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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해서는 안 될 일

by 청블리쌤

지하철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가는 출근길에 아파트 위층 베란다에서 잘 다녀오시라면서 손을 흔드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에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아빠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딸의 배웅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를 향한 인사는 아니었지만 내가 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는 추억에도 잠시 젖었다.


내 옆을 지나치던 역시 누군가의 아빠가 되었을 법한 나이의 남자분이 함께 길을 걷던 노모에게 "출근하는 아빠한테 계속 손을 흔들어 준다"면서 부러움인지 기특함인지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그 말에 바로 반응을 보인 어르신의 한 마디가 너무 강렬했다.


"그래야지."


그 한마디에는 놀라움도 없었고, 애틋한 마음도, 고마운 마음도 실종되어 있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연함만 있었다.


I took you love for granted.

Just give me one more chance.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take A for granted : A를 당연하게 여기다)​


당연히 여기는 것과 고마움은 양 극단에 있으며 공존할 수 없다.

당연함은 권리 주장으로 이어지며, 이내 고마움 대신 섭섭함의 표현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집중하게 되는 것은 결핍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다.


모든 어른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세대 간의 갈등은 여기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다.


어른의 당연함은 아래 세대의 부담이 된다. 늘 최선과 진심을 다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마음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평소의 진심을 당연히 여기다 보면, 하나의 실수나 사소한 불편에도 섭섭한 심기가 전해진다.



그 다음 단계는 비교다.


딸이 아빠에게 손 흔들어주는 것이 당연해지면, 자신의 손주가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교의 말이 전해질 것이다. 아무개 집 손주는 아빠한테 그렇게 인사를 잘 하더라...

어르신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화법이다.

"옆집에 보일러 새걸로 놨다더라. 그렇다고 보일러 바꿔달라는 건 아니다."

이렇게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면 그냥 웃어넘길 수는 없다.


의도와 관계없이 부모의 비교하는 발언이 자녀들에게 상처를 안 남기기는 힘들다.


그 비교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성적이 잘 안 나오면 "너한테 쏟아부은 학원비가 얼만데" 이런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당연하다는 생각은 감사의 실종뿐 아니라, 상처로 이어지는 것이 필연적이다.


당연함은 우월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한 사람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경멸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렇게 상대방의 부족함을 집요하게 파내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유형이다. 자신이 율법을 잘 알고, 잘 지킨다는 것이 그들만의 권리가 되었고, 우월감이 되었으며, 기득권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당연하다면 가진 것을 나눌 이유도 없다.


그래서 당연함이 삶의 모습이 된 사람들은 외로울 것이다.


이 순간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딸들이 내게 건네는 인사와 반가움의 표현을 너무도 당연히 여겨 그 순간 온전히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고, 감격적인 순간으로 담아두지 못했던 것 같아 가슴 아프다.


당연함은 남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도 황폐하게 한다.


문득 오스 기니스의 <소명>이라는 책의 문구가 생각난다.

당신이 가진 것 중에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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