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값 오류 중에 더 큰 은혜로 함께 하시니

CCM 하나님의 열심

by 청블리쌤

행복은 수입보다 넘치지 않는 지출!

간단한 논리다. 수입의 크기에 상관없이 지출이 수입을 넘지 않으면 빚지지 않고 사는 거라고. 수입에 욕심내기보다 지출을 조절하면 되는 것이니 마음의 부담도 없어 보인다.


내 삶의 목적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삶의 가치를 추구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부자가 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지금 아내와의 결혼을 처음에 반대하셨던 것은 부부교사가 아니라는 것만이 유일한 이유였다. 그 배경에는 경제적 형편이 있었다.

적어도 나의 현실에서 가장 최상의 경제적 여유는 부부교사라는 옵션뿐이었을 것이니, 그것만이 결혼의 목적이라면 아버지의 생각은 그보다 더 합리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어머니께 이랬다. 아이들 영어학원 안 보내고 내가 가르치면 되고, 아이들 피아노는 아내가 가르치면 된다고. 그리고 형편에 맞게 살면 된다고. 그리고 난 수입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그후로 이제까지 후회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형편에 맞게 사는 법을 상기시키셨다. 어린 자녀들에게 신용카드 돌려막기까지 이야기하셨다. 그 정도로 가장으로서 힘들다고, 그러니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아껴서 살아야 한다는 의도셨을 것이다. 부모가 되어보니 남들만큼 다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늘 대학 보낼 형편이 안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겐 재수해서도 서울대와 경북대 사이의 그 어떤 중간 옵션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상처받았던 내가 그런 얘기를 딸들에게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큰딸에게는 우리 형편으로 서울대, 서울시립대 외에는 서울로 보낼 수 없으니, 그 대학 아니면 경북대를 가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서울로 갈 길을 막아 둔 것은 아니지만, 말로는 “행복할 만큼만” 하면 되고, 마지막 걸음을 내딛는 곳이 도달점일 것이라고 해놓고서, 선택권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큰딸은 옵션에 없었던 성균관대를 다니고 있다. 내가 했던 말이 주입이 되었었는지, 딸은 공대 공부를 하면서 계속 학원강사와 과외를 병행하면서 자신의 생활비와 용돈을 다 벌었고 최근에야 알바를 그만두고 학업과 음악에 대한 열정에 몰입하고 있다.

둘째 딸에게는 언니의 선례가 있으니, 중경외시 라인까지가 아니면 인서울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중경외시 라인 이상으로 간다고 빚을 내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는 되어야 빚을 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 말이 아이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을 줄은 몰랐다.


사업을 할 때도 초기 자본을 위한 다른 이들의 투자가 필요한 것처럼 딸들에게도 부모로서 그 정도의 초기 투자만 필요한지도 모르는데 그 초기 시점에서부터 걱정이 앞선다.


교육공무원이라서 국가장학금이나 다른 장학금을 받는 이들보다 수입이 많지 않아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단지 공무원연금을 담보로 학자금 대출을 받는 혜택은 있어서, 일단 등록금은 대출을 받아 주고, 졸업 2년 후부터 월급에서 상환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두 딸의 상환이 겹치는 그 구간을 벌써 걱정하고 있다. 물론 충분히 현실적인 고민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꿈과 삶의 진로를 다 보장해 주고, 망설임 없이 원하는 선택을 다 존중해 줄 정도로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에 한없이 초라함을 느꼈다.


이제까지는 수입보다 지출을 넘치지 않고 욕심을 줄이면서 살면 되었는데, 아이들이 독립하는 기간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이 나중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학비를 다 갚을 능력이 되기를 응원해 주어야 하는데, 아이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일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책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삶을 돌아보니.. 나의 삶은 나의 치밀한 계획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이 실패로 규정하는 내 삶의 좌절조차도 더 크고 은혜로운 기회를 얻게 되는 통로가 되었다.

부모님의 인간적인 걱정을 넘어서 난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경제 형편을 우선순위로 고민하고, 영어교사의 꿈을 이어갈 수 있다는 설렘으로 지방거점국립대학 사범대를 선택하긴 했지만, 4년 전액 장학생으로 다니면서 과외를 해서 오히려 집에 생활비를 보태면서 지냈고, 두 동생들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채워지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도저히 인간적인 계산으로 나오지 않는 딸들의 그 길을, 독립의 길이라서 더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함과 둥지를 떠나려고 하는 부모의 아쉬움이 혼재하여 온갖 걱정이 앞서는데...

나의 계산값과 예측 가능한 덜 불안한 길에 아이들을 묶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동안 설명할 수 없는 넘치는 은혜로 길을 인도하신 주님만 바라보아야 할 그 시점에 이른 것 같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잠시 떠나 있던 나의 시선이 주님께 향할 그 강제적 상황이 오히려 내게 축복 같은 은혜이기를...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로 도움을 구할 수 있기를...


지난주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인용하셨다. 인생은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것보다 사막에 비유하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이다. 사막을 가로지르다가 바람이 불면 있던 길도 사라지고, 새로운 길이 나타나기도 하니, 가지고 있던 지도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지도보다 나침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계산과 계획에 따른 나의 지도보다, 나침반 같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할 것이라고...



나의 계산 값의 오류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들에 좌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나의 고집을 내려놓고 궁극적인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랄 수가 있는 것이니.. 나도 재수하면서 결국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성취에 대한 좌절이 내겐 더 큰 은혜였고 놀라운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처럼...

내게 더 큰 믿음이 있었다면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고서도 인도하심의 확신으로 더 일찌감치 기뻐하며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 찬양이 떠올랐다. 지금 나의 초라함으로도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있고, 궁극적인 인도하심을 바랄 수 있음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한 것이라는 삶으로 드리는 고백으로...



<하나님의 열심>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작음도 내겐 귀하다

너와 함께 걸어가는 모든 시간이 내겐 힘이라

사랑하는 아들아 네 연약함도 내겐 큼이라

너로 인해 잃어버린 나의 양들이 돌아오리라


조금 느린듯해도 기다려주겠니

조금 더딘듯해도 믿어줄 수 있니

네가 가는 그 길 절대 헛되지 않으니

나와 함께 가자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가주겠니

이해되지 않아도 살아내주겠니

너의 눈물의 기도 잊지 않고 있으니

나의 열심으로 이루리라


하나뿐인 사랑아 네게 부탁이 있다

길 잃어 지친 영혼 돌아보라

나의 품으로 안기어라


조금 느린듯해도 기다려주겠니

조금 더딘듯해도 믿어줄 수 있니

네가 가는 그 길 절대 헛되지 않으니

나와 함께 가자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가주겠니

이해되지 않아도 살아내주겠니

너의 눈물의 기도 잊지 않고 있으니

나의 열심으로 이루리라

네게 그 땅을 부탁한다


https://youtu.be/QNjJfNJrHF0?si=3N3u8QziuAikqVJ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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