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 영화번역가의 에세이라서 냉큼 책을 펼쳐들었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번역을 잘 해도 원문의 손실은 막을 수가 없고, 그 어감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다. 더구나 영화번역이라면 제한된 자막의 글자수를 넘겨서도 안 된다.
번역할 때 직역과 의역에서 늘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데 영화번역은 창의역의 영역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원문의 내용을 넘어서는 정보와 감성을 전달하는 소위 초월번역까지 하고 계신 분이라서 늘 감탄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의외로 그의 인간적인 면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어서 더 매력적이었다.
원래 이 분은 말을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분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봤다. 번역이라는 것은 언어의 기능적인 면만으로 완성되는 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자신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오역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노력하려는 자세에서 프로의 정신도 엿보았다. 번역가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너무 흥미로웠다.
그중 특히 교사인 나와 맞닿는 부분을 극히 일부분만 발췌하여 몇 번에 걸쳐 나의 이야기를 더해서 정리해 보려 한다.
<강연을 수락하기 어려운 건>
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한 강연 요청이 올 때마다 흔쾌히 수락하지 못하는 건 솔직히 강연료 때문이기도 하다. 이게 웬 속물 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인(프리랜서)들도 강연을 거절하는 첫 번째 이유가 보통은 강연료다.
단순히 큰돈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프리랜서나 사업가들이 강연을 한다는 건 일 할 시간을 빼서 간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강연으로 얻는 수익이 최소한 집에서 작업하는 수익과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 그래도 오가는 시간이며 교통비며 뭐며 빼면 어차피 집에서 일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론 손해지만.
그런데 아주 극소수의 대학을 뺀 대부분의 대학에서 규정으로 정해놓은 외부 인사 강연료는 그리 크지 않다.
...
드물긴 하지만 아예 여유가 많이 날 때면 강연료 한푼 없이 중고등학교 강연을 나갈 때도 있다.
유명 강사도 아니면서 괜스레 민망하게 작가에 감정이입했다.
무슨 관종도 아니고 다음 주에 있을 대구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학부모 대상 영어학습법 강연에 대해 학교 선생님들께 이렇게 메신저를 보냈다.
영어사교육으로 고민이 많으실 (초중)고등 학부모님을 위한 자녀 자기주도영어학습방법에 좋은(?) 강연 하나 추천드립니다. 필요하실 분들께만 알려주세요. 선생님들도 신청 가능합니다.
대구교육청에서 실시하는 대면 무료 강의이며 12월 13일(수) 저녁 7시부터 2시간 정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래 링크에 안내되어 있습니다. 너무 뻔뻔해서 죄송합니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273937008
많은 분들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셨고, 심지어 강의도 몇 분 신청하셨다. 그리고 존경하는 후배 선생님 한 분이 이렇게 회답하셔서 옆자리 선생님과 함께 폭소했다. 이렇게 올려치기 하면서도 웃기는 격려글이라니, 그분다운 응원이었다.
사설로 나가셔야 하는데.. 교육청에서 하는 거라 강사 수준에 비해 강의료가 너무 적을 듯..ㅋㅋ
학교나 교육청 강의는 저자의 얘기대로 정해진 강의료가 책정되어 있다. 직급에 따라서도 다르다. 강의 시간당, 원고료 페이지당 얼마 이런 식으로 책정되고, 원고도 시간당 정해진 페이지를 넘어서 지급되지는 않는다.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사설기관인 진학사에서 주관하는 학부모대상 온라인 강의도 했었는데 시간당 얼마를 지급받았다. 물론 보통 시급에 비할 수 없는 전문성을 인정받았지만, 재능기부 형태의 무료 학부모 멘토링과정이라서 많이 지급 못해 미안하다는 담당자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도 난 불러주면 무조건 간다. 어떻게든 시간 내서 간다. 옆의 선생님은 나의 건강을 더 걱정해 주신다. 그렇지만 감당할만하니까 간다. 강의료를 물론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계획에 없던 덤으로 주어지는 강의료이므로, 없어도 살았을 것이니까... 그보다 만남의 기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번역가님과 비교하는 건 아니다. 난 프리랜서가 아니니까... 고정 수익이 있으니까 이런 여유 있는 소리를 하는 거다.
거절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건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강의가 너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강의료가 없어도 수락할 것 같기는 하다.
우리학교에서도 교사, 학생 대상으로 3번의 강의를 했고, 직전 학교에서도 2번의 강의를 했다. 자기 학교에서는 강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도 했다.
한 번은 사전에 강의료 얘기가 없었던 교사연구회에서 강의 후에 강의료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화가 나지 않았다. 강의료보다 그 자리에 초대된 것 자체가 내겐 기쁨이고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게도 기회비용을 따져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강연이 행복해도 학교의 담임과 교사로서의 역할에 우선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수행평가 관련해서 수업 교체가 불가할 때 강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했었다.
작가도 소수의 학생들 그룹 모임에는 무보수라도 즐거움과 행복으로 참여했다고 했다.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기회와 가치는 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