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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Sep 10. 2023

보급형 글쓰기로의 재초대

올해 2월에 만나서 "보급형 글쓰기 비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선배님은 여전히 늘 완결과 완성을 꿈꾸고 계셨다. 다른 중요한 일에 몰두하다 보니 글쓰기의 루틴이 깨졌고, 다시 시작하시려고 하니 완벽주의와 같은 글쓰기에 대한 부담으로 다시 시동 걸기에 엄두가 나지 않으셨을 것 같았다. 

게다가 선배님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와 글쓰기를 분리하고 계셨다. 개인이 드러나지 않은 전문성으로서의 글쓰기... 그 완벽한 글쓰기 결과를 접할 때마다 난 솔직히 절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내 글쓰기는 완성을 지향하는 불완전함의 향연이라고 생각한다. 그 불완전함이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위한 낮은 문턱이 될 수도 있으니...

나의 불완전함은 독자들의 생각과 높은 수준으로 채워질 수 있으니, 의도한 바는 아니고 그게 내 최선일 뿐이긴 하지만, 그 나름의 성과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선배님은 최근 독서모임을 이끌고 계셨다. 대학 강의 수준으로 자료를 준비해서 전달하신 후, 한 번 모이면 2-3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에 대한 이야기로만 진행이 된다고 하셨다. 너무 즐거워하셨고, 극강의 행복을 누리고 계시는듯했다.

그래서 내가 제안 드렸다. 

그 모임의 부스러기라도 써주시면 안 되겠냐고.

퍼즐을 모아 완성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많은 의지와 노력과 고통스럽기까지 한 고민을 수반한다. 내가 제안한 것은 완성되지 않은, 완성을 고민하지도 않은 그냥 단편적인 퍼즐 한 조각이었다.

그 사소해 보이는 조각에도 반응하며 깨달음과 지혜와 새로운 시각을 얻는 이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명력을 찾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편을 흩어놓고 나면 그렇게 부담 없이 모인 각 조각이 나중에는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생기며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다.

선배님은 씨 뿌리는 작업을 넘어서 자연스러운 지연이 필요한 열매까지 미리 고민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글쓰기에 솔직히 스스로 만족할 수 없고, 이런 퀄리티로 글을 올리면 독자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만, 그 성장의 결과를 미리 이루려는 고민과 결실을 앞당기려는 욕심으로 지금 이 순간만 쓸 수 있는 여백 있고 부족한 글을 안 쓸 수는 없다. 공적 글쓰기이니 그 부족함을 마주하게 되는 분들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교사로서 늘 노력하고 있지만 완벽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면,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진심만 다하며 독자분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독자들은 나의 부족함을 보고 오히려 더 크게 응원해 주시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훌륭한 누군가의 문체를 흉내 내려 하지도 않는다.

골리앗이라는 두려움에 맞서 사울왕이 하사했던 갑옷을 벗어던지고 평소대로 돌멩이를 들고 나아갔던 다윗처럼, 지금 당장 뭔가를 더 갖추려는 노력으로 몸에 맞지 않는 갑옷을 입는 것을 오히려 더 경계해야 한다. 그냥 지금 들고 있는 돌멩이를 들고 평소대로 자기 모습대로만 나아가면 된다. 나만이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을 그냥 쓰는 거다. 지식 분야뿐 아니라, 글쓰기도 완벽한 수준으로 나아가려는 고민은 곧 AI로 대체될 것이니, 우리가 할 일은 대체할 수 없는 내 수준의 나만의 이야기를 "hand-made"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만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내일은 또 다른 수준에서의 나만의 이야기를 써 가게 될 것이며, 그렇게 매일 살이 찌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자각하게 되는 것처럼, 문득 자신의 성장에 감탄할 날이 올 것이다. 그래봤자 넘사벽의 훌륭한 프로 작가의 글쓰기 수준에 견줄 것은 아니겠지만, 굳이 비교는 필요 없다. 굳이 해야 한다면, 우리의 비교는 어제의 자신과만 할 일이니까.

그리고 우리의 말과 글은 모든 정보를 다 주지 않고, 듣고 읽는 이들의 사전 지식과 배경지식을 전제로 해서 의미의 확장도 다르게 되어 있으니, 때로는 불친절한 글이나 말이 더 많은 상상력과 느낌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의 열린 결말에 사람들은 분노하면서도 엔딩을 각각 상상하는 것처럼...

한동안 여러 가지 활동에 몰입하다가 글쓰기의 루틴을 잠시 멈추고 계신 선배님은 또 겸손하게 후배인 내게 자극받기를 기대하셨다. 

그저 나처럼 글의 퀄리티에 대한 부담을 낮추고, 독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완벽한 탈고의 부담감에서 벗어나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글쓰기에 자신을 드러내는 문턱을 넘으시면 좋겠다고.

나도 나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쓰기 전에는 내 글을 보고 내 성별이나 나이를 착각하는 분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자신의 이야기가 글쓰기와 만나는 순간, 더 이상 깊은 고민 없이(물론 민감한 이야기나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고민과 절제가 필요하지만) 삶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넘쳐나는 글쓰기로 막 쓰다보면 작가의 서랍에 임시저장해 둔 글들이 넘쳐나서, 오늘은 그중 어떤 글을 먼저 올릴지를 더 고민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친한 사람이 되어야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친해지는 거다.

난 글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한다. 물론 원래 친한 분들도 많이 계시긴 하지만 원래부터 친해서가 아니라 글을 통해 친해지기를 바라서이기도 하다. 그 교감이 내겐 글을 쓰는 동력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이런 기회와 독자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이다.

마음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자극이 될만한, 책에서 건져올린 글귀 중 몇 개를 선별해서 아래 공유하려고 한다. 다른 분들께도 공적 글쓰기의 동기유발이 되시길 기대하며..

예전에 선배님과의 만남 후 올렸던 "보급형 글쓰기 비결" 포스팅. 여기에 글쓰기 관련 도서 포스팅 링크를 모아두기도 했으니 참고가 되실 듯.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028091668




<별게 다 영감>  

    생각이 좋아야 의미가 있지. 위대한 작가들이 아닌 이상, 어쩌면 <글쓰기>는 다 <생각 쓰기>야. 누군가 너의 글을 좋아하면, 너의 생각에 동의했다는 뜻이야. 네가 글쓰기가 나아졌다고 느끼는 건 스스로 너의 생각이 나아졌다고 느끼는 거야. 쓰는 입장에선 생각하는 게 즐겁지.  

    "글이 나아지려면 생각이 고여야 하고, 생각이 고이려면 많이 보고 들어야 하고" 편집자와의 대화 중에서  

    우리의 모든 글쓰기는 결국 생각 쓰기다. 내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더 반성하고 바뀌어야 하는지 글쓰기를 통해 배운다.  

<메이커스 랩>

아는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알게 된다.

껍데기가 깨지기 전에는 어떤 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 T.S. 엘리엇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글을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저처럼 창작 활동에 몸담은 사람들 대부분은 도착한 다음에야 목적지가 어딘지 알게 되죠.

무엇을 그릴 것인지 알려면, 그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 피카소

결국, 우리는 인생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차차 삶을 알게 된다.

<글쓰기의 최전선>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낱말 하나, 문장 한 줄 붙들고 씨름할수록 생각이 선명해지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되는 즐거움이 컸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

누가 읽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전반적으로 글에 열과 성이 깃든다. 처음에는 써놓은 글을 올리려고 블로그를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블로그가 있어서 거기에 올리려고 글을 썼다.

글을 매개로 남의 의견을 듣고 삶을 관찰하다 보면 세상에는 나와 무관한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

세상과 많이 부딪치고 아파하고 교감할수록 자기가 거느리는 정서와 감각과 지혜가 많아지는 법이니, 그렇게 글쓰기는 존재의 풍요에 기여한다.

일단 쓸 것. 써야 쓴다.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능력에서 출발하기

글쓰기라는 것에는 어차피 ‘공적’ 글쓰기라는 괄호가 쳐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곧 남들에게 보여지는 삶, 해석 당하는 삶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리는 일이다.

먼저 느낀 대로 말하고 쓰고, 그 생각을 공적인 장에 내놓아 외부에서 검증받고 소통하면서 어떤 사건에 대한 해석을 바꾸어 나가는 것. 그러니까 다른 (생각을 가진) 내가 되어가는 과정의 기록이 글쓰기의 본령이다.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것은 창작자의 임무이다. 창작 분야 종사자 중 ‘대체 가능한 존재’는 살아남지 못한다. 

이미 훌륭한 글이 넘치므로 나는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인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사실은 없다. 해석된 사실만이 존재한다. 내가 만약 어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괴롭히는 대상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와 감정에 일종의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주제’를 부각하는 행위다. 나의 경험의 의미는 미리 주어지지 않는다. 글 쓰는 과정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

좋은 글은 그 자체로 다른 생각의 자리, 다른 인격의 결을 보여준다. 글은 삶의 거울이다. 글은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좌절의 지점이기도 하고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 매일 다짐해야겠다. 쓰레기를 쓰겠어! – 이경미 감독

<나는 매일 블로그로 출근한다>

최종적으로 완결된 글을 쓰기에는 블로그가 최적이다. 글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을 추가해서 보다 입체적이고 전달력 높은 글쓰기가 가능하다. 글을 써서 발행만 했을 뿐인데 내 글이 무료로 세상에 배포된다.

우리는 노벨문학상을 받으려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써야 남들한테 잘 썼다는 소리를 들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써야 내가 느끼는 것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면 된다.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 - 이성복

바쁨은 새로움의 천적이다. - 구본형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말이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다음과 같다. 내 언어의 한계가 확장되면 내 세계의 한계도 확장된다. 

잘 쓴 글이란 수려한 문체나 수사적 기교를 잘 부린 글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우러나와서 쓴 글이다. 때로는 시각 매체가 주연, 글이 조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못난 경험을 드러내라. 지난날이 못나면 못날수록 현재가 빛난다. 못난 경험을 많이 가진 사람이 돋보이는 세상이 왔다. 진정성 있는 콘텐츠의 비밀이다. 과거를 흘려보낸 사람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서 과거를 흘려보내기도 한다. 

교사 오래 한 친구 블로그 하는 이유 :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그동안 뭘 했고 뭘 가르쳤고 내가 쌓은 지식이 뭔지 스스로 확인하고 기록해 보려고 시작했어.

블로그에 쓰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다 보니 블로그에 쓸거리가 생겼다. 유쾌한 강제성이다.

좋은 점 : 쓰면서 생각이 논리 정연해지는 느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쉽게 설명하려다 보니 오히려 자기에게 도움이 됨. 더 중요한 건 자신이 지금 평범하게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점.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창구가 생김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

마케팅은 타인에게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브랜딩은 타인으로부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좋은’에 해당하는 나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퍼스널 브랜딩이란 바로 그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글쓰기를 할 때 반드시 상기해야 할 세 가지 : 1) 글쓰기는 훈련  2) 필력보다 기획력이 우선 3) 공개적으로

‘최다가능청중’이 아니라 ‘최소유효청중’을 위해 노력하라.

어떤 과정에 나를 데려다 놓느냐를 고민하는 것부터 브랜딩이다. 지도는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브랜딩은 어디에 도달하거나 정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10킬로미터를 걷기로 결심했어도 아름다운 풍경은 감상해야 하고,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면 머물러야 한다. 따라서 나의 여정에는 마침표가 없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 – 필립로스

글은 문장력이 아니라 삶으로 쓰는 것이다. 삶으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대로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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