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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Sep 09. 2023

감격스러운 청첩장

오랜만에 본 이들에게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은 그대로라는 말일 것이다. 외형적인 모습,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한 모습이라는 의미 외에도 세월의 흐름에도 호감과 교감의 끈이 이어지고 있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에서 동료로 만나 일상을 함께 하다가 그 조합 그대로 다시 모이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어제 15년의 세월을 버텨 온 믿기지 않는 조합의 만남이 있었다. 나는 학년 마무리가 되어 계모임을 하자고 하는 것도 거부하며 나만의 영역만 지켜오던 극강 I에, 자기중심적인 사람인데... 그런 내가 그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함께 지낼 때도, 지금도 여전히 존경하는 선배님들 세 분과의 만남에 모임이 결성되는 순간부터 설렘이 시작되었다.


그중 한 분은 초임때부터 세 학교가 겹치고 같은 교회이기도 해서 일상을 계속 공유되던 분이었고, 두 분께는 학교를 떠나실 때 그리움을 담아 선물을 드리면서 이런 메시지를 드리기도 했다.


** 선생님 

잘 지내시죠? 따님도요..

저는요... 바쁘고 힘든 중에도 돌아보니 선생님이 주변에 안 계신 거예요. 존재만으로도, 웃음소리만으로도, 그리고 한 번씩 제게 주시는 말씀으로 인해 얼마나 제게 큰 힘이 되어 주셨는지 감사와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떠올리고 있어요.


** 선배님

잘 지내고 계시죠? 전 작년에 누님들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실감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특히 마음속 깊이 공감해 주시고 배려해 주시는 선배님이 너무 그립고 그래요. 작년에 선배님께 더 많이 감사하고 그랬어야 하는 아쉬움도 크고요.. 쉬지 않고 잘해주셔서 너무 선배님의 은혜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늦은 감은 있지만 선생님 떠나실 때 말고, 시간이 지나 이런 그리움의 마음이 넘쳐날 때 선물 드리고 싶었어요. 제 선물 수준이 이런 건 알고 계실 거구... 그래도 고민하면서 선별한 책들이니... 그저 제 애틋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은 기억해 주셔요.

순간순간 행복하셔요.



그 사이 어떻게든 개별적으로 만났지만, 존경하는 선배님들을 한자리에서 한꺼번에 뵙는 건 내게 축복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모이자마자 서로 “그대로다”라는 덕담을 약속이나 한 듯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일주일 전에 본 사람들이 또 만나는 거냐고 옆 사람들이 보면 웃겠다고 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인정했다.



모임을 주선하신 선생님께서 청첩장을 주셨다. 디지털 청첩장을 전하게 된 시대에, 청첩장을 주고받는 것이 부담일 수도 있는 시대에... 내가 받은 청첩장은 내게 오히려 감격스럽고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굳이 바쁜 시간을 쪼개셔서 비싼 식사를 사주시면서까지 직접 청첩장을 전달하는 자리에 그 선생님으로부터 초대받았다는 선택받았다는 감격이 내가 참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행복감으로까지 이어졌다. 

평소 그분으로부터 받았던 은혜와 같은 축복에 더해진 선물 같은 만남과 청첩장이었다.


청첩장을 펼쳐보았다. 

풋풋했던 서로의 첫사랑이 함께 무르익어 함께 맞는 10번째 가을, 단풍잎처럼 곱게 물든 끝사랑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부부로서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는 자리에 귀한 걸음으로 함께하여 축복해 주시면 더없는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선생님 따님이 직접 쓴 문구라고 했다. 문구처럼 영화 같은 만남이었다는 스토리도 들었다. 서로가 만날수록 더 좋아진다고 하니, 그보다 더 확실한 결혼 sign이 어디 있을 것인가...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행복을 응원하고 싶었다.


다시 청첩장을 펼쳐 보고 지금 글을 쓰면서 행복감에 막 눈물이 난다. 

선배 선생님 딸 결혼식에 이렇게까지 반응할 일이냐고?


그 따님을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났다. 선생님께서 내게 영어컨설팅을 부탁하셨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난, 두 번째 학교를 거치고 고3 담임을 5년 연속 하면서 영어수업과 학습상담은 자신이 있었지만 학교밖 상담의 가능성을 열어두지는 않았는데다가, 선배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던 사대부고는 100% 초빙으로 정말 훌륭하고 유능한 선생님들로 가득했고, 그 선생님들 사이에 나는 교육경력으로나, 카리스마 면에서나 존재감 없다는 무력감과 바닥친 자존감으로 힘들어하고 있던 시절이어서 너무 뜻밖의 놀라운 제안으로 느껴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의 딸을 상담하려는 결정은 보통 신뢰가 아니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어서, 그 초대 같은 제안에 오히려 난 감격했다.


밝고 맑았고 호감 가는 성격에 나이에 비해 더 깊이가 있었으며 매우 똑똑하고 예쁜 학생이었다. 나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에 이미 범상치 않음을 느꼈었다. 내가 만든 영어자료를 건네주었는데 성실하게 잘 해내어서 너무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 영어학원을 다닐지를 고민하다가 나를 다시 만나서 학습방향을 구체화했었다.

학습방향을 구체적으로 기획하여 알려주었고, 학습단계를 일러주면서 멘토링이 시작되었다.

이미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멘토링학습코칭을 하고 있었고, 온라인으로 점검을 올리고 단어시험을 치는 컨셉을 처음으로 진행하던 시기에, 따님의 멘토링 비밀게시판을 따로 만들었다. 학습점검 외에도 한 번씩 자신의 속상한 이야기나 고민 같은 것을 썼던 기억이 난다. 난 정성껏 답장하면서 피드백을 해주었다.

엄마는 그 시기에 교과서 집필한다고 아이들에게 온전한 마음을 다 쏟지 못한다고 미안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학습코칭과 상담을 하며 아이의 말에 귀기울여준 나의 작은 몸짓에도 무척 고마워하셨다.

그러나 영어멘토링학습코칭 초반기에 학교 학생들보다 얼굴을 대하지 않고도 더 열심히 하며, 더 큰 교감을 이뤄가는 따님의 존재에 난 교사로서 자존감을 회복해갔으니, 나 아니라도 스스로 잘 해냈을 걸 생각하면 고마운 건 오히려 나였어야 했다. 

그리고 학교밖 컨설팅의 가능성에 현실적인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그 선생님 학반 학생들,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자녀들을 컨설팅해 주는 기회가 계속 이어졌는데, 그 원조 컨설팅 멘티였던 셈이었다.


고등학교 진학해서는 의사의 꿈을 이어가며 모의고사 전국 1등도 했었는데 집에서 가까운 의대에 가게 되었다.서울의 메이저 의대에 갈 실력도 되었는데 아쉽지 않냐고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집에서 다니게 되어서, 집밥 먹이면서 힘든 과정을 곁에서 응원할 수 있어서 더 좋다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다. 결과적으로도 메이저 의대 가서 채워야 할 공부 할당량보다는 여유를 좀 더 가졌고, 여유 있고 행복하게 잘 지내면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해서 원하는 진료과를 선택할 수 있었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는 이보다 더 행복하고 안정적일 수 없는 축복은 초반의 아쉬움을 넘어서 이미 예견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의대 합격한 따님을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일부러 데려와서 인사를 시키셨다. 저녁을 사주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온 그 여정을 함께 지켜보며 응원했던 과정을 돌아보면서 매우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 성취의 순간에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준것도 너무 큰 감동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그 따님의 의대 후배가 된 학생을 연결해 주며 선배로서의 멘토 역할도 부탁했고, 이후 연락해 오던 제자들로부터 존경하고 멋진 선배라는 이야기를 듣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해진 결혼 소식... 청첩장 받기 전부터 어느 정도 구체화된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청첩장을 실물로 대하고 나니 너무 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뿌듯하고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다. 


선생님과 따님의 행복의 인생 여정에 내가 작지만 잠시라도 여정을 공유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교사를 키우는 힘은 학생과 학부모에게서 나온다. 그 신뢰로 학생들이 교사의 열정을 만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 교사의 교육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만난 선생님과 따님은 내게 그 역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교사로서 자존감이 추락하고 있을 때, 교사로서 역할을 잘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시기에 그 신뢰와 내게 보여주었던 열정과 열심이 나의 열정을 다시 소생시켰다.

내게 감사하실 일이 아니라 오히려 평생 나의 감사를 받으셔야 한다.


얼마 전 올렸던 <체력과 집중력 할당량 넘지 않기>에 등장하는 존경하는 선배 선생님이시기도 한데...

내 글을 보고 이렇게 답장을 하셔서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는 나의 교육적 열정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셨다.

나의 답변

별말씀을 다하세요ㅋㅋ

선생님의 교사로서의 삶을 보며 삶으로 배웠는데요 선생님의 명확한 균형감각과 카리스마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롤모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선생님을 통해 깨달았어요

선생님의 격려와 칭찬 덕분에 제가 더 노력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난 학생들에게도, 후배선생님들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주는 그런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신뢰하고 격려하며 힘을 얻어 성장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도록 하는 존재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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