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혼밥 하는 것이 편했고 지금도 그렇다. 학교에서 식사하러 가자는 제안을 하는 것도 민폐일까 봐 늘 조심스러웠고, 밥 먹는 속도가 상위 1% 경쟁력을 갖춘 나로서는 식사 속도를 맞추는 것도 어려운 미션이었다. 먼저 밥을 다 먹고 기다리는 것도 상대에게 부담을 줄 것만 같았다.
혼밥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으니 굳이 그런 고민을 하고 싶지는 않아 그냥 조용히 혼자 출발한다.
물론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거나 학년실에서 우연히 함께 출발할 때 함께 식사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고, 어떤 때는 유독 학년쌤들과 자연스럽게 식사를 함께 하는 분위기가 루틴이 된 적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혼자서 식당으로 향하곤 했는데...
어느 해인가 동학년을 같이 하게 된 후배 초임교사가 늘 내 뒤에 따라붙었다. 그 후배 선생님 몰래 식사하러 가는 걸 성공했다고 안심하는 순간 뒤에서 놀래키며 졸졸 따라붙던 그 후배의 천진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놓고 나 좀 혼자 내버려 두라고까지 했는데도 일관되게 내가 마치 어미새인 것처럼 졸졸 따르는 그 후배를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귀찮다기보다는 고마웠다.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아줘서.
그 쌤과는 동학년 담임과 동교과를 2년 연속 했고, 초임이라서 처음에는 교생지도하는 느낌으로 진심을 다해 연수도 해주고, 도움을 주었다. 심지어 연애 상담까지 해주었다.
나쁜 남자 스타일에 끌린다는 그 후배에게 나 같은 유형의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까지 얘기해 주었다. 비주얼만 너무 보지 말라는 의미를 그 후배는 찰떡같이 알아 들었다.
같은 시기의 옆자리 후배쌤은 같은 교과는 아니라도 친하게 지낼 기회가 있었다.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연애 과정의 드라마도 생생하게 들었다. 그리고 결혼식에 초대받아 갈 때 눈물이 났다.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결혼했는지를 너무 생생하게 알고 있으니 감정이입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옆 반 담임을 했었고, 다음 해에 뽑기로 학반을 정할 때도 14명의 담임교사 중에 또 하필이면 또 옆 반이 되었다. 뽑기 확정되는 순간, 조용히 혼자 살기는 글렀다는 체념도 잠시 했지만, 덕분에 2년 연속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 두 선생님끼리도 서로 친하게 지내다 보니 점심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굳이 내 옆에서 너무 재미있게 수다를 떨어 참다못해 카드를 주면서 밖에 가서 커피 마시면서 떠들라고 했던 기억도 있다. 선생님들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 두 후배쌤들은 너무 편해서 그런 말을 해도 서로 불쾌하지 않고 웃어넘길 수 있었던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그 후배들도 내게 직언과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커피후배쌤은 큰딸 베이스 기타 실용 음악전공을 반대하니까 내게 이랬다.
"학교 애들이었으면 기타 같이 쳐주면서 격려하고 응원해줬을 거면서 딸한테는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난 학생들에게만 집중하느라 동료교사들의 관계에 에너지를 많이 쏟지 않는 편인데, 내가 애쓰지도 않았는데 늘 그렇게 존중심과 친밀함을 보여주어서 감사한 날들이었던 것 같다.
학년 담임쌤들의 분위기가 유독 좋은 해가 있다. 그럴 때면 학년을 마치고도 정기적인 계모임을 추진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거의 나 혼자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런 나를 잘 알고 있던 선생님들은 평소 나를 거부하거나 거리를 두지는 않았지만, 그런 결정을 존중해 주었고, 어떤 해에는 마치 왕따시키듯 그 모임에서 나를 선제적으로 제외해 주었다.
적어도 내게는 왕따가 배려라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내 담임 경험 25년 중, 가장 암울했던 때는 남자담임선생님들로만 구성되었는데 너무 선생님들끼리 분위기가(?) 좋을 때였다. 모의고사 때마다, 시험기간 때마다 멀리 학년회식을 갔다. 술을 전혀 못하고, 특히 남자 선생님들 간의 사교적인 모임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그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초기에는 거의 섬처럼 뚝 떨어진 뜬금없는 나이 차이의 압도적인 막내였기 때문에 대화에 끼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운전을 안 해서, 멀리 모임을 갈 때마다 혼자서 일찍 돌아올 수도 없었다.
올해는 교직 경력 최초로 11명의 담임교사 중 나 혼자 청일점이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고 유쾌하며 분위기가 너무 좋다. 사교성이 없는 나조차도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편안해지고 존중받고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분위기다.
선생님들끼리도 이렇게 유쾌하고 즐거운 조합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보통 소위 빌런이 한둘 씩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담임 멤버 중에는 하나도 없다고.
그러니까 한 쌤이, 빌런이 없다고 생각이 되면 자신이 빌런일 수 있다는 농담을 던지셨는데 난 조금은 심각해졌다. 내가 빌런일 것만 같아서ㅠㅠ
모두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부족한 모습도 굳이 숨기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면서 지내는데,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낯선 남자 같은 나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부담을 줄지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 전 학년 회식 가기 전에도 학년부장님은 전원 참석을 확인하면서 일부러 내게 참석할 건지를 꼭 찝어 물으셔서 선생님들이 다 웃으셨다. 소위 문제교사로 찍힌 거냐고 하면서..
그게 오히려 모임에 적극적이지 못한 나를 존중하면서 배려하는 걸로 느껴졌다.
학년 회식할 때 너무 분위기가 좋아서 겨울방학 때 1박으로 노천에서 온천을 하는 코스로 추진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나왔다. 모두 수영복을 사야겠다는 얘기 끝에 티셔츠와 반바지도 가능하다면서 내게도 당연히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내게는 온천은 안 해도 되니 바다 보면서 블로그 쓰면 될 거라고...
그래서 내가 숙소는 큰 방 하나만 잡으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은 난 모두 여선생님들만 계신 방 하나에 머물 수 없으니 제발 왕따시켜 달라는 의도였는데, 화장실 딸린 큰 방 하나 해달라는 말로 오해하셨다ㅠㅠ
이런 대화 끝에 학년부장님께서 내게 학년 분위기가 어떠냐고, 불편하지 않냐고 물으셨다.
난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난 불편하지 않은데 내가 불편함을 끼치는 것 같아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학년 여행을 따라갈 수 없을 거라는 단호한 거절도 그 자리에서 하지 못했다. 갑분싸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단 추진한 후 나 혼자 조용히 빠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다.
늘 학년 친목에 빠지려 했고, 그게 내 모습인데 이번만큼 거절하기가 어려운 적은 없었고, 이번만큼 미안한 적도 없었다고.
학생들에게만 집중하면서 동료교사들과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지내왔는데, 그런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시며 넉넉하게 품어주시는 선생님들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너무도 잘 느껴져서... 죄송스럽지만 감사했다.
아무리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해 주시고 계시더라도, 나의 최소한의 노력과 애씀이 없다면 너무 미안할 것만 같아서... 함께 어울리는 친화적 분위기에서의 약점은 그대로 두면서, 그저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분야에서 필요한 업무를 자발적으로 하고, 자료도 공유하려 하고 있다.
약점에 매여 주저앉지 않으면서도, 빌런이 되지 않으려는 나름의 몸부림인 셈이다.
물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학생들이 받아주기만 한다면, 수업은 물론, 수업 외적으로도 상담하고 학습코칭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저 난 존재 자체로 무력한 민폐 교사일 것이니.
그렇게 죄송한 마음을 안고서라도 한계를 인정한 후의 선택과 집중에 올인하는 것이 나의 일관된 일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