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든 항우울제든 임의로 약을 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완치가 되지 않으면 내성이 생겨서 다른 약으로 바꿔야 하고 치료는 더 힘들게 되니까...
영어멘토링을 확장한 개별 학습코칭 프로그램인 청블리 간섭반을 개설한 후 특정 학생들을 위한 특혜가 되면 안 된다는 나만의 원칙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초대장을 날리듯 홍보했다.
쌤은 뭘 또 이렇게 많이 뭔가를 만드냐는 학생의 반응도 있었다.
이름이 재미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정말 간섭을 하겠다는 것인지 반신반의하면서 그 강제성이 약간은 희화된 느낌이었다.
늘 강조한 대로 “유쾌한 강제성”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워딩의 실패는 아닐지..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에게 신청서에 학부모님 싸인을 받아오도록 했다. 한 학생이 싸인은 받아왔는데 어머니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너무 학교에서 시키는 것만 하고 스스로는 잘 안 하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학생이 정말 하고 싶다고 고집은 해서 싸인은 해주신 것 같았다.
이 학생은 학년초부터 영어멘토링을 꾸준하게 해서 점검을 받았고, 여름방학 자기주도학습에도 참여했다. 금요일 채움수업에만 참여하지 않을 뿐 수업 외 프로그램에 계속 참여를 해오고 있는데, 어머님 보시기에 자율성이나 주도성이 없어 보이실 만했다.
그래서 학생에게 강제성은 전혀 없다고 하면서, 말이 간섭반이지, 결국 공부하는 건 자신이고, 단지 뭘 공부해야 할지 몰라서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며, 사소한 습관이라도 들여서 자기주도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 번 더 강조했다.
안내문에도 충분히 기록한 내용을 한 번 더 반복하면서 뭔가 변명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혹 나도 학생들에게 약물치료와 같은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학생들이 주인공이라고 내세우면서도 나의 존재감이 너무 큰 건 아닐까... 처음에는 나의 코칭과 상담이 필요하지만, 결국 날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순간을 위해 모든 교육과정을 진행하는데, 내가 생각했던 타이밍이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온전한 주도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면, 이후에 일종의 내성이 생겨서 새로운 환경적응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대구여고에서 1학년 때 나와 영어멘토링을 열심히 하던 학생이 학년 올라간 후 날 볼 때마다 내 멘토링이 없어서 영어를 잘 안 하게 된다고, 책임지라는 말을 농담처럼 의미심장하게 던졌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때마다 이미 쌓인 습관과 내공을 믿고 주도적으로 하면 된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 학생은 서울대에 진학했다. 물론 1학년 때 열심히 영어멘토링 학습코칭에 참여하긴 했지만, 애초에 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특히 서울대 의대를 비롯해서 의대나 스카이 대학에 진학하려는 많은 학생들은 늘 순위가 밀리는 영어에 대한 부담을 최소한의 감각 유지를 위한 습관을 이어가는 플랫폼으로 내 멘토링을 적극 활용하긴 했다.
그 플랫폼에는 나의 교감이 담긴 관계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자신의 열심을 바라봐 주고 개별적인 관심을 가져주며 무조건적으로 응원해 주는 존재... 보통은 래포형성이 되고 나서 멘토링의 효율이 더 높아지지만, 그냥 멘토링을 시작해도 래포형성이 되고 친밀감이 더 높아지기도 했다.
나의 과도한 열정과 굳이 안 해도 되는 프로그램 진행 이후 학생들이 나를 떠났을 때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래서 진급시킬 때 반 학생들에게는 전화번호 다 지울 거니까 불쑥불쑥 연락하지 말라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진급하면 무조건 상황은 바뀔 텐데 자꾸 내게 찾아오고 연락하면 적응이 그만큼 늦어질 거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내게 와서 힘든 걸 토로했다.
난 학반 분위기를 규칙과 엄격함으로 통제하는 편이었다. 자습시간에는 지우개 빌려달라는 소리나 서로 물어보는 행위조차 금지했다. 잡담이나 질문이나 필요한 얘기들도 당사자가 아닌 경우라면 다 소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숙한 분위기가 익숙해진 아이들은 특히 고2가 되어 더 활발해질(?) 분위기에 적응을 잘 못하기도 했다.
나의 엄격함과 귀찮음을 무릅쓰게 하는 학급특색활동에 불만이 있던 학생들조차도 학년이 지나면 날 그리워했다. 그건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일상에서 벗어나면 그리움은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나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그걸 지우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힘들게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손을 놓게 될 그 순간을 위해 나의 열심을 다하지만, 그것이 내가 정한 타이밍에 딱 들어맞게 아이들이 손을 놓게 되는 건지는 세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혹 수업을 벗어난 나의 교육활동이, 사교육에 맞선 공교육 교사의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있는 것처럼 비장하게 진심을 다하고 있지만, 내가 “유쾌한 강제성”이라고 생각했던 그 과정이 “불쾌한 강제성”으로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수업 외 프로그램 자체의 강제성은 전혀 없다. 언제든 그만 둘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고, 내게 상처가 되어도 늘 그 선택을 존중해주고 있으니까.
그러나 사교육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내 학습코칭이 여전히 “강제성”이나 “간섭”이라는 워딩으로 마주하게 된다면...
사교육 대신 나의 존재감을 억지로 채워 넣으려는 개인적인 욕심은 아닌 것인지 고민이 깊어졌다.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고민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아이들은 현실에 좌절하고 상처받은 절실함으로 나와 나의 교육활동을 만나서 특별한 강제성 없는 플랫폼으로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배움과 성장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가 훌쩍 더 들어서 이제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인지, 중학교에 왔기 때문인지 구별이 되지는 않지만, 특히 중학교 3년차인 올해 영어멘토링학습코칭의 참여가 너무 저조해서, 나만의 몸부림으로 만든 것이 “청블리 간섭반”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냥 학원만 다니고 학원숙제를 하고, 내신대비만 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역할을 과대평가한 것일 수도 있었다.
강제성과 자발성의 균형을 찾아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내게 주어진 숙제라는 생각은 미해결 부담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생각 끝에 엉뚱하게도 문득 “관계 단절 후 내성”이라는 말이 조합되어 떠올랐다.
관계 단절 후, 세월이라는 약을 강제로 먹고 있음에도 내성이 생긴 것처럼 만남의 이어진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그리움의 다른 이름겠지만, 때로는 넘어서야할 것을 넘지 못하고 있는 주저함은 아닐까?
난 만날 때부터 늘 이별을 의식한다. 기억은 영원할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 교사와 학생이라는 명확한 규정의 관계는 시한부이기 때문이다. 이별을 의식하는 건 마칠 때 아쉬움을 최소화하기 위한 나의 진심을 담은 노력과 결단이다.
아이들은 진급을 하거나 졸업을 하고, 혹은 내가 학교를 먼저 옮길 때나 어떤 경우든 한 번도 예외없이 나를 떠났다.
그런데 분명 일상을 공유하는 명확히 규정된 관계는 종료되었음에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나를 만나러 오거나 어떻게든 연락하는 제자들이 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결국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순간을 위해 힘쓰는 내 교육목표가 실패하는 경우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성공했거나 아예 시도하지 않아 어차피 관계가 없거나, 둘 중 하나라고만 단순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설픈 나의 개입으로 자립은커녕 내성이 생긴 것처럼 혹 의존성만 더 커지는 일이 생긴다면, 나의 교육활동이 다 부정되는 것은 아닐 것인지 조심스러워졌다.
사교육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준비 없이 자기주도학습을 실현하려고 사교육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었을 때 금단증상처럼 이내 다시 학원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의존성이 깊고 더 오랜 시간을 거쳐왔을수록 더 강력한 조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강해진 내성으로 인해 끊어버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딸들은 학원에 간 적이 없다. 선배 한 분이 자기주도적 학습이 아니라 아빠주도적 학습이라고 딸들의 교육을 묘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의 목표는 나를 필요로 없게 하는 것이었고 딸들은 학습코칭의 단계를 넘어선 이후 내게 멘탈코칭과 상담만 주로 받았다. 물론 본인의 힘으로 잘 안될 때나 헤매는 느낌이 있을 때는 학습코칭을 간단하게 받기도 했다.
학생들처럼 일상을 공유하는 현실 관계의 종결이 없기 때문에 그 끝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고 언제든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곤 했지만...
학교에서 학생들과 정해진 시간 내에 완결되지 못한 자기주도학습의 과정에서 나의 구체적인 한계와 역할은 무엇일지... 내 학습코칭의 완결 여부와 관계없이 내성이 생기지 않고 자신의 학습과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일지... 어떤 약이든 부작용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처럼,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라도 남들의 표현으로 "굳이 안 해도 되는" 나의 역할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건지...
부디 이런 나의 고민이 그저 잠시 스쳐가는 쓸데없는 고민이기만을 바란다.
딸들이 어느 정도 본인이 하려는 의지가 생길 때까지 늦은 듯한 행보를 답답하게 지켜보면서 기다렸던 것처럼, 학교에서도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배움과 성장의 키는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쥐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청블리 간섭반"은 이름과는 달리 프로그램 참여에 크게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학생들이 간절하게 내게 간섭을 원할 때에만 그 역할과 기능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이 번주 "청블리 간섭반" 시작인데 점심시간에 두 번이나 찾아온 학생 둘이 있었다. 그 반 담임선생님께서 지나가시면서 농담으로 "청블리 간섭반"의 주체가 누구냐고 아이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인지, "청블리쌤"인지... 너희들이 청블리쌤을 간섭하는 것 아니냐고, 선생님을 자꾸 괴롭히는 것 아니냐고 하셔서 모두가 함께 웃었다. 난 아이들과 자발적 행복과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끝을 생각하고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결단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의존했던 학생들도 이내 달라질 일상에서 다른 사람과 대안을 찾을 것이다.
그러니 간섭받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면 실컷 간섭하며 감당할 수 있을만큼만의 행복과 즐거움을 나눌 것이다. 나의 미련과 그리움과 아쉬움의 깊이로도 어쩔 수 없는 관계의 단절은 이미 시작부터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