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은 포기다(Feat. 작가가 된 제자를 만나서)

by 청블리쌤

문예창작학과 졸업작품을 전해주겠다는 제자를 만났다.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한 비매품이지만, 제자의 삶과 아픔과 노력이 담긴 최고의 선물이었다.

집에 와서 작품을 펼쳐보니 초반부터 제자의 삶이 묻어났고, 평소 생각의 깊이와 유려한 문체에 나도 모르게 이야기 흐름에 몰입하고 있었다.



부디 제자가 작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되길...

훗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내게 전해준 초판본 졸업작품의 가치도 떡상하기를...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었고, 중간에 휴학을 하며 졸업작품이 나온 지금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많은 세월의 흐름을 한순간의 만남으로 다 담아낼 수는 없었다.

취조하듯 이어지는 나의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이 제자의 그동안의 삶을 조금씩만 엿보게 해줄 뿐이었다.

각자의 삶으로 기록한 문학작품을 서로 마주하며 피드백을 주고 받는 느낌까지 들었다.



블로그 나의 글들에도 반응을 해주었었던 제자는 <곰돌이 푸우가 되고 싶은 교사>라는 나의 글을 기억하고 곰돌이 푸우 엽서를 일부러 골라서 손글씨로 꾹꾹 눌러 담았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1026818112

전업작가로는 당장의 수입을 보장받을 수 없어서, 제자는 대학 다니면서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졸업을 앞두고는 논술학원에서 가르치게 되었다고 했다.

전공에 집중한다고 영어는 소홀할 줄 알고 준비해 갔던 내 <청블리코스북>이 민망해질 정도로 제자는 영어학습에도 공을 들이고 있었다. 번역 수업을 들으면서, 또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고 나서는 번역한 외국문학을 읽지 못하게 되었다면서..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번역의 거의 불가능한 미션에, 마치 번역으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듯한 무게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영어 원문으로 작품을 보려는 열정을 키워왔던 것 같다.



제자가 준 엽서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단어 외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는 선생님께 배웠던 말을 전해주곤 해요. 스무 번 까먹자고 하면 학생들의 의심스러운 표정을 마주할 수 있어요...



수업시간에 영어단어는 20번 까먹어야 기억으로 정착하게 되니 암기하려 애쓰다 상처받지 말고, 한계를 인정하는 것만큼 용기를 갖고 부지런히 까먹도록 하자고.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암기하지 말고 망각하라고.. 그렇게 읽으라고... 수업시간에 그렇게 얘기했던 걸 제자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담아 두었다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작가의 꿈을 키워가던 제자의 가는 길을 온전히 축복하고 응원하기에는 마주하게 될 현실의 벽이 너무 크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상담할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과 소소한 성취만을 강조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엽서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현재의 제가 과거의 저 자신을 보듬어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시간을 공들여 보내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될 거라던 선생님 말씀을 되새기면서요. 졸업작품집을 전해주며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겨울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선생님께서 기도해 주셨던 제 겨울은 정말 따뜻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눈물이 났다. 학생들에게 해준 이야기가 그들의 마음속에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자리할 수 있었다는 것과, 나의 기도와 나의 진심의 온기가 이렇게 오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유지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물적인 증거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제자에게 해주었던 말이, 교사로서의 나의 존재와 나의 노력이 완벽하지 않아도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될 거라고 제자가 삶으로 내게 화답하고 있었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교육의 영향력을 시연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렇게 함께 성장하고 교감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축복을 누리는 존재라는 걸 다시 확인하며 감격스러웠다.



제자 학과의 교수님께서 "늘 눈이 손보다 높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글을 쓸 때 바라보는 시각과 지향점은 현실보다 더 상향이어야 성장을 하고, 그에 따른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니까. 그럼에도 너무 큰 차이로 인한 좌절감은 평생 풀리지 않는 작가의 숙제일 것 같았다.

작가로서 그 갭은 좌절일 수도 있겠지만 노력과 애씀의 지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까, 제자는 작가로서 끝까지 눈과 손의 높이가 마주할 순간을 꿈꾸면서도 꿈을 이루지 못할 매 순간의 좌절을 노력으로 승화해야 할 작가로서의 숙명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과제가 너무 많아서, 자신의 학과가 문예창작과가 아니라 과제창작과라는 별칭이 있다고 했다. 친구들의 작품을 읽고 피드백을 해주는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자신의 과제는 다른 친구들의 과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그러면서 그들끼리 "마감은 포기다"라는 통용된다고 했다.



시험문제 출제 마감이 임박해서야 출제가 시작되는 동료나 선배교사로부터 "마감이 영감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마감은 포기"라니...

그러고 보니 마감은 영어로 "deadline"이라는게 의미심장했다.

완벽과 완성을 지향하더라도 "마감"이라는 것은, 애썼지만, 이번 생은 포기하자는 심정으로 받아들어야 할 한계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니, 그 한계에 대한 인정이 있어야, 이 순간 용기를 내면서 자신의 역량껏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도 유한하고, 시간과 에너지도 유한하다면, 오히려 완벽과 이상적인 완성에 대한 부담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포기는 처음부터 마음을 비운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행위일 것이니, 우리의 치열한 노력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오히려 노력하는 자들에게 주는 위로의 말처럼 들렸다.



더 잘할 수 있었다는 후회나 미련은 이번 마감까지는 해당되지 않는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 아쉬움은 잘하면 다음 마감에서 약간은 덜어진 후회에만 기여하게 될 뿐일 것이니...



우리도 지나온 세월의 목차와 개요만 읊기에도 부족한 만남의 시간의 한계를 마주했다. 마감은 포기인 것이니.. 다 못한 이야기는 포기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끝나지 않은 마음의 응원을 담아 제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악수로 작별했다.

고2 때에 마주했던 제자의 꿈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축하와 감격의 마음에다가 끝을 모르고 성장하며 날아오를 작가로서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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