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먼 곳을? 대학 인서울 현상이 설명되다>
지역 가까운 곳에도 이월드(구. 우방랜드)라는 꽤 큰 놀이동산이 있는데도 에버랜드를 학생들이 원했다.
일단 놀이기구 스케일이 다르고, 새로운 모험을 하고 싶은 설레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버스로 왕복 7시간 걸리는 데다가 인기 종목을 타거나 판다를 보기 위해 긴 대기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 어른들이 보기에는 현실감각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라도 학생들이 대학을 인서울하려고 고집하는 이유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요즘 세대는 부모님이 영예롭게 여기던 지방거점국립대학으로 설득하며 인서울을 포기시킬 수 없으니까.
아이들을 잡아두려면 지방에도 소위 에버랜드 같은 시설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투표로 졸업여행지가 결정되는 순간 나를 포함한 많은 쌤들은 좌절했다. 그 긴 여정을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담임쌤들은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즐거운 동행을 해주었다.
<중1 때의 추억, 극강 "I"가 교사가 되다>
내 개인적으로 중1 때 소풍으로 갔던 일상의 테두리에 있던 그곳(그때는 용인자연농원이라 불렸다)을 떠나, 중2 때 수학여행으로 지나쳐 갔던 여행지 가까이에 살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예전의 일상 지역을 여행하게 되다니 나의 삶도 기구하게 느껴졌다.
상상도, 예상도 못 했던 미래가 지금 나의 현실이 되어 있다.
중1 때 소풍으로 에버랜드 갔을 때 혼자 오락실에서만 시간을 보냈던 기억도 떠올랐다. MBTI 극강 "I" 인 나는 중1, 고1, 대1 모두 힘들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랬다. "I" 끼리 모이면 모두 "E" 같아 보인다고. 일대일로 대화할 때는 "E"가 되기도 하는 나는, 3인 이상의 모임이나 공동체에서 난 늘 벙어리가 된다.
교사되어서도 진짜 친해지려면 3년이 걸리기도 했다.
그런 내가 교사를 하고 있다니.
아이들도 최근 MBTI 수업할 때 대부분 나를 "E"라고 단정했다ㅋㅋ 수업이라는 무대에서, 나 혼자서 말할 수 있는 기회에 단련된 페르소나가 훌륭하게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였다.
<무책임한 교사가 되려는 유혹>
수원에 있는 큰딸에게 아빠를 만나러 올 수 있냐고 했다가 까였다ㅠㅠ 밤샘일정이 있어서였다.
근처 사는 동생들도 못 만나고 내려가는 약오름도 있었다. 힘겹게 올라간 거여서.
어차피 버스로 바로 내려가면 되고, 학생부장쌤이 동승하시지만 나 홀로 여기 남아 딸을 만나고 가고픈 공사 구별 못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잠시 했다. 말도 안 되는 무책임한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딸들이 어릴 때 학교에 오래 머물러 함께 있지 못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특히 난 열정이라는 명분으로 굳이 안 가도 되는 시간에 일찍 학교에 가거나, 늦게까지 남기도 했다.
교사라면 학교가 우선인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그게 가족들에게 미안함의 이유가 되고 있다.
<에버랜드를 돌아보며>
에버랜드에서 힘든 몸을 일으켜 학교 학생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순회를 했다.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너무 넓은 곳에서 아이들은 어딘가에서 줄을 서 있거나 체험을 잘 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 곳곳에서 오래전 딸들과의 추억을 꺼내드는 추억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 작년에는 졸업여행은 둘째 딸 수능일에 딸들의 어린 시절 이월드 추억여행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딸들ㅇ디 중학교 즈음 추억이었다.
아이들은 동화 같은 삶보다 스릴과 모험을 무한 반복했다. T 익스프레스를 오랜 시간 기다려서 허무하게 체험하고 나서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더블 락스핀(아래 사진)만 계속 탔다. 그 앞을 서성이며 그냥 낯설어지는 추억을 소생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흩어진 학생들 원격관리>
학년부장님의 아이디어로 절대로 혼자 다니는 일이 없도록 4명 이상 그룹을 만들라고 했고, 조장도 정했다. 조장은 활동 중 두 번 조별 사진을 찍어 인증샷을 보내도록 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시작과 모임 시간 제외하고 한 시간마다 보내라고 했다. 혹 조원 중 누군가 실종되지 않도록 잘 배려하라고 강조했다. 모두가 다 같은 활동을 마음을 맞춰 하기는 힘들었겠지만, 최대한 서로 조율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배우기를 바랬다. 그리고 혹 소외되는 학생이 없기를 바랬다.
아이들은 거의 약속을 잘 지켰다. 놀라울 정도로...
연락을 안 한 조장에게 전화를 하니까 "지금 바쁜데"라고 하면서 인증샷을 곧 보내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조별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어떤 그룹은 덜 친한 학생들도 함께 절친처럼 모아서 사진을 찍었다. 자기들끼리 다니고 싶었을 텐데 배려를 실천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체험활동을 대하는 반 아이들의 자세>
체험활동 복장은 학교생활복이나 체육복으로 정했고, 날씨가 추울 것으로 예상되니 겉옷은 사복을 허용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반발이 있었다. 그래도 외부에 나가는 건데 예쁘게 입고 갈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벌점 받고, 야단맞을 각오로 완전 사복을 입고 온 애들도 보였다. 착한 애들만 손해를 보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그런 착한 아이들이었다ㅠㅠ 미안할 정도로 모두 규칙을 잘 지켰다.
아침에도, 휴게소에서도, 집으로 출발할 때도 반 아이들은 시간을 모두 다 잘 지켰다.
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가 욕설을 쓴 학생을, 담임과 학생부장 자리 바로 뒤편에 잠시 격리해놓고 주의를 주었던 일을 제외하고 아이들은 정해진 규칙 내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 버스 탑승의 피로감과 실제 활동시간이 너무 적었다는 아쉬움을 넘어서서 모두 즐거워했다. 누군가는 풀메(풀메이크업)도 했는데 4시간 반밖에 못 놀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고 투정을 부리긴 했다. 선생님 앞에서 메이크업한 걸 자랑하다니ㅋㅋ 그래도 귀여웠다.
이 정도면 담임교사인 나는 그냥 아무 고생 없이 거저 다녀온 느낌이었다. 물론 장시간 버스탑승은 내게 큰 도전이었고, 아이들에게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윗지역은 더 춥다는 말을 반복해놓고 정작 나는 더워서 옷을 벗어던지면서 다니기가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 누가 봐도 추워 보이는 복장으로 덜덜 떨면서 다니며 말 못 할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ㅋㅋ
아이들의 설레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무한 감사였다.
<체험활동 마치며 남긴 문자>
집으로 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걱정하고 계실지도 모르는 부모님들께 단체 문자를 발송했다.
차가 막혀서 도착예정시간인 6시 반보다 좀 늦을 것 같습니다 현재 구미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단 한 명의 지각도 없게 잘 챙겨주시고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담임 드림
부모님들께서 오히려 감사의 답문을 보내주셨다. 내가 더 감사했다.
도착 순서대로 해산하기로 했는데 우리 반은 세 번째로 도착했다. 두 번째 도착한 반 아이들이 내게 몰려와서 자기들 반이 2등으로 왔다고 자랑해서 축하해주었다ㅋㅋ
담임쌤들 단체톡방에 도착 및 해산을 보고할 때 말 몇 마디 덧붙였다.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자, 체험활동 마무리 소감이기도 했다.
11반 무사히 도착하여 해산하였습니다
부장님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한 분의 수고가 이렇게 많은 학생들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였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담임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센척했지만 솔직히 추웠는데 쌤들의 관심 어린 걱정의 말씀 덕분에 몸까지 따뜻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소처럼 먼저 훌쩍 사라져 죄송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