 대한 노력이 학생들의 영어기본실력향상 이상으로 중요한 상황인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의 사소한 노력부터, 사소한 성취부터 기다려줄 마음이 있지만, 행정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당장의 성과를 요구한다면, 우린 늘 고민 속에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는 늘 저의 열정은 아이들의 열정을 비춰주는 거울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결국 교사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한계를 느끼는 거죠. 그러나 한편으로 교육의 더딘 효과를 생각하면 우리의 애씀은 하나도 의미 없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버티는지도 몰라요. 

 

적어도 우리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내민 손을 못 보고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는 거지만, 우리의 현실적인 고민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은 아이들의 손을 억지로 잡아끄는 공허함과 무력감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그러나 그조차도 의미 없지는 않아요.

우리가 먼저 내민 손이 어떤 교육적 효과를 장담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도, 그 아이에게는 한 어른의 인격적이고 개별적인 관심의 손길이 닿고 있는 것이니까요.

학습코칭은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고, 넘어져 있는 아이들과 함께 아파하면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며 삶의 사소한 의미부터 찾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교육의 완성은 교사를 떠나서야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그저 우리의 소신과 가치에 맞게 한 영혼을 만나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 무력감을 학생과 함께 끌어안으며 기다려주는 것...

 

결국 경력이 많은 제게서 어떤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정답을 찾지 못한 건 실망스러우시겠지만, 눈에 드러나지 않아도 선생님의 지금 노력이 틀렸거나,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며, 애쓰시는 것만큼 정말 중요하고 숭고한 일을 하고 계신다는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무한한 교직경력에서의 무한한 성장을 설렘으로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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