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성적과 대입의 가장 큰 비중은 수학과목에 있다. 문이과 통합 개념이 도입되면서 내신에서도 문이과가 공통으로 등급을 산출하고, 수능에서도 문이과를 분리하지 않고 확통과 미적 등의 선택으로만 구별하여 문이과 공통 문항을 함께 푸는 것도 문과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표준점수체계도 확통선택자인 문과에게 유리하지는 않아서, 문과는 수학을 덜해도 된다는 옛날 통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수학은 물리적 시간 확보부터가 중요하다. 그리고 학습 위계에 따른 단계별 학습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진도를 놓치게 되면 단기간에 따라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선행을 안 할 수가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지 오래다. 선행은 1등급만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안 할 수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딸들은 학원을 보내지 않았고, 선행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반드시 해야 했던 것은 학기 시작 전 방학 때 다음 학기 배울 내용을 예습하는 절차였다. 정시파이터로 선행 없이도 모의고사와 수능에서 결국에는 수학 1, 2 등급에 이르긴 했지만, 그정도 준비로는 교육특구고등학교 기준 2학년의 본격적인 수학내신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특히 수시에 집중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최)상위권 대학 진입 여부는 고등학교 입학 직후 수학성적에 달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과도 예외는 아니다. 1학년 공통수학, 2학년 수학1까지는 무조건 문이과 공통 등급을 낸다. 학교에 따라서는 수학2까지도 공통으로 등급을 내기도 한다.
이과의 경우 2학년 1학기에 수1, 수2를 끝내야, 2학기에 미적을 할 수 있어서 어지간히 수학을 준비하지 않으면 진도 따라가는 것조차 버겁다.
그 현실이 반영되듯 우리 학교 중3 아이들은 벌써부터 수학 숙제에 여념이 없다. 수학이 정말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등학교 때 수학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국어, 영어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바쁜 고등학교 생활과 수학공부로 인해 국어, 영어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어 있다. 국어와 영어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쉽다. 게다가 절실한 마음으로 집중적으로 공부해도 수학만큼 공부 성과를 확인할 수도 없고, 실제로 학습효과가 더디게 나타나기 때문에 평소에 외면당하는 것만큼 실력향상은 더 묘연해진다.
영어는 특히 진도교과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교육특구에서는 고입 전에 수능 비슷한 수준까지 올려놓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 (최)상위권을 점유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반대로 분명 중학교 때까지 학교수업 잘 듣고 성적도 잘 나오던 비교육특구 학생들이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에서 3-4등급 나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수준이 갑자기 뛰는 것은 첫째 일반고 수업방향이 수능을 향해 있기 때문이고, 둘째 그렇게 미리 준비한 학생들이 대부분인 학교에서는 내신 변별을 위해서 수업수준을 어느 정도는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교육 현장에서 선행금지법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선행금지법이 사교육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행금지법이 학원에까지 적용되면 교육격차는 이렇게까지 벌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각자의 필요와 선택에 의해 학원에서 선행할 수 있으니, 의도와는 다르게 사교육 아니면 고등학교 적응이 안 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교육특구에서는 당장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가 여유를 갖고 노는 기간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교육특구에서는 학교 내신 부담 없이 선행에 집중할 수 있는 특별집중기간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공교육에서 선행을 하면서 내신 시험에 선행요소를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방과후 수업 등의 기회에서도 선행을 금지하고 있어 학생들은 모두 학원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물론 선행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진도의 깊이 있는 학습이 매우 중요하며, 수학의 경우도 학기 시작 전 방학에 예습을 하는 정도가 정상적인 학습방향이라고 믿는다. 내 딸들도 그렇게 학원 없이 학기 시작 전 예습 정도의 수준으로 공부를 했다. 물론 현행 진도에 맞춰 원리를 따져가면서 깊이 있는 학습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했다.
역설적이게도 중학생들이 고등학교 가서 수학을 잘하려면 지금 당장 수학에 집중하는 것 이상으로 수학보다는 진도교과가 아닌 영어와 국어에 더 집중을 해서 내공을 쌓을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영어를 기본기부터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놓으면, 고등학교 때 수학 공부하다가 지칠 때 영어공부를 하면서 힐링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영어를 취미처럼 가볍게 해도 유지가 될 것이니 수학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여기서 나온다.
국어도 마찬가지다. 문해력을 갖추고 국어문법을 학습해 두며, 문학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놓는 것이 국어과목 자체의 대비이기도 하지만, 역시 수학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주의할 것은 아무리 조급하더라도 어려운 수준의 모의고사 문제 등으로 단기간에 끝내려 하지 말 것이다. 수준을 벗어난 실전 위주의 국어, 영어 학습은 단계를 넘어선 수학 학습만큼이나 비효율적이면서도 위험하다.
어쨌거나 학생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과 속도이어야 결국 효과를 볼 수 있다.
딸들에게 학기 전 수학 예습을 시키고, 중학교 때부터 국어, 영어 학습을 강조한 것은 1등이나 1등급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 아니다. 진도를 못 따라가서 괴롭지 않도록, 매 수업시간이 다 이해가 되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공부하고, 여유를 가지고 친구들과도 즐겁게 지내며 고등학교 시절이 행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모든 학생들의 행복교육을 바란다. 그래서 수업시간마다 욕먹을 각오로 학생들의 행복해야 할 의무를 거듭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