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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Sep 01. 2023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겠다는 선택

지인의 아들이 아직 많이 어린데 영재다.

이제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집중력과 절제력은 보통 중고등학교생들보다도 뛰어난 듯하다. 

한글에 이어 영어 읽기도 거의 스스로 깨치고 있다. 

지인은 걱정이 많다. 이 아이가 더 높은 곳에 올라서도록 부모로서 서포트해야 한다는 걱정보다, 어떻게 해야 행복할 것인지에 대해서.

혹 남들처럼 같은 시기에 학교에 다니면 지적 호기심 충족이 안 되어 너무 불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한다.

 

그 지인과 고민을 나누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다.

우리 각자에게 다른 액수의 돈이 주어져 있다는 상상. 전체적으로 주어진 돈은 물론 매번 입금되는 돈도 다르다는 상상. 

그렇다고 그 돈을 다 쓸 필요도 없고 그런 부담을 가질 것도 없다. 특히 쓰지 않고 기한이 지나면 회수된다는 상황과 조건이 더해지면 반드시 다 써야겠다고 조급해 할 수도 있겠지만.

부모로서는 가진 것을 활용하도록 서포트하지 않으면 부모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하기도 쉽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그냥 쓰고 싶은 만큼만 쓰면 된다. 여유분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

만약 100% 다 쓰는데 익숙해진다면, 그 다음 상황에서도 늘 긴장과 부담의 연속선상에 있을 수도 있다.

난 늘 여유만큼의 행복을 주장하는데, 삶의 여백과 안식이 없다면 아무리 크고 많은 성취를 해도 그것 자체로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물론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 후에 주어지는 보상같은 느낌일 것이겠지만.

 

더 큰 문제는 100% 이상을 땡겨쓰는 것이다. 말 그대로 빚을 지는 것인데...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노후를 담보로 아이들의 교육에 몰빵을 한다.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아이들도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강요 당한다. 그것이 아이의 행복을 보장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공부머리도 여러 재능 중 하나다. 

챗 GPT 같은 AI가 인간의 경쟁력으로 시사하는 바는 지식과 학력이 아니라 능력이다. 무엇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가보다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활용하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맥락을 연결하는 자가 경쟁력을 갖춘다. 거기엔 인간 관계의 맥락도 포함된다. 예전보다 인성영역이 더 큰 경쟁력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젠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똑똑한 사람 같은 AI라는 존재가 늘 우리 곁에 있게 될 것이니까.

 

그러니 각자의 재능을 존중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영재성이 삶을 살아가는데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난 영재는 아니었지만 공부로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늘 애썼다. 다른 재능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걸 알았고, 외모나 재력이나 나의 환경으로는 전혀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낭비하지 않는 건 미덕이었다. 특히 고등학교부터는 일분일초를 아껴서 공부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렸다. 늘 시간의 양으로 승부했고, 양질의 휴식은 내게 사치로 느껴졌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단어공부를 했고, 쉬는시간에도 공부에 집중했다. 물론 끝까지 그렇게 했다면 대박이었겠지만, 당연히 한계를 느끼고, 지쳐서, 마음과 몸이 많이 아팠다. 몸이 아프다는 건 강제로 휴식을 취하라는 신호 같은 것이었다.

내가 영재나 천재가 아니었으니 그런 노력에 집착을 했었겠지만, 영재나 천재라고 해서 그 길이 쉬운 건 아닐 것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고, 늘 넘어서야 할 장벽이 있고, 마음의 부담을 이겨낼 내공도 쌓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머리가 뛰어나다는 것이 모든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변수와의 싸움을 해야 하고, 그걸 이겨내기 위한 멘탈 관리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이것도 마음먹는 대로 그냥 되는 건 아니다. 상처받으면서 성장하고, 암묵적인 사회성을 습득해야 한다.

 

자퇴를 고민하는 제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낭비해라!

이건 낭비를 하지 않으려고 부질없는 노력을 다 쏟아부었던 내 인생을 걸고 한 말이었다.

낭비가 낭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쏟아붓는 시간과 돈의 낭비가 사랑과 헌신인 것이고, 그 낭비가 인간적인 모습일 것이니까.

 

영재는 낭비되어야 한다고 지인에게 조언했다. 그 낭비는 자칫 영재성을 묻어버리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 강화할 수도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고, 악기 등의 음악, 미술, 체육 등도 접하면서 관심을 확장하며 체험하고... 무엇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는 신기한 성장의 기쁨과 사소한 성취를 느끼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지인의 아들도 만남과 체험을 통해 배우고 도움을 받는 것처럼, 자신의 영재성을 다른 이들을 위해 쓰고 나누는데 활용할 수 있는 것에 기쁨을 누리게 되면, 영재성의 부담은 거룩한 즐거움이 될 거라고.

 

우리의 성취기준은 상대평가에 매몰되어 있다. 늘 남들과 비교해서 속도를 따진다. 그런데 이런 타고난 영재성은 절호의 기회인데, 이걸 안 쓸 이유는 없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오로지 그 능력만 발휘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여백과 낭비의 낭만 없이 한쪽으로만 내몰린다면, 누가 그 삶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블로그에도 포스팅한 적이 있는 <어메이징 메리>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천재 아이에게 낭비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확인할 수 있다.

 

행복은 소소한 것이 진짜다. 큰 성취를 행복으로만 생각한다면, 과정 자체가 부정될 것이며, 정작 성취 이후에 더 큰 자극을 바라며 늘 불행할 수도 있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112638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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