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sorry의 어원은 sore, sorrow다. 아프고 슬픈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조문을 가면 이런 말을 한다.
"I'm sorry for your loss."
당신이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해
"미안하다"가 아니다. 가슴 아프고 슬프다는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도 결국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가슴 아프고, 슬프다는 의미를 담는다. 가슴 아프지 않다면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닌 것이다.
sorry는 그래서 아픈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픈 마음은 행동으로 표현되면 더 좋다고 믿는다.
성경에서도 회개는 잘못을 돌이켜 원래대로 놀려 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주에 학교 교무실에서 공용 티스푼을 꺼내려 하다가 뭔가를 떨어뜨려 깨뜨렸다.
누구 것인지 몰라서 일단 사진을 찍고 3학년 담임선생님들께 메시지를 보냈다.
"아침에 스푼 꺼내다가 떨어뜨려서 깨진 잔해 사진입니다. 누군지 알려주시면 새로 사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선배 선생님 한 분이 자기 것이라고 괜찮다고, 차를 저을 때 쓸려고 가져왔는데 몇 천원 안 한다고 진심을 담아 오히려 나를 위로하셨다.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그 배려의 마음과는 별개로 난 원 상태로 되돌리고 싶었다. 마침 많이 비싸지도 않다고 하니ㅋㅋ
퇴근 후 아내와 동네를 돌았다. 아무리 찾아도 비슷한 물건을 찾을 수 없었다.
온라인 검색을 하고 그 물체의 이름이 "머들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
칵테일의 도구 중 하나.
민트 잎이나 레몬 껍질 등을 글라스 안에서 으깨 즙을 내는 데 사용하는 물건이며, 롱 드링크 칵테일에 장식용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컵 안의 레몬, 라임 조각 등을 손님의 취향에 맞게 즙을 내어 먹으라는 의도. 흔히 모히토 등의 칵테일을 만들 때 사용된다. muddler란 단어는 '빻고 찧는 물건'이란 의미.
선배 선생님께서는 도자기로 된 머들러를 티스푼 대용으로 사용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머들러를 주문해서 자리에 올려 드렸다.
모든 선생님들께 사과의 메시지가 전달되어 내가 그걸 왜 샀는지 알고 계셨던 옆자리 누님선생님께서 내 어깨를 팍 치시면서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셨는데 왜 샀냐고 웃으면서 한 말씀하셨다.
배려하는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한 나에 대한 답답함의 표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마음 편하라고 굳이 안 해도 된다는 괜찮다는 선의의 말씀을 무시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저 내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부서진 머들러의 잔해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I'm sorry.
행동으로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받으신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내게 감사를 표현하셨다. 감사 인사를 받으려 한 것이 아니었지만, 실수 한 순간부터 괜찮다고 해주시고 배려해주시고 감사까지 표현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러다 문득 아주 오래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할머니 한 분의 자전거와 충돌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떠올랐다.
멘토선생님께 드렸던 편지 내용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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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발을 디디고 산다는 것 자체가 한없이 순수함과 이상에서 멀어져 있는 것 같아요. 그 가운데 천국의 주파수를 의식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죠. 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아직 눈앞의 걱정에 전전긍긍하고, 미워하면서 사랑을 잊고, 아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핑계로 아이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다 쏟지 못하고, 그렇게 바쁘게 지내면서 결국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더라구요.
그저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한 아주머니를 지나쳤는데(당연히 제 속도가 빨랐겠지요) 그 아주머니가 좌회전을 하시려고 했나 봐요. 저는 충분히 빠르게 지나쳤다고 생각했는데 아주머니는 당황하셨는지 제 뒷바퀴에 부딪히셨는지 그렇게 넘어지셔서 많이 다치셨어요. 병실입원할 때까지 함께 동행하며 MRI 검사비와 수술비 등의 비용으로 110만 원을 모두 지불해 드렸어요. 과실을 따지고 뭐 그건 법적인 절차보다 일단 도의적으로 그렇게 했지요.
수술하신 다음날 병문안도 했고, 위로금도 준비해서 드렸어요. 나중에 수술도 잘 되었고 마음써 주셔서 고맙다는 메시지도 받았지만, 제 마음은 편하지 않았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정말 속물처럼 변한 저를 봤어요. 치료비가 많이 나오면 안 되는데... 법적으로 합의서를 받아 놓고 훗날의 근심을 없애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사고하고 있더라구요. 나는 그냥 돈만 내면 되는데 정작 다치신 분은 그분인데...
제 삶의 우선순위와 제 삶의 경로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목사님 설교에서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분노가 때로는 피뢰침으로 인해 무사히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제게는 그 일이 피뢰침처럼 저와 저희 가족을 지켜주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자전거 타고 다닐 때 주변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 얼마나 빨리 가려고 내 갈 길만 집중했던 모습이 돌아봐지더라구요. 그게 제 삶이었죠. 그냥 그렇게 달리는 것이요. 이젠 멈춰 서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충분히 느리게 충분히 여유 있게 충분히 배려하며 그렇게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게 되네요.
또 하나는 돈에 대한 가치를 너무 둔 것이죠. 돈을 우상으로 생각한 거였어요. 이번에 제가 살던 집을 그냥 구매했거든요. 법무사 비용 아끼려고 혼자 등기하고 30만 원 이상 아꼈다고 뿌듯해하고, 펀드 넣어 놓고 수익 생기는 것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흐뭇해하고... 한 달에 5만원 월드비전 지원금 보내는 걸로 제 역할 다한다는 안도감으로 그냥 그렇게 안일하게 살았는데... 한순간에 법무사 비용하고 펀드 수익금 그리고 학생들 장학금 주려고 했다가 망설였던 돈을 다 날리고 보니 참 부끄럽더라구요. 더한 가치를 잊고 살았던 거죠.
그래도 전 돈 버는 일을 포기할 수 없고 돈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제 삶의 우선순위와 기쁨과 가치는 그것이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제가 가진 돈으로 내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잊고 살았던 것이 가슴 아팠어요.
이일을 겪으면서 보기보다 조심성이 없어 아이들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도 폭주(?)를 일삼던 아내도 조심을 하게 되네요. 어쩌면 이 일을 통해 더 큰일을 막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리고 훗날 구두로 합의한 것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을 내려놓고 온전히 그 아주머니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들...
이렇게 큰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직도 제게 일하고 계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현실의 족쇄에서 그렇게 지내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저를 일깨워주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이제까지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