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작가의 독서와 인문학

by 청블리쌤

김진명 소설가의 첫 번째 에세이다. 인간적인 작가의 모습들이 그 삶의 체험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그중 격하게 공감하여 원문 그대로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독서와 인문학에 관한 글 중 일부를 소개하려 한다. 모두에게 삶의 의미와 풍요로움을 권하는 그의 진심 어린 조언이 모두에게 가닿기를...



<독서로의 권유>


나는 일단 장시간 책을 보는 습관을 키우기 위해 재미있는 책들을 양으로 읽어내기 시작했고 지금 생각해도 이건 무척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독서 지도는 책을 좋은 책, 나쁜 책으로 나누어 좋은 책을 읽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악서와 양서를 구분하는 기준도 어렵거니와 나는 악서도 양서 못지않게 나에게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만화, 문학, 사회 과학, 철학, 종교, 자연 과학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가장 어려운 책 한 권을 읽어보자던 나의 목표는 인간이 쓴 책이라면 모두 한번 읽어보자는 목표로 바뀌게 되었다.


...


독서는 자연히 사색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 나는 많은 시간 세상의 여러 분야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되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나의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세상의 모든 정보는 뇌 속의 데이터베이스와 의식에 결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소매치기의 안창따기 수법에서부터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까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행동과 생각이라면 무엇이든 낯설어하지 않고 어떤 종류의 소설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독서에는 무엇보다도 시기가 중요하다.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독서는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뇌 속에서 다른 기억 및 정보와 결합해 의식을 개발하고 창의력의 기반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릴 때의 풍부한 독서만이 문리를 트이게 하는데 이 문리가 트여야만 비로소 형이상학적 복합 사고가 가능하고 진리 규명이라는 인간의 최고 목표를 실현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삶에는 여러 길이 있고 어떤 길에도 다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독서와 사색을 할 시기를 놓치고 난 인생은 어떤 성공을 거둔다 해도 아쉽기만 하다.


<인문학의 힘>


인문학이 추구하는 힘은 실용적, 실질적 학문과는 갈래가 아예 다르다. 의학이나 공학 등은 직업을 구하고 평생의 벌이가 되는 공부지만 인문학 공부는 사회에서의 쓸모와 연결이 그닥 잘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 공부는 다른 실용적 공부에 비해 비교할 수 없는 힘의 우위를 갖는다. 어떤 힘을 갖느냐고? 그것은 바로 내면의 힘이다.


힘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외면의 힘. 바로 지식, 지위, 돈, 외모, 소질, 빽 등 눈에 바로 보이는 것으로 인간은 누구나 이 힘을 가지려 태어나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처절한 경쟁 대열 속에서 몸부림친다.


하지만 이 힘은 가지면 가질수록 자신을 상실한다는 단점이 있다. 부모를 호강시켜 드리고 형제자매와 이웃을 돕기 위해 돈을 갈구하지만 오히려 돈 때문에 거꾸로 가까운 사람과 원수지간을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면의 힘은 이와는 전혀 다른 갈래에서 출발한다. 고급 차나 명품 가방처럼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가지면 가질수록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이 차오르며 삶이 떳떳하고 행복하다.


‘나는 돈을 많이 벌지 않겠다. 조금 벌고 그 대신 검소하게 살겠다. 그리고 나의 열정과 시간을 의미 있는 일에 쏟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면의 힘이 외면의 힘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이 내면의 힘을 가지면 어떠한 외면의 힘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


인문대 학생들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 이 보이지 않는 힘을 키운다. 다른 실용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운 걸로 평생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문대 학생들은 이 내면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력서를 낼 때 남들은 분자 화학을 했느니 초전도체 공부를 했느니, 변호사 자격증이 있느니 한눈에 들어오는 기술이나 능력이 있지만, 인문대 학생들은 보이지도 않는 내면의 힘이 있다 써낼 수 없는 노릇이니 무척 불리해 보인다.


그러나 불안할 수밖에 없어도 실력 있는 인문학도는 이미 불안이 인간의 존재 조건임을 알기 때문에 당황하지도 극단적으로 반응하지도 않는다. 인문학 공부를 한 사람은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상황에 대해 다만 실용적, 실리적 결과로만 반응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와 푸대접을 즐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소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자아의 품위를 간직하며 어려움의 한복판에서 오히려 상대를 위해 베풀기도 한다.


인문대 학생들에게는 전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삶 전체가 바로 전공이다. 문제는 어떠한 삶도 살아낼 수 있는 이 거대한 힘을 대학 4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인문학 공부를 해 어떤 기술이나 능력보다 큰 힘을 기르려는 학생은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 모든 불안과 의심을 누른 채 끝까지 읽고 또 읽어 평생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큰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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