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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ug 31. 2023

절실함으로 마주하는 삶(Feat. 청춘야구단을 보고)

<청춘 야구단 : 아직은 낫아웃 - 제목이 주는 의미>

최강야구는 이미 성취한 선수들의 나이와의 싸움이지만, 청춘야구단은 성취의 기억이 없는 선수들의 냉혹한 프로의 벽 자체에 도전하는 절실한 노력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프로팀에서 방출되었거나,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야구를 포기할 수 없는 독립리그 선수들이 주인공이다. 회비를 내면서 야구를 해야 하고,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하면서 꿈을 이어가지만, 독립리그에서도 오래 뛰는 선수가 없고, 혹 프로야구에 가게 되었어도 자리를 잡는 경우가 아직까지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아직은 낫아웃"

분명 삼진을 당했지만 포수가 공을 바로 잡지 못하면 아직은 아웃확정이 아니어서 1루로 뛸 수 있다. 대부분은 포수가 놓친 공을 바로 1루에 던져서 아웃을 확정짓지만, 간혹 공이 멀리 빠질 경우에 운 좋게 살아남기도 한다. 선수들은 이미 좌절을 겪고, 실패가 예정된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뛰다 보면 살 수도 있다는 좌절 속 작은 희망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낭만적인 결과를 기대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만 확인하게 되는, 예능이 아닌 다큐였다.

 

<부모로서 꿈을 어디까지 인정해 줘야 하는가?>

프로그램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예전에 함께 동학년을 했던 선배 교사 가족 인터뷰가 나왔기 때문이다. 직업군인을 하다가 적지 않은 나이에 비선출(비선수출신)로 프로선수에 도전하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응원하는 선배 선생님이 멋져 보였다. 

 

부모로서 어디까지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을 것인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 딸은 각각 음악과 댄스를 하고 싶어 했지만 난 현실적인 응원과 지지를 포기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딸들에게 그런 전적인 응원을 보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큰 딸이 베이스기타를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독립해서 너가 알아서 하든지 하라고, 너의 음악 커리어에 투자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선언했었다. 물론 한 걸음 양보해서 고2 때 방과후형 위탁교육까지 허락하긴 했지만, 따뜻하게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했다. 

둘째 딸은 그런 아빠의 단호한 입장을 미리 감지했는지, 실용댄스를 전공하겠다는 말을 내게 직접 꺼낸 적은 없다. 그저 대학 진학 후 기회를 보겠다고 타협안을 먼저 제시했다.

큰딸이 한 학기 반 만에 음악 전공자들 사이에서 위탁교육을 그만두고 돌아왔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음악도, 공부도 다 재능이 필요한 것 같은데, 음악은 공부에 비해 자리 잡을 수 있는 문이 너무 좁고, 재능이 너무 뛰어난 사람들도 많고, 자신의 노력과 별개로 대중들의 마음에 들어야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으니 노력만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을 느꼈다고. 

그래도 딸은 돌아올 곳이 있었다. 공부와 병행하면서 기회를 보았기 때문에 지금은 공대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공대생으로서도 취미를 다소 넘어서는 음악활동을 병행하고는 있지만...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현실도 걱정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선수생활에만 몰입하여 수업도 잘 참여하지 못하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라서 부상이나 중도 포기로 학업으로 돌아와도 뒤늦게 진로를 폭넓게 고민하기에는 선수로 살아남는 것 못지않게 현실의 벽이 높다.

야구부가 있던 고등학교 교사를 할 때 만났던 학생 중에 국가대표도 하고 프로선수로서 성공한 제자도 있었지만(굳이 누군지 물으신다면 꽃범호로 불렸던 이범호 선수), 초등학교부터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하는 것이 두려워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남아 있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정말 야구를 하고 싶은 간절함이 아니라, 그냥 해왔기 때문에 그 자리에 남게 되는 관성 같은 자리지킴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중에 감독과 코치가 선수들의 절실함에 대해 아쉬워할 때 난 선수들 입장도 좀 이해가 되었다.

 

어쨌거나 자녀의 꿈을 어디까지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현실과 이상의 갭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 건지... 너무 어려운 과제다.

 

<성취의 기억, 그 중요성>

프로야구 레전드 선수 중 한 명이었던 해설위원이 독립리그 야구선수인 아들에 대해 이런 인터뷰를 했다.

"청춘야구단에서 야구를 돋보이게 잘해서 프로에 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적당한 노력에서 벗어나서 처절한 노력을 해보라는 거죠. 야구가 아닌 것으로 다음에 뭘 할 때도 적당한 노력을 할까 봐.

야구에서 적당한 노력을 하고 자기가 적성에 안 맞아서 다른 일을 했을 때 큰 노력을 한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야구로 성공하지 않아도 그 노력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결과에 관계없이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 이상의 노력을 쏟을 수 있을 거니까.

명문대를 간다고 취업이 보장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취업이 잘 되는 이유는 성취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뭘 해봐도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구로 성공한 아버지의 치열한 노력에 대한 강조는 틀리지 않지만, 때로는 노력만으로 안 될 수도 있다는 것도 함께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노력도 재능이며, 성취를 하지 못하는 것이 재능의 부족인지, 노력의 부족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에서 보통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꾸준한 노력에 대한 저항감이 없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과정에서부터 예견된 성취를 이뤄가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경우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부터 버거워하기도 한다.

언젠가 영어 1등급을 목표로 이전과는 다른 간절함으로 모였던 고3 학생들에게 그 절실함에 호소하며 1주일 동안 단어유인물을 하루에 세 번 이상 읽어오라는 과제를 낸 적이 있었다. 일주일 후에 하루에 세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번도 읽지 않은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노력을 해서 공부를 잘하는 거지만, 어찌 보면 공부를 잘하니까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다. 물론 그런 학생들도 습관형성의 치열한 과정을 거쳐 문턱을 넘었을 것이지만 성취의 기억은 이미 몸에 새겨져서 비장한 각오로 의지를 끌어모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노력이 가능한 것이다. 

 

둘째 딸이 대입에 대한 목표를 달성하려 좀 늦은 듯한 시기에 치열한 노력을 시작했는데, 늘 힘들었던 건 성취의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의고사 치를 때마다 내게 늘 가능하냐고 물었고, 가능하다는 내 대답에 어째서 가능한 것이냐고 따지듯이 물은 적도 많았다. 그러다 고3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목표에 가까운 성취를 이루었고, 수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재수를 결단한 것은 그 성취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재수하면서도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딸에게 성적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보다, 고3 때 아직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결국 올라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지내는 게 더 마음이 편하지 않냐고 물으니, 절대 아니라고 했다. 성취의 기억이 부담감도 주지만 더 큰 희망, 확신, 지속할 동기유발이 된다고 했다.

 

<멘탈 코칭의 중요성>

그래서 중요한 것은 멘탈 코칭이다. 결과로 보상받지 않는 과정의 노력에 대해서 사소한 성취의 기억을 일깨워주면서 지속할 수 있도록 확신을 주며 응원하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교육현장에서 늘 느낀다. 딸이 모의고사 칠 때마다 난 늘 멘탈코칭을 하며 희망을 얘기했다.

프로그램에서도 김병현감독과 코치들이 일대일 멘토링과 맞춤식 코칭을 해준다. 일대일 상담은 일종의 멘탈 코칭이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그런 인격적이고 개별적인 상담이 절실한 것이었다. 

 

코치들은 선수들의 절실함과 아픔을 아니까 정말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면서도, 현실을 바탕으로 방출을 결정한다. 오히려 방출을 결정해 주는 것이 희망고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정근우선수는 키가 작아서 고졸 후 드래프트에 선발되지 않아 대학진학을 했었다. 그런 그가 최고의 2루수로 도약했던 것은 악바리 근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신체적 불리함을 넘어서는 재능도 한몫했을 것이다. 물론 김성근 감독을 만나 지옥의 펑고를 경험한 것도 그의 동물적 감각의 수비에 기여한 바는 있을 것이다. 정근우 선수가 인터뷰 때 눈이 기억하고, 몸이 기억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독립리그 선수들은 지옥의 펑고 수비 훈련으로 눈에 띄게 발전했다. 

아픔을 겪었다는 이유로 정근우는 코치로서 선수들에게 이미 삶으로 코칭을 하고 있었다.

<습관의 벽 넘어서기>

야구는 습관과의 싸움이다. 기본기를 한 번 잘못 들이면 고치기가 너무 어렵다. 머리로는 의식해도 실전에서는 원래 습관이 나오게 되니까. 그래서 훈련을 반복하는 거다. 재미로만 할 수 있는 과정은 아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도록 끊임없이 반복해서 몸에 익어도 또 반복한다. 그래야 몸이 기억하는 것 이상의 천재적이고 예술적인 동작이 나오기도 하는 거다.

 

<꿈과 현실의 그 어딘가>

선수들은 절실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늘 포기와 꿈을 향한 도전의 그 어딘가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아 보였다. 혹자는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혹 그 길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로선수들은 빙산의 일각이라서, 빙산의 아랫부분의 치열함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못할 수 있는 거였다. 프로에 입성했다고 해서 늘 주전 자리를 보존할 수 없고, 부상이나 성적 부진으로 언제든지 방출될 수 있는 거였다.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한 어른의 책임>

오버페이스를 한 한기주선수의 혹사 이야기도 가슴 아팠다. 성취에 급급한 어른들과 선수 자신이 그 균형을 잡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젊을 때는 몸이 망가지는 걸 잘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그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 아이들이 학원을 과도하게 다니는 것도 일종의 혹사일 수도 있다. 어린 나이니까 젊으니까 감당하는 것 같은 착시일 수도 있다. 몸이 아프지 않으면 마음이 아플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혹사가 아니라도 절실한 선수들은 자신의 능력을 더 발휘하고 증명하려는 마음에 더 힘이 들어가는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되었다. 

피아노 전공한 아내에게 처음에 힘을 빼고 피아노를 치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성취나 교육효과는 의도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지, 그 성과를 빨리 증명하려 하는 것은 늘 부작용을 일으킨다. 아이들의 그 조급함에 어른들의 책임이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봐야 한다.

<결국은 간절함> 

여러 회 방출의 과정 끝에 살아남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구단 스카우터들이 모여 트라이아웃을 하는데, 그중 한 스카우터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중학교부터 독립 리그까지 선수들을 다 지켜보고 있는데, 실력은 한 끗 차이일 뿐 중요한 건 간절한 태도다. 2군에서 1군에 진입하는 것도 그렇다. 늘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간절함을 강조한다. 간절하지 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교육의 효과도 더디기 때문이다. 

 

절실함은 정말 원하고 있는가의 동의어라는 생각이 든다. 잘 하지 못할 거라는 핑계 말고 정말 그걸 원하고 있는 건지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닌지. 어차피 쉽게 이룰 수 있는 것도 절실함과 관계가 없는 거다. 

 

이 프로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그 절실함과 거기서 나오는 최선을 다하는 태도였다. 루틴과 일상에 묻혀서 기계적으로 하지 않는... 

그건 공부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각자의 경쟁력으로 갖추어야 하는 태도이기도 하고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나름 좋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프로세계를 꿈꾸면서도 프로세계의 냉정함에 겁나서 열심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말 끝까지 다 쥐어짜내듯 노력했는데도 안 되면, 그건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인일 수 있으니, 마지막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막연한 두려움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할 때까지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야 미련 없이 move on할 수도 있을 것이니.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선수들은 이후의 프로 진출 여부와 상관없이 이후 커리어가 어떻게 되든 그들의 삶에 후회 없는 도전의 역사를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녹화되고 기록되지 않아도 우리의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한 기억은 나이가 더 들어버린 자신과의 당당한 만남을 약속할 것 같다. 자녀들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덤인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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