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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독립을 응원하는 부모 역할의 역설

by 청블리쌤

지난 설에 이어서 이번에도 역귀성을 했다. 대구로 내려오는 표를 구하기도 힘들었지만, 대학생인 딸은 바빴다. 전에는 학원 강사를 부업처럼 해서 매여 있었는데, 알바를 그만둔 이후로도 부업처럼 음악활동을 하고 있어서 연휴에도 시간 내기가 어려웠고, 해야 할 대학 과제들도 있었다. 집에 내려오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고 걱정하며 그냥 그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이번엔 내가 올라가서 2박 3일을 딸과 함께 지냈다.


명절 연휴에 딸을 홀로 둘 수는 없었지만, 올라가기 전부터 두렵고 걱정되었다. 체력도 걱정이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딸과 지내다가 집에 오려고 헤어지는 순간이 너무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게 더 큰 두려움이었다.


역으로 향하기 전 딸을 안아주고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딸은 여전히 꿋꿋하게 잘 지내겠지만, 늘 곁에 둘 수 없다는 물리적 거리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마치 한껏 가까운 곳에서 지내던 절정의 순간에 롤러코스터처럼 갑자기 내려오는 느낌이, 떨어져 지내는 순간을 너무 각인시키는 아픔으로 다가와서, 만나서 반갑고 기쁘게 지냈던 깊이만큼 깊은 슬픔의 절정을 또 마주해야 했다.


지난번 너무 오래간만에 만났을 때 딸은 헤어질 때 내게 눈물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너무 꿋꿋하고 담담해서 더 슬펐다.


올라가는 첫날 갑자기 연락을 했음에도 서울에 있는 삼촌가족과 고모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딸과 동행할 수 있었다.


딸이 아기였을 때부터 무한한 사랑을 쏟아주었던 그들의 존재가 성인이 된 딸에게 먼 기억으로만 잔재해서 어색함이 없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그 내리사랑을 받기만 해도 되었지만, 성인이 되었다면 교감을 위해서는 한쪽의 절실한 마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고3 때까지 살았던 동네를 지나쳤다. 거의 20년을 지내던 곳이었고, 그 지역의 곳곳에 지리적 기억에 살아왔던 추억들이 함께 저장되어 있었는데, 기차로 잠시 지나치는 찰나의 순간에도 낯설음이 가득했다.


기억 속의 그 공간과 지리가 변화를 담은 세월의 흐름에 업데이트되지 않은 오류로 인한 낯설음일 것이다.


그렇게 한때 소중한 인연이었더라도 물리적 거리를 극복할 수 없을 때쯤에 관계의 어색함이 생기기 되는 것은 더 이상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며 업데이트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딸들 생각이 났다. 아빠, 엄마 품이 아니면 안 되었던 딸들은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세계 속에서만 살았었고, 점점 그들의 세상이 넓어져도 한동안은 불리불안증을 느끼는 것과 같이 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모와 삼촌처럼 이미 오래전 헤어진 연인처럼 현실에서는 부모와도 모든 일상을 공유하며 지내지는 않는다. 그나마 딸은 엄마와 아빠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편이어서 거리가 더 멀어지지 않을 뿐이다.



성인이 된 자녀는 이미 엑스(ex)자녀가 된 것은 아닐까?


험악하게 자녀가 독립한 경우 의무적인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아니라면 대화의 단절이나 사실상 결별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며, 그나마 이별 같은 독립을 잘 이뤄냈다면 이후에도 쿨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부모는 여전히 기억 속에 산다. 자녀가 온전히 부모만을 바라보던 그 시절의 그리움으로, 아직도 그때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그 착각이 현실과 부딪히면 관계에 문제가 생기며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딸이 그저 대구의 대학교에 진학하여 집에 머물렀다고 해서 그 물리적 거리 유지만으로 예전의 절대적인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이어지거나 재현될 수 있었을까?


같은 지역의 대학을 다녀도 자취를 시키는 것이 서로의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는 조언도 괜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춘기라는 예고편 이후 자녀의 독립은 그런 결별을 의미한다. 부모가 너무 집착하지 않고, 너무 험악하지 않았을 경우 그나마 예전의 관계는 아니라도 연락이 이어지며, 정서적인 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부모의 역할도 시기에 따라 재정의 되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사춘기 이후에는 뭐라도 다 해주려는 부모의 과잉 친절과 열정 가득한 간섭은 자녀를 위한 일이 아닐 수 있다면, 사춘기 이후 물리적 거리와 관계없이 관계의 주도권은 자녀가 쥐고 있으니, 부모는 섭섭함과 아쉬움의 마음을 인정하지만 발현되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2박 3일 동안 난, 딸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빠를 반겨주고, 이후 만남을 진심으로 기약하면서도 아쉬워하며,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한 딸의 모습 그대로여서 너무 고마웠다. 딸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게 당연한 일은 아닌 걸 알고 있으며, 그래서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3일째 첫날 만났던 고모도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고모가 <유괴의 날>이라는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돈 없는 친근한 아빠와 부유하지만 관심이 없는 아빠 유형 중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고모는 딸의 입장에서 일정 시간 함께 지난 후에는 독립을 이루게 되니 아빠의 역할에 대해 큰 기대가 없는 경우라면 후자가 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같았다.


딸은 전자를 선택했다. 부유한 가정에 대한 동경이나 부러움이 없다는 것이니, 어린 시절 돈 대신 따뜻한 관심으로 퉁친 아빠에 대한 인정인 것 같아서 혼자 흐뭇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남편이라면, 그러니까 돈 없는 친근한 남편과 돈 많은 무심한 남편 중 선택이라면, 얘기는 다를 것이라 했다. 일정 기간 지나면 독립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다른 변수가 없다면 남은 생을 함께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 다 남편이라면 전자여야 한다고 합의(?)를 봤다.


한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이긴 하지만, 그 현실적인 밀착적 역할은 시한부였던 것이었다. 그 이후에는 존재 자체로서만의 의미가 더 커질 것이었다.


딸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무뎌짐이 더 커지는 거라는 걸 실감하는 나날이다. 예전과 다른 부모 역할의 가능성에 대해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3박 4일의 수학여행도 딸이 너무 보고 싶어 힘들었다. 지금은 그것만큼만 가까운 거리가 허락되고 나머지 시간은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느낌이다. 수학여행 가듯이 잠시 다녀가는 것 같다.



딸은 대학교 입학 후 첫 학기는 코로나로 집에서 대학수업을 들었다. 2학기에 대면수업이 공식화되고 대학으로 떠나게 된 후에도 난 딸을 볼 수 있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더 흐른다고 그 그리움이 사라지며 편안할 수는 없겠지만, 그걸 잊을 정도로 뭔가에 몰두하는 것이 내 해결책이었다. 학교 수업도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일상처럼 전개되어 더 몰입한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는데, 마침 딸이 올라간 시기와 내가 외부 강연을 시작하게 된 시기가 일치했다. 난 강연의 부담감을 설렘으로 바꾸어 강연 준비와 강연에 몰입했다. 늘 해오던 학교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 외의 활동에서도 열정을 다하고 있다는 굳건한 버팀목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


딸은 그런 내게 미래에 확신을 가질 수 없어 불안한 청년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아빠 나이가 되어서도 그렇게 행복하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희망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찬사와 같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둘째 딸도 재수의 힘겨운 과정을 잘 이겨내며 치열하게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언니처럼 물리적 독립까지도 이뤄내려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 부모의 욕심으로 집에 가둬둘 수는 없는 일이니 진심으로 그리고 눈물로 응원하고 있다. 매 순간 달라질 부모의 역할에 민감하게 잘 반응하고, 다른 의미와 방법으로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가 되려는 고민과 애씀과 기도는 계속될 것 같다.


머무르는 건, 그런 멈춤은 관계에서도 성장도 발전도 아니다. 아픔이 전혀 없는 소중한 관계의 지속도 없다.


헤어짐이 두려워서 만남 자체를 주저할 수도 없다.


교사로서 누구 못지않게 (학생들과의) 이별을 삶으로 실현해왔던 나는 여전히 아픔을 면제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고민하며 자리를 지킬 것이다. 나의 만족감과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의 기준이 아닌, 겸허하게 아이들의 기준에 맞춰가며, 세밀한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춰갈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눈만 침침한 게 아니라, 귀도 어두워져 간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라는 것이 아니라 더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사랑의 기회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딸 집을 나서서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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