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번역:황석희>책을 읽다 2

by 청블리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잘해야지>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다.

... 애초에 노력 없는 재능은 없다.

... 어느 분야든 천재 소리 듣는 사람 중에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 분야의 재능이 있는 데다가 ‘성실’이라는 재능까지 있는 거지.

...

실패하고 배우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이는 성실함. 이런 미련한 성실함은 단순해 보여도 아무나 쉬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조직의 입장에서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치명적일 때가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하지만 개인에게 결과보다 노력이 중요할 때도 있다.

...

뭔가를 성취해 낸 사람을 보면 노력의 방향을 잘못 잡았을지언정 바보 같고 우직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인 경우가 훨씬 많다.



이는 직장 상사뿐 아니라 때로 교사와 부모의 마인드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과정보다 결과를 칭찬한다. 그러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것도 자발적인 열심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단 교사와 부모의 역할은 노력의 방향을 점검해 주는 일이다. 더 열심히 하려는 욕심을 내는 것은 아이 본인의 몫이다. 늘 어른의 기준에서 “열심”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과정은 “행복할 만큼만”, 결과는 “어쩌다 보니”



내가 늘 주장하는 행복교육의 키워드다.

아래 인용한 작가의 글을 보고 놀랍고 반가웠다. 내가 늘 얘기하는 “어쩌다 보니”를 닮아서다.





<어쩌다가 됐어요>

만에 하나 영화 번역을 못 하게 되더라도 다른 일을 하면 그만이다. 물론 많이 서운하겠지만 이 일을 못 한다고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진 않을 거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비자발적 절도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간절한 소명의식이 있는 이들의 자리를 훔친 것처럼.

그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은 여느 사람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다. 대부분은 특별한 의식이나 운명적, 영웅적 서사 따위 없이 그저 철저히 직업인으로 업을 유지하다 보니 그 자리에 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와 같은 민망함 혹은 죄스러움,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우린 우리 자리에서 꾸준히 일해온 것뿐인데 그런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있나 싶었다.

직업의 세계라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빤하다. 동화처럼 발군의 재능과 소명감으로 무장한 사람이 항상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기회라는 게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으니까.



겸손한 프로의 고백이다. 한편으로는 거창하게 준비되고 완벽한 과정을 거쳐야만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희망의 메시지로도 들린다. 작가가 "기회가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묵묵하게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니까.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어쩌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어쩌다 보니” 성취를 하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미래가 불확실한 베팅 같은 과정이라고 해도,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영화번역만이 유일한 운명이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 일을 즐기고 있으니 지금의 성취가 가능했을 것이다. 즐거움은 과정을 지속할 힘과 이유가 되고, 그래서 성취의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며, 혹 원하는 도착점이 아니라도 과정이 즐거웠으면 그것만으로도 큰 삶의 의미와 행복을 이미 성취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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