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것인가, 맞춰주는 것인가(사랑과 결혼의 현실)

by 청블리쌤

결혼의 관점으로 원래부터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서로에게 맞춰주는 것일까?

중매결혼의 이혼율이 연애결혼보다 더 낮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중매결혼은 상대를 그냥 받아들인 걸 전제로 이후 어떻게 맞춰가고 지내야 할지 방법에 초점을 맞추지만, 연애결혼은 자신의 선택에 집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택에 초점을 맞추면 결혼해서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니까.


얼마 전 학교 선생님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결혼에 대한 담소를 나누었다. 어떤 분은 20년이 지나서 남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점도 있다고 했다. 그게 발견하고 싶지 않았던 안 좋은 점이라서 속상하다고 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선생님들의 의견이 모아졌고, 내게도 질문이 던져졌다. 난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눈치 없이 혼자서 지금 아내를 선택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아내도 같은 생각이냐고 물으셔서 그럴 거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고는 겨우 눈치를 챙기고 이렇게 수습을 했다.

잘나서가 아니라, 서로가 아니면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현실 인식인 거라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내게 물었다. 뉴진스와 같은 또래가 된다고 가정하고 (선생님이 덕질하는) 뉴진스와 지금 사모님 중 선택하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아내라고 했다.

아이들은 결혼에 대해 서로 마음을 맞춰가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는 듯보였다. 그저 덕질의 관점으로 내게 묻고 있었다.


어차피 완벽한 짝은 없다. 선택에 물론 신중해야 하지만, 선택 후에는 선택 자체의 정답 여부를 바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가는 이후 과정만 남은 것이다.


요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다. 감정이입을 하면서 어떤 인간관계에서든 말과 행동의 실수나 감동 포인트를 알아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솔직히 재미도 있다.

<돌싱글즈>라는 프로그램에서 고부간의 갈등으로 이혼했다고 알려진 한 출연자가 노력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상처로 이혼을 하고 나서 새로 만난 남자의 부모님과 영상통화에서 그저 웃어주며 받아주는 한 마디에 전화를 끊고 감격하여 우는 장면이 나왔다. 사랑은 아무런 노력과 조건 없이도 가능하다. 자격을 갖추고 조건을 맞추었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시작되면 서로의 성장도 시작되는 것이다.


결혼은 당사자만의 로맨스는 아니다. 책임과 헌신이 따른다.


수업 중 한 학생이 사랑이 뭔지 물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귀찮음을 무릅쓰는 것!


그렇게 시간과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거나, 그걸 강요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기뻐한다.

하고 싶지 않았던 일조차 넘어서도록 해주는 것이 사랑의 힘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간극은 사랑이 메운다. 그 사랑이 충분하지 않으면 호감만으로 현실의 관계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운명 같은 만남이 보장해 주는 건 없다. 이후의 노력을 좀 더 수월하게 해주는 것일 뿐 서로 맞추려는 노력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평생 배워야 할 감정이며,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이기적인 울타리를 겨우 넘어서서 타인과 진정한 교감을 이룬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합일(oneness)을 말했다. 합일은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는' 형태다. 자기 욕구로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하며 관심, 책임, 존중, 지식을 바탕으로 함께 성장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기적인 자아를 넘어서지 않고 타인에게 가닿을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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